KBS교향악단 749회 정기연주회
KBS교향악단 / 749회 정기연주회
2019년 12월 27일(금) 20:00~22:1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층 C블럭 6열 4번 / C석 10,000원
레너드 번스타인 / 치체스터 시편
- 정유나(Boy S), 서울시합창단, 고양시립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cpbc소년소녀합창단
인터미션
루드비히 판 베토벤 / 교향곡 9번 d단조 op.125 합창
- 이명주(S), 김정미(Ms), 강요셉(T), 이동환(Bs), 서울시합창단, 고양시립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요엘 레비(Cond), KBS교향악단
요엘 레비(Cond)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의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는 여러 번 들어봤으나 이날 연주는 이전에 들었던 다른 연주와는 달리 아무래도 각별한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요엘 레비 지휘자는 KBS교향악단이 전임 함신익 지휘자와 극한의 대립각을 세우며 혼란을 겪은 직후인 2014년, 연주력도 떨어지고 분위기도 어수선한 악단에 음악감독으로 부임하여 KBS교향악단이 다시 오늘날의 위치로 올라올 수 있도록 이끌어온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임기 마지막 연주회니 본인은 물론이고 교향악단원들, 그리고 음악팬들에게도 각별한 의미를 갖는 연주회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의전당에 도착하니 18:45, 배는 고프지 않아 식사를 하기엔 좀 부담스럽고, 또 그렇다고 음악회가 끝날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있다가는 아무래도 시장할 것 같고 해서 간단하게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 먹고 음악당으로 올라갔다. 시간이 이른 편 치고는 꽤 많은 관객들이 로비를 메우고 있었다. 티켓을 받으러 티켓박스로 가는데 누가 옆에서 아는 척을 하길래 쳐다보니 일전에 파비오 루이지가 지휘한 KBS교향악단 연주 때 인사를 한 사자개님이셨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명함을 교환한 뒤, 앞으로 자주 인사하기로 했다. 포토월 앞에 가니 많은 사람들이 포토월에 글을 남기고 있었다. 옆에 세워진 스탠드에는 요엘 레비 음악감독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놓으라는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었다. 가만히 훑어 보니 이날 공연에 참가하는 소프라노 이명주의 글도 있었다. 나는 뭐 그냥 이심전심, 굳이 나까지 쓰지 않아도 충분할 듯. 티켓을 받고 1층 소파에 비어 있는 자리가 하나 있어 앉았더니 앉자마자 바로 아몬드봉봉님으로부터 3층에 계시다는 톡이 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3층으로 올라가는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희아갤러리의 박 관장님이 타고 계셨다. 3층에서 같이 내렸다가 소파에 앉아 한 30분 가까이 우리 나라의 사라진 지명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공연 15분 전이라 객석으로 들어갔다.
이날 프로그램은 번스타인의 <치체스터 시편>이라는 생소한 한 곡 하나와 연말이면 늘 연주하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다. 첫 곡인 <치체스터 시편>은 번스타인이 히브리어로 쓰여진 시편을 텍스트로 하여 3악장으로 된 20분 여의 곡이다. 번스타인이 히브리어로 된 시편을 텍스트로 사용한 것은 그가 랍비의 자손인 유대인이었기 때문이고, 레비가 자신의 KBS교향악단 음악감독 임기의 마지막 연주회에서 이 곡을 선택한 것도 그가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이스라엘에서 자란 유대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악기의 구성이 매우 특이했는데 현 5부에 목관악기는 하나도 없이 금관은 트럼펫과 트럼본만 배치되었고 대신 타악기 주자는 무려 여덟 명이나 될 정도로 타악기의 비중이 높았다.
