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탐정이 되어가는 과정
2022. 11月
(이어서)
5. 무엇을 가지고 가셨을까?
당연히 먹을거리. 감자는 분명히 챙기셨다.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그럼 얼마나 많이 가져가셨을까? 아마 20개 정도면 일주일을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루에 3개 정도면 좀 고생하는 일주일 치고는 버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가방이 필요했을 터. 그 당시엔 20개의 감자를 넣을만한 가방이 뭐가 있었을까?
50년대에 있었을 법한 가방 종류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요즘은 가방 하면 백팩도 있고, 크로스백도 있고, 에코백도 있는데 50년대만 해도 이런 종류의 가방이 있었으려나 싶다. 당시 할아버지 나이가 20대 초반이셨으니, 가방 하면 학생 때 들고 다니던 가방은 갖고 계셨을 것 같고, 가정집에 있을 법한 가방은 무엇이 있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볏짚으로 꿴 바구니? 몰라도 너무 모르겠다.
우선은 학생들이 들고 다녔을 책보자기가 가장 유력한 후보 같아 보였다. 감자를 넣고 천 쪼가리로 묶어서 어깨에 짊어지지 않으셨을까 싶어서다. 하지만, 내가 직접 보고 가방을 메지 않아서 맞는지는 모르겠다. 우선은 책보자기를 가지고 가셨으리라 생각해 본다.
6. 어디에 숨을 지는 미리 정하셨을까?
일주일 정도 숨는 것이었으니 원래 알고 있는 산자락으로 들어가셨을 법도 하다. 할아버지는 아마도 '고작' 일주일이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어디에 숨을지 미리 정하기는 하셨을까? 무작정 은신처도 확보하지 못한 채 산에 들어가는 것은 좀 위험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순되지만 과거의 젊은 할아버지를 향한 손녀의 걱정이 앞섰다.
할아버지 말론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산에 호랑이가 살고 있다고 하셨다. 산속 호랑이는 동화 속에서만 들어봤지, 만약 내가 사는 동네 산자락에 호랑이가 살고 있다는 상상을 하면 두렵기만 하다. 가끔 뉴스에 도심을 휘젓는 멧돼지 소식만 봐도 놀랍고 무서운데 호랑이는 다른 차원의 무서움 아닌가.
7. 지도는 갖고 계셨을까?
산을 헤매다 보면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지도의 필요성을 느끼셨을지 궁금했다. 그 당시 할아버지가 갖고 있었을지도 모를 옛날 지도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군이 만든 군 전략지도나 지형도였다. 그 외는 조선시대서부터 내려오는 지도들이었는데, 대부분 맹산까지는 보여주지만, 송암리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미군 지도를 할아버지가 갖고 계셨을 리는 만무하고, 지도가 존재하기는 했는 지도 잘 모르겠다. 일제 때 만들어진 지도가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내가 찾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내 고민을 들은 중국인 친구는 북한 지도라면 중국에도 있지 않겠냐며 본인이 찾아주겠다고 했다. 부득이하게도 친구를 통해 얻게 된 지도들은 전국 지도 스케일의 지도들이라 송암리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지도를 찾기란 힘들었다.
나는 아마도 할아버지가 지도는 안 갖고 가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 11月의 끝자락.
그날, 그 하루는 여전히 나에겐 굳건히 잠겨있는 방이다. 하지만 마치 안에서 더 열어보라고 방에서 속삭이는 듯한 여정이었달까. 여전히 수수께끼다. 낱낱이 파헤치기는 것은 애초에 포기했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씩 할아버지의 그날의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그리하여 완성한 할아버지의 여정.
할아버지 집에서 산속 은신처까지 따라가 본 내 흔적.
추측투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