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재판을 들고 사장실에 들어가던 시절.
사소한 결재 건이라도 그의 기분이 잘못 걸리는 날엔
귀에서 피 맛이 날 때까지 얻어맞고 나오던 그런 때가 있었다.
그건 마치 회사의 법칙처럼 흘러갔다.
사장님 표정이 좋아 보이는 날엔
밀린 결재판을 들고 줄까지 서는 직원들이 생기곤 했으니까.
결재판을 꼭 껴안고 두려움에 떨던 그 시절의 내가
여전히 안쓰럽긴 하지만,
묘하게도 그 긴장과 버팀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조금이나마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그 웃펐던 풍경들이 조금 그립기도 하다.
이제는 현실이 아니라 내 영감 속에서만 살아 숨 쉬어주니,
제법 완벽한 결말을 얻은 게 아닐까?
물론 다른 의미의 ‘존버’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오늘만큼은 잠시 그날들을 흐뭇하게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