이 곡은 각 악장이 전혀 다른 곡이라고 해도 될 만큼 악장 별로 그 특색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독특한 곡이었다. 1악장은 재즈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말하자면 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연상되는 분위기의 곡이었다. 다양한 타악기를 활용하여 리듬을 강조하였고 화려한 색감에 생동감이 넘치고 흥겨운 곡이었다. 이어지는 2악장은 보이 소프라노와 어린이합창단이 합세하여 1악장과 대비되는, 매우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악장이었다. 이 악장에서는 유명한 시편 23장을 텍스트로 한 히브리어 노래가 불려졌는데, 나는 나운영 작곡의 <시편 23편>에 익숙해서인지 가사를 보니 나운영 곡의 멜로디가 떠올라서 이 보이 소프라노의 생소한 멜로디가 잘 와 닿지 않았다. 프로그램북과 스크린에는 분명히 보이 소프라노라고 되어 있었는데, 막상 노래를 부른 가수는 여자 중학생으로 내가 듣기에는 보이 소프라노라기보다는 오히려 소프라노에 가까운 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3악장은 전곡에서 가장 긴 악장으로 낭만파의 음악을 연상케 했다. 상당히 장중한 느낌으로 마지막 부분을 '아멘'으로 끝내 제의적인 성격을 드러내 주었다. 보이 소프라노와 어린이합창단은 이 곡에만 추연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바로 뒤에 서서 어셔들이 사진 찍는 사람이 없는지 살피고 있어서 찍지 못했다. 원래는 그냥 신경 쓰지 않고 찍으려 하는데, 이제 막 견습을 시작한 친구들이라 그 친구들과 실랑이 하기도 그렇고 해서 찍지 않았다. 사실 보이 소프라노로 나온 학생 같은 경우에는 나 같은 블로거들이 사진을 찍어서 올려주면 좋을 텐데 예술의전당에서 정책적으로 그걸 막으니 내가 다 아쉽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2부에서는 송년음악회 프로그램인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연주되었다. 요엘 레비 음악감독의 마지막 연주곡이라 곡이라 모두 긴장하고 들었는데, 기분 탓인지 연주 자체가 아주 좋았다. 특히나 음색과 음량이 마음에 들었는데, 마르쿠스 슈텐츠가 지휘한 서울시향의 연주가 다소 가벼웠다면 레비의 KBS는 지나치게 무겁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은, 아주 적절한 정도의 음색이어서 마음에 들었고 음량도 보통 때에 비해 컸는데, 단순히 큰 것보다는 소리가 단단하면서도 커서 이 점도 매우 흡족했다. 레비의 마지막 연주라는 것을 의식해서 그런지 모든 단원들이 정말 열심히 연주를 한다는 사실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1악장도 좋았으나 2악장의 통통 튀는 듯한 느낌의 연주가 좋았고, 3악장에서는 차분히 관조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풍겨서 4악장의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더욱 부각시켜 주었다. 4악장도 괜찮았으나 다른 악장에 비해 본다면 다소 처지는 느낌이었다. 일단 독창자들의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생각보다 소리가 좋지 않았다. 독창자들의 면면을 보면 하나 같이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성악가들이건만 지난 주의 서울시향 독창진들의 소리만 못했다. 이명주(S)는 내가 좋아하는 소프라노인데 이날 연주는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목소리가 다소 답답했으며, 김정미(Ms) 역시 내가 좋아하는 가수지만 이날은 다른 파트들의 목소리에 갇혀 김정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강요셉(T)은 하이C를 자유자재로 내는 가수이지만 이 곡은 하이C보다는 격한 환희를 드러내야 하는 곡이라 그러기에 강요셉의 목소리는 좀 가늘어서 3층 객석에까지 목소리가 올라오는 것이 버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동환(Br)은 개중에서 가장 자기 목소리를 잘 내준 편이나 힘이 조금 달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욱이 이들은 이날 오케스트라 앞에 자리를 잡았음에도 전반적으로 지난 주 서울시향 연주의 독창자들보다 성량이 작았는데, 적어도 내 자리에서는 그렇게 들렸다.
4악장에서 레비의 해석은 그다지 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템포가 전반적으로 좀 쳐진 느낌이었고, 특히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중간 '천사 케루빔은 신 앞에 선다(Und der Cherub steh vor gott)' 뒤의 휴지 부분을 매우 짧게 가져가서 아쉬웠으며 마지막 팀파니의 16번 연타와 함께 연주되는 총주 부분도 좀더 격렬하게 몰고 갔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하지만 KBS교향악단의 연주는 매우 훌륭했으며, 서울시합창단을 비롯한 연합합창단의 합창도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 호연이었다.
연주가 모두 끝나고 관객들은 이날 연주에 대한 환호뿐 아니라 그동안 KBS교향악단을 잘 이끌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담아 요엘 레비에게 드거운 박수를 보내주었다. 요엘 레비는 커튼콜을 할 때마다 독창자들을 나오라고 하여 그들에게 박수를 돌렸다.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특별히 어려운 파트를 연주해준 연주자들을 볼러 일으켜 관객들의 박수를 받게 해 준 레비는 KBS교향악단과 단원 대표로부터 감사의 꽃다발을 받기도 했다. 꽃다발 증정이 끝난 뒤에는 요엘 레비의 지난 6년을 되돌아 보는 영상이 소개되었고, 이후 요엘 레비는 직접 마이크를 들고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한국에 다시 꼭 돌아와서 연주를 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대를 돌며 KBS교향악단의 모든 단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관객들은 레비가 단원들과 악수를 이어가는 동안 계속해서 박수를 보내주었고 악수가 끝난 이후에도 박수가 이어졌으나 요엘 레비는 왕 징 객원악장의 손을 끌고 퇴장했고 그것으로 그의 마지막 연주회는 끝이 났다. 머지 않은 시기에 다시 그의 지휘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인터미션 때 1층으로 내려가 KBS교향악단 직원에게 끝나고 요엘 레비의 사인회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체 행사가 예정되어 있어 따로 사인회 계획은 없다고 했는데, 사실 KBS의 내부 행사는 다른 날을 잡아서 하더라도 이날은 사인회를 열어서 요엘 레비 음악감독에 대한 관객들의 감사와 존경을 레비 본인이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좋은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랫동안 수고한 지휘자에 대한 KBS교향악단 측의 배려가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