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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잡담 Oct 01. 2022

정장과 프랑스 1


“정장 있으세요?”


뜬금없는 그녀의 물음에 당황스러웠다. 평소 캐주얼한 복장으로 출퇴근하던 나에게 정장은 경조사 때만 입는 연례행사였고, 그조차도 최근엔 코로나19 때문에 뜸 해졌기에 나에게 정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렴풋이 장롱 안에 있으리라 추측되는 15년 된 정장이 검은색인지 회색인지를 떠올릴 찰나 그녀는 재차 물었다


“인사드리러 올 거면 밝은색이 좋을 거 같아요”


아뿔싸

그것은 내가 그녀에게 프러포즈한 지 3년 2개월 만에 들은 대답이었다.


2011년 여름. 유난히 시끄러웠던 매미 소리와 함께 우리는 연애는 시작되었다. 사진과 영화 이야기를 하며 4년을 뜨겁게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갑자기 ‘건강하세요 더 좋은 사람 만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해외로 도주했다. 물론 나의 표현이 도주인 거지 그녀는 계획된 장기 해외여행을 떠난 것이라고 아직도 주장한다. 그렇게 4년을 헤어져 있었다. 그녀의 바람대로 나는 4년 동안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건강했지만, 더 좋은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2018년 4월의 어느 날. 산들바람에 찰랑이는 연등 아래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우주의 기운이 도운 그날 난 그녀의 집앞에 찾아 갔었고, 때마침 귀가 하던 그녀와 다시 눈이 맞았다.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우린 금방 4년의 벽을 녹여 버렸다.  



그리고 6개월 뒤, 2018년 12월 겨울이 시작될 무렵 교토의 공기는 한국보다 가벼웠고 따뜻했다. 실제 온도가 따뜻했는지, 아님 내가 프러포즈할 목적으로 온통 신경이 그녀에게 곤두서있어 내 몸의 아드레날린 분비로 덥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여행 마지막 날 사케도 한잔하고 아드레날린의 열기가 최고조에 다달 했을 때 그녀의 미소를 보는 순간 이때다 싶었다. 지금 고백하라고 내 마음속 자아가 아우성쳤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었다. 가방 속 목걸이와 우리가 같이 찍은 8년의 사진에(실제로는 4년과 6개월) 작은 메모를 달고 오늘 찍은 사진에는 특별히 ‘나와 결혼하자’라고 써서 프러포즈했다. 난 이 프러포즈가 적절한 타이밍이며 그녀도 내심 기대하고 있을 거로 추측했다. 결혼 생각이 없었으면 다시 눈이 맞지도 않았으리라. 당연히 대답은 예스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대답은 내가 기대한 거랑 달랐다.


@ Propose in Kyoto


“난 아직 결혼 생각이 없는걸”


결혼이라는 것이 적절한 타이밍이 있는 것일까? 평소에 소신은 결혼하지 않고 평생 연애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왜 하필 그 타이밍에 결혼을 생각했을까? 우리나라 통계를 보면 결혼하기 가장 적절한 나이는 평균 33세 정도며 가장 많은 사람이 35~36세를 결혼 적령기로 꼽았다고 한다. 그녀의 나이 서른여덟, 나는 서른아홉 불혹을 한 달 앞둔 때였다. 어쩌면 그 적절 하다고 생각한 타이밍은 앞자리 4를 앞두고 사회성이 없는 내가 애써 만들어낸 억지일지 모른다. 무의식적으로 30대에 해야 하는 마지막 숙제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다음 수순은 당연하게도 취업과 결혼이었다. 이 모든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고 보통일 것이다. 결국 결혼을 못한다는 건 보통에 미달 된다는 거고 그것은 먹는 나이와 정비례로 정상의 기준에서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물론 사랑하고 사랑의 결실이 꼭 결혼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남들에게 결혼과 사랑의 비상관관계를 주저리 설명하기 싫어, 혼자 밤을 지새우기 싫어, 무엇보다도 그녀를 다시 뺏기지(?) 않으려고 프러포즈를 결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마지막 30대에 보통의 사람들처럼 나를 사회적 틀에 끼워 넣으려고 했던 노력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  12년 동안 그녀와 나


“정장 있으세요”

3년 2개월 만에 들은 대답은 담담하지만 묵직한 한방이었다.

이제 정장만 있다면 12년의 연애질이 막을 내리고, 고독한 자취 생활을 접고, 알콩달콩 인생의 2막이 시작될 것만 같았다.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앗싸! 12년 묵은 체증이 가시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좋아할 시간을 더 주진 아니했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 한마디는 내 평생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말이었고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말이었다.

 

“우리 프랑스 가서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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