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회사를 박차고 나온 지 고작 며칠 만이었다.
월급이 끊기자 두려움이 현실이 되었고,
잠을 설칠 만큼 불안해져 있던 나는 로켓배송 일을 시작했었다.
일을 시작한 지 며칠이나 되었을까.
어느 아파트 단지를 돌다가 짐을 쌓아둔 내 카트가 바람에 밀려 옆에 주차된 차를 그대로 들이받아 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눈에 봐도 갓 뽑은 듯한 뽀얀 임시번호판의 새 차.
일에 적응도 못 했는데
‘요 며칠 고생해서 번 돈을 다 날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며 좌절했던 순간이었다.
잔뜩 긴장한 채 경비실을 통해 성사된 차주분과의 대면이 얼마나 떨렸던지, 오늘 배송해야 할 산더미 같은 택배 걱정은 그 순간 전혀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뜻밖의 반전이 일어났다.
차주분께서 “고생 많으신데, 이 정도는 괜찮아요”라며 쿨하게 넘어가 준 것이다.
분명 ‘괜찮은 정도’의 기스가 아니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노발대발했을 만큼의 손상이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감사함이 가장 컸지만 동시에 자책도 밀려왔다.
긴장이 풀리자 잔뜩 위축돼 있던 시기의 내 자신감은 바닥을 쳤고,
왠지 모를 우울감까지 스며들었던 날로 기억한다.
이후, 택배 차량을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그 상황에서 오히려 나를 다독여 주며
쿨하게 넘겨줬던 그 차주분.
누군가에겐 별것 아닌 일상의 작은 해프닝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겐 중요한 시기의 커다란 사건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제법 쌀쌀한 겨울의 어느 날.
택배 배송하시는 분을 보고 문득 그 날이 생각났다.
험한 날씨에도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내고 계신 배송 기사님들께 조용히 파이팅을 외쳐본다.
그리고 그 차주분의 오늘이 평온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