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영업수익’, 다른 곳엔 없는 금융회사의 핵심 지표
마케팅을 잘하려면 회사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속해있는 부서만이 아닌, 조금 더 큰 그림을 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처음으로 사업보고서, 즉 재무제표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죠.
재무나 회계를 따로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재무제표는 거의 외계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때『회계천재가 된 홍대리』같은, 쉬운 회계책을 몇 권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쉽게 쓴 책들이라 그런지 대충 손익계산서가 어떤 건지는 이해할 것도 같았습니다.
제품을 팔아서 매출이 생기고,
매출에서 원가를 빼고,
거기에서 판관비를 빼고,
그렇게 남는 게 이익이라는 구조.
“아, 이 정도면 좀 알겠는데?”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시 제가 다니던 회사, 즉 금융회사의 사업보고서를 펼쳐보고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라? 왜 매출액이 없지?”
겨우 이해했던 구조에서, 첫 항목부터 보이지 않았습니다.
매출도 없고,
매출원가도 없고,
대신 처음부터 ‘영업수익’이라는 항목으로 시작합니다.
그때의 당황스러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금융회사는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한 데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금융회사는 뭔가를 만들어서 파는 회사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제품도 없고, 제조 과정도 없습니다.
대신,
돈을 조달하고 그 돈을 운용해서 차이를 남기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손익계산서의 출발점이 달라집니다.
‘매출’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워지죠.
그래서 금융회사의 손익계산서는 매출액이 아니라 ‘영업수익’에서 시작합니다.
돈이 원재료가 되는 순간
여기서 한 번 더 막혔던 게 '이자비용'의 위치였습니다.
일반 기업에서는 이자비용이 영업비용 항목이 아닌 ‘영업외 비용’에 속합니다.
사업을 하기 위해 필요해서 빌린 돈의 비용일 뿐, 핵심 영업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항목이죠.
그런데 금융회사는 이게 다릅니다.
이자비용이 영업을 위한 핵심 비용이고, 원재료 구입비와 같은 '매출원가'의 위치에 있는거죠.
금융회사는 ‘돈’을 가지고 장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어야 대출을 하고, 투자를 하고, 수익을 만듭니다.
즉, 돈이 곧 ‘원재료’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자비용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건 더 이상 부수적인 비용이 아니라, 사업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 비용이 됩니다.
그래서 금융회사에서는 이자비용이 ‘영업외 비용’이 아니라 ‘영업비용’에 속하는 점이 또 하나의 큰 차이점입니다.
‘순영업수익’, 다른 곳엔 없는 금융회사의 핵심 지표
이 구조를 이해하고 나서야 손익계산서가 조금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숫자가 하나 생겼습니다.
‘순영업수익’
영업수익에서 이자비용 같은 자본비용을 빼고 나면, 비로소 이 회사가 본업으로 얼마나 벌고 있는지가 보입니다.
이건 일반 기업으로 치면 ‘매출총이익’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지표입니다.
그래서 금융회사에서는 이 숫자를 유독 중요하게 봅니다.
일회성 이익이나 회계적인 효과를 걷어내고 나면,
이 회사가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있는지, 구조적으로 건강한지를 보여주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이걸 이해하고 나니 마케팅을 보는 기준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이 상품을 얼마나 팔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게 순영업수익에 어떤 영향을 주는 선택일까”
이걸 같이 보게 됩니다.
예금을 늘리면 고객은 늘어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자비용도 함께 늘어납니다.
대출을 늘리면 이자수익은 증가합니다.
하지만 리스크 비용도 함께 따라옵니다.
그래서 금융회사에서는 ‘성과가 좋다’는 말과 ‘손익이 좋다’는 말이 같은 의미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이걸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답답함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성과가 좋은데 왜 더 밀지 않을까.”
“왜 의사결정이 이렇게 느릴까.”
그런데 손익 구조를 조금씩 이해하고 나니 그 질문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회사의 손익 측면에서 최선의 선택일까?”
돌이켜보면, 그때의 막막함은 당연한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알고나면 쉬운건데 그걸 너무 오래 혼자서 겪어야 했다는 점이었죠.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지금 막 금융 마케팅을 시작한 분들이 저와 비슷한 시행착오를 조금 덜 겪었으면 해서입니다.
손익계산서를 이해하는 건 회계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이 업이 어떤 구조로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금융회사의 손익계산서에
왜 매출이 없는지
왜 이자비용이 핵심 비용이 되는지
왜 순영업수익이 중요한지
이 세 가지만 이해해도 마케팅을 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단순히 누군가 시킨 일을 하는 게 아닌, 구조 안에서 의미 있는 선택을 하는 마케터.
그리고 아마 그때부터 마케팅이 조금 덜 흔들리기 시작할겁니다.
업의 구조를 이해했으면 이제 단단한 토대 위에 서게 된 셈입니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마케팅의 이론과 현장에 대해 얘기해 볼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