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가 비용을 바라보는 관점

눈에 보이는 비용만 비용이 아니다

by 김무건

눈에 보이는 비용 비용이 아니다


예전, 은행의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입출금예금에 높은 이자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고객 유입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모처럼 자신 있게 경영진에게 성과 보고를 준비했습니다.

예금 잔고가 2개월만에 1조가 늘어났고, 목표치를 조기에 달성한 내용이 숫자와 그래프로 표현되었습니다.


잔고도 늘고 고객 기반도 넓어져, 모든 지표가 우상향이었습니다.

또한 입소문이 퍼져 광고비를 거의 쓰지 않았기에, 비용 측면에서도 추궁당할 일이 없었죠.

보고 중 몇 안 되는, 마음이 조금은 편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한 임원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좋은데요? 고객 기반을 넓히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되겠어요.”


잠시 멈추더니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금에 이렇게 4%나 이자를 주면, 우리 포기하는 기회비용은 어느 정도인가요?”


당황스러운 말들은 이어졌습니다.

“이자를 조금만 낮췄으면 고는 덜 늘었겠지만 분기 손익이 개선되지 않았을까요?

현재 금리 수준이라면 회사에 남는 스프레드가 200bp는 되었을 것 같은데…


부끄럽게도 그 말을 듣기지 그렇게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듣고 보니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건데 말이죠.


그때까지 제가 생각했던 ‘비용’이라는 개념에는 '기회비용'이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광고비를 줄이고, 집행 단가를 낮추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던 비용 관리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이 때 "예금 금리"로 고객에게 제공되는 것도 분명히 더 벌 수 있었던 기회를 포기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죠.

기회비용 비용이었습니다.


잔고 1조원에 연 2%면 200억원입니다.

고객에게 예금 금리를 4%가 아닌 3%만 지급했다면, 1조 대신 8천억만 모았다고 해도 160억이 남는 장사가 되었겠죠.


결국 이자를 1% 높임으로서 연간 60억을 손해본 셈이 되었습니다.

광고비 몇 억 원을 아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숫자였습니다.


그날 저는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금융회사에서 비용을 묻는다는 건 얼마를 썼느냐만을 묻는 일이 아니라, 얼마를 포기했느냐까지 묻는 일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신규 고객 유치가 더 중요했던 시기였기에 전략은 그대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의 '비용'에 대한 개념은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금융회사의 비용은 세 층으로 쌓여 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금융회사의 비용을 세 층으로 나눠 보기 시작했습니다.


(1층) 자본 비용
자본은 공짜가 아니다


금융회사는 돈을 빌려주고, 투자하고, 신용을 제공합니다.

그 모든 활동의 출발점은 ‘자본’입니다.


자본은 공짜가 아닙니다.

예금이 늘어나면 그 자금을 반드시 예금금리 이상은 남도록 운용해야 하고, 대출이 늘어나면 대출금리보다는 낮은 비용으로 자금의 조달이 필요합니다.


같은 1조 원이라도,

연 2%에 조달한 자금과 연 4%에 조달한 자금은 완전히 다른 손익 구조를 만듭니다.


2000년대 중반이 그 예시가 될 수 있겠네요

시장 금리가 빠르게 오르던 시기였고, 자본 조달 비용 예상보다 빨리 높아졌습니다.


일부 담보대출 상품은 이미 고객에게 고정금리로 약속되어 있었고, 스프레드는 순식간에 얇아졌습니다.

상품은 그대로였지만 상황이 변하면서 자본 수익률은 소리없이 낮아졌습니다.


때 회의 자리에서 들었던 말이 기억납니다.

“이 상품, 이제 더 판매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자본은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에 활용해야 합니다.

이것을 금융회사에서는 '자본 배치'라고 합니다.


(2층) 리스크 비용
늘어난 수익 기회만큼 커지는 위험


자본을 어디에 배치할지 결정하면 그 다음에는 리스크를 고려해야 합니다.


은행은 상품 중 신용대출의 마진율이 높기에, 판매 증대를 위해 종종 캠페인을 걸곤 합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홍보와 영업 차원에서의 캠페인이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캠페인 이후 특정 신용대출 상품의 취급액이 빠르게 늘었고, 이자 수익이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몇 분기 뒤 연체율이 함께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대출이 늘어나면 부실 가능성도 함께 늘어납니다.

그 가능성은 충당금이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비용에 반영됩니다.


손익계산서에는 충당금이 급속히 늘어났고, 어떤 노력으로도 연체된 대출들이 부실채권화 되는 것은 막기 쉽지 않았습니다.


순이익은 결국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급히 판매를 중지한 후에도 이미 판매된 상품에서의 부실이 지속되어 해당 부서가 2~3년은 곤혹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수익은 앞에서 보이고, 리스크 비용은 뒤에서 따라옵니다.

그래서 금융회사에서는 때로 수익률보다 연체율과 부실률이 더 예민하게 다루어집니다.


리스크는 나중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비용인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3층) 운영 비용
마케터에게 가장 친숙한 비용


마지막은 우리가 가장 익숙한 비용입니다.


인건비, IT 비용, 그리고 마케팅 비용.

조직을 운영하고, 시스템을 유지하고, 고객과 소통하기 위해 반드시 들어가는 비용들입니다.


N년차 마케터라면 한 두 번쯤은 10월경에 남은 마케팅 예산을 갑자기 줄이라는 요청을 받아본 기억이 있을텐데요.


마케팅 비용은 급여와 같은 직접비와는 달리 임의로 줄일 수 있는 항목이기에, 한 해 손익을 마무리하는 시기가 되면 갑작스러운 예산 감축 통보가 오는 단골 손님이기도 합니다.


회사의 연간 손익을 맞춰야 하는 입장이라면요.

10월에 두 달만에 갑자기 20억을 벌기는 어렵지만 광고비 20억은 그냥 안쓰면 됩니다.

어차피 손익에 미치는 효과는 똑같거든요.

계획을 갑자기 접어야 하는 마케터 입장에서는 부아가 치밀긴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습니다.


운영비는 눈에 보이고, 조정 가능하고, 우리가 직접 손댈 수 있는 영역입니다.

그래서 마케터로서 가장 먼저 배우는 비용 관리도 대개 이 세 번째 층입니다.


하지만 세 층을 함께 놓고 보면 운영비는 ‘조정 가능한 비용’입니다.

손익을 크게 흔드는 것은 대개 3층이 아니라 앞의 두 층입니다.


이걸 깨닫는 순간, 운영비를 줄이는 일만으로는 회사의 구조를 바꿀 수 없다는 것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비용은 ‘배분’의 문제다


이 세 층을 함께 놓고 보니 깨닫게 됩니다.

금융회사에서 비용은 ‘얼마를 썼는가’보다 ‘자본을 어디에 두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


예수금 이자를 높여 고객을 늘리는 선택도,

신용공여 한도를 확대하는 결정도,

상품 전략을 조정하는 일도,

결국은 자본을 어떤 구조 안에 배치할 것인가의 선택입니다.


그 배치가 가장 높은 수익률을 만들 수 있는지, 감당 가능한 리스크인지.

그 질문이 비용의 본질입니다.


같은 매출처럼 보이는 숫자도

어떤 상품은 자본을 더 많이 요구하고,
어떤 상품은 리스크 비용을 더 크게 남깁니다.


금융회사에서 비용을 묻는다는 건 결국 자본의 방향을 묻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