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야기인 듯, 가짜 이야기인 듯
2022. 12月
진짜 이야기인 듯, 가짜 이야기인 듯
하루는 학교에서 거제 지도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한 친구가 다가와 뭘 그렇게 보냐고 했다. 여기 내가 보고 있는 이곳이 거제라는 곳인데, 거제로 오시고 난 후의 일들을 들은 게 없어서 뭘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거제포로수용소에 대한 얘기를 잠시 꺼내니, 친구는 이내 말한다.
난 알아, 그거 트라우마일 거야. 왜냐면 내 할머니뻘 되는 친척분께서도 2차 대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계셨거든. 나도 모르는 친척 분이긴 하지만,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조차 하기 싫어하셨대.
어리석게도 나는 트라우마 생각을 그땐 못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는 거제에 대한 얘기는 말씀을 극도로 아끼셨다. 의도적으로 말이다. 질문을 해도 말씀이 없으셨던 경우가 꽤나 있었다.
유일하게 들은 얘기는 불만 꺼지면 지옥이었다는 말뿐이었다.
2023. 1月
마지막 학기의 마지막 날, 나는 내 할아버지 고향에 대한 얘기를 세상 밖에 꺼냈다. 고향을 다시 지어달라는 할아버지의 부탁에서 시작된 나의 이야기, 그리고 할아버지의 이야기. 그날이 사람들도 궁금했던 것일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와서 들어줬다. 그리고 정말 내가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고향의 모습이 진짜인 것처럼 받아들여줬다. 진짜도 아닐 텐데 말이다.
하루는 엄마에게 그동안 내가 짜 맞춘 얘기를 들려줬다. 엄마는 자꾸, “아냐, 그때 할아버지 거기로 안 갔어”, “연도가 맞아?” 등 내 얘기를 부정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엄마는 내 이야기가 틀렸다고 생각했나 보다. 엄마도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었기에 내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으리라.
이래나 저래나 내 머릿속에는 이미 할아버지의 마을이 지어진 지 오래다. 물리적으로 다시 지을 수 있는 고향은 아니지만. 내 얘기를, 아니 할아버지 얘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그 사람들에게도 상상의 마을을 짓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그저 그 상상의 씨앗을 퍼뜨릴 뿐이다.
할아버지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 나는 계속 할아버지의 그 질문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 같다. 할아버지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던 나의 다시 짓는 이북땅 할아버지 고향 이야기.
여전히 평안남도 맹산군 송암리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원하시는 분은 댓글이나 toosdaywonders@gmail.com으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번외)
2022.11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하루는 TV에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는 고향 친구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작년에도 같은 고향 출신 한 분이 돌아가셨다.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 내가 걔네들보다 더 오래 살았다. 내가 더 오래 살았다고.
나는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오래 살아서 허구한 날 그만 살고 싶다고 하셨던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어쩌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과거의 생각 또는 집념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것일까. 잠시나마 할아버지의 원초적인 생존 본능을 엿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