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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데이 Oct 15. 2023

6화. 다시 짓는다는 것

할아버지, 저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2022. 11 月


3-4개월 동안 할아버지 고향에 대한 단서들을 열심히 모았다. 인터넷 검색은 물론이거니와, 알고 지내던 한 중국 친구에게 1900년대 초중반 북한 지도를 부탁해보기도 하고, 학교 도서관 지하 서고에 들어가 6.25 전쟁 미 해군 지도 모음집을 열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갖고 있는 단서들을 하나씩 꿰어가며 마을의 윤곽을 그려내고 있던 11월의 초겨울이었다.


그리고 한 통의 전화.

.

.

.



나의 할아버지는 그렇게 곁을 떠나셨다.


병원에서 힘들게 사투를 벌이기보다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남은 날들을 보내고 싶었던 할아버지. 편안하게 주무시다 가셨다.


마음 한편이 지나치게 쓰라렸다.




그로부터 1-2주가 지났다. 내 모습은 마치 표류하는 배에 올라타있는 모습과도 같았다. 과연 이 작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할아버지가 안 계신데 이 작업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긴 한 걸까?


외로웠다. 나, 그리고 할아버지, 이 가족이란 끈 말고 이 여정의 오랜 파트너를 잃었다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것이냐 묻는다면, 답은 절대 아니오다. 난 멈추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끝을 보고 싶었다. 이젠 할아버지의 고향, 내가 더 알고 싶어 졌으니까 말이다.


나는 할아버지와 달리 마을의 전체 모습을 다시 짓고 싶지는 않았다. 그 땅에 직접 발을 디딜 수 있는 날이 생긴다면 모를까, 현재로선 평생 내게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미지의 공간을 파보는 데 시간을 쏟을 필요성을 못 느꼈다.


다만, 나는 할아버지가 마을을 떠났던 ‘그날‘이 더 궁금했다. 본능적으로 ‘그날이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할 순 있었을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된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다.


옛날 고향 모습을 추적하기보다 할아버지의 기억 속 특정 순간들을 탐험해보고 싶었다. 1952년 공산군 징집을 피하고자 떠난 1주일의 피신이 75년의 긴 이별로 변하게 된 날의 순간들을 재구성하며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할아버지의 고향의 모습,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다시 짓기 아닐까?




할아버지, 대체 그날은 어떤 날이었나요? 몇 시에 떠나셨고, 어디로 떠나신 건가요? 아니, 갈 곳은 정하고 가신 거였나요? 무엇보다.. 떠날 때 무슨 마음이었나요?


대답 없는 할아버지께 물어볼 것 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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