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추적하다
2022. 11月
1952년의 그날을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 몇 가지가 있었다.
1. 연도
할아버지는 광복 후 1년 반 뒤에 떠났다고 하셨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기억은 틀렸음을 나는 안다. 광복은 1945년, 전쟁은 1950년에 발발되었기에 아마 전쟁 후 1년 반 뒤라고 해야 할 걸 잘못 얘기하신 듯하다. 고로 할아버지는 대략 1952년에 떠나셨다고 생각해 본다.
1952년, 맹산군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지도를 보면, 남북은 38선 위쪽에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도에는 산맥을 따라 버섯모양이 그려져 있다. 폭격이 일어난 곳을 지칭하는 것일까?) 맹산군은 전장으로부터 비교적 먼 곳처럼 보였지만 당시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언제든지 전쟁에 휘말릴 수 있는 동네이지도 않았을까.
2. 왜 숨으려고 하신 걸까?
할아버지는 일주일 동안 숨을 생각이었다고 하셨다. 대체 왜? 찾아보니 그즈음 북한군 군사 동원 명령이 진행 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얘기를 들어보면, 당시 군 징집에 응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 왜 가족들 다 같이 안 숨고 혼자 숨으려고 하신 것일까? 우선, 당시 할아버지는 20대 젊은 청년이셨다. 군 징집 대상이 아니라면 이상할 나이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가족 중 유일한 남자이셨다. 할아버지에겐 위로 형님 한 분이 계셨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에 강제동원되어 행방이 묘연해지셨다고 한다. 그 충격으로 가족들은 할아버지마저 전쟁터에 보내고 싶지 않았을 터. 밑으로는 돌봐야 할 형제들도 있었다. 급히 어딘가에 숨지 않고서는 또 어떤 어두운 그림자가 이 가족에게 드리워졌을지.
3. 은신처는 정하고 가셨을까?
할아버지는 산에 숨으셨다. 산이 은신처로는 딱이었던 것일까?
찾아보니, 이 “맹산"이란 마을은, 한자로는 사나울 맹 + 뫼 산, 말 그대로 험악한 산지대를 뜻한다. 현재 북한의 천연 유산 중 하나인 흑송나무가 산을 뒤덮고 있다고 한다.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 내가 봐도 매력적인 은신처 같다.
근데 무작정 산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나? 어딘가를 정해놓고 가신 건지 아님 산에 들어가서 은신처를 물색하신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할아버지는 철옹산에 가셨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산이지만, 철옹산 말고 다른 산일 수도 있고. 한국의 산맥을 소개하는 뉴질랜드인 산악가 겸 유튜버, Roger Shepherd의 영상에서 발견한 요즘 철옹산의 모습이다. 산세다 험해 보인다.
4. 몇 시에 떠나셨을까?
아마 밤이나 아침 일찍 떠나고 싶지 않으셨을까? 밤은 걸어 다니기 위험했을 것이니 아침에 나가셨을 것 같다. 아마 보통보다 일찍 일어나셨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당시에 알람시계가 있었을까? 글쎄다.
그 시절엔 시간을 어떻게 확인했을까? 나는 아마도 할아버지가 새들의 지저귐이나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셨을 거라 상상한다.
새들이 몇 시에 일어나는지 찾아보았다. 새들은 일출 약 90분 전에 일어나 지저귄다고 한다. 그럼 새벽 4시 또는 5시쯤에 깨셨으려나? 그때는 밖이 어두웠을 것인데. 아님 아예 잠을 안 청하셨으려나? 긴장한 탓에 해가 산자락 뒤에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할 무렵, 나갈 채비를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다음 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