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에서 선한 아빠 컨셉의 육아툰만 줄곧 그리다 보니, 스스로 못된 그림을 그려서도 안되고, 나쁜 글을 써도 안된다는 강박에 한동안을 갇혀 지냈다. 그림쟁이로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강박이 아니었을까?(각자 추구하는 바가 다르겠으나 적어도 난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찔려서 하는 소리)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간간이 해오던 외주들마저 죄다 어린이를 위한 작업들이었으니 이건 뭐 거의 반강제적 중생구제, 인간순화 정도의 체감이었다. 내년 2월에 지인들과 소소한 단체적 계획을 세웠다. 절호의 기회다 싶어 이번에는 나를 아주 힘껏 망가뜨려보리라 독하게 마음먹고 펜을 쥐었는데 순백의 캔버스가 이리도 holy할 일이던가? 엎친 데 또 덮친 격으로 이번에도 초등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작업까지 맡아버렸다.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는 완벽한 타이밍에 조금 울적해져 버린 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못된 녀석들이 잔뜩 나오는 드라마를 감상하며 밀린 설거지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