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건네 듣는 순간 맘속으로는 단칼에 거절했지만, 거절의 기술이 부족한 탓인지 타고난 어리바리 탓인지.. 질질 끌다가 결국엔 설득을 당해버렸다.
번듯한 내 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삽화라는 숟가락을 얹어 몇 숟가락 떠먹어 봤던 경력이 전부인데 작가와의 만남이라니. 이건 애초에 시작부터 성립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머릿속에 온통 거절을 합리화(? ) 시킬 생각뿐이었다
몇 분간 요청과 거절의 대립구도 말미에 결국 설득을 당한 나였고, 책 작가와의 만남이 아닌 우리 동네 삽화가 정도의 소박한 명분으로 컨셉을 바꿔달라는 소심한 요청을 드렸는데 기획의도를 바꿔버릴 수도 있는 무례한 요청을 흔쾌히 받아 주셨으니, 극 i 성향의 나에게 또 한 번 커다란 도전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거절의 합리화는 실패했으니, 이제는 자기 합리화가 필요한 단계일까?
동네에 이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꽤 있다고 하셨다.
작은 지방의 도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흔치 않고 더 접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분야의 이야기. 관심에서 더 나아가 목표로 잡고 싶지만 막연하여 그 어떤 것이라도 나누고 싶을 이야기. 그런 일을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야기. 그 과정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같이 떠들다 보면 주어진 90분 정도의 시간 정도는 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림을 그리겠다는 사람이 되어서 나와 내 작업에 대해 90분 정도의 이야기도 풀어내지 못한다면 다른 무엇인들 할 수 있겠느냐 라는 자존심의 문제?
어찌 되었든 자기 합리화도 어느 정도 되어가는 듯했고
남들은 관심도 없는 내 이야기만 주야장천 풀어놓는 꼰대가 되거나, 주야장천 하소연과 푸념만 늘어놓는 진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꼰대가 되든 진상이 되든, 작가라는 수식어가 함께할 테니 외롭지는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