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겐 펜과 종이만 있었으면 되었다.
2018. 8月
할아버지 종이랑 펜 있나?
몇 년 사이에 눈이 급격하게 나빠지셔서 무엇인가를 쓰시는 것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할아버지였다. 그런데 종이와 펜을 찾는다니 이는 예사롭지 않음을 나는 직감했다. 얼른 할아버지 방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들어간 할아버지의 방은 시간이 마치 멈춰있는 듯 했다. 어쩜 필기구는 옛날에 쓰시던 것이 그대로 있는지. 펜을 보면 더더욱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았다. 어렸을 적 어느 문방구에도 이 펜을 찾을 수 없는데 할아버지 집만 가면 이 펜들이 수두룩하게 나오곤 했다.
그리고 종이.
종이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께서는 늘 이면지나, 벽에 붙이는 큰 달력 종이들을 방 한 켠에 모으셨다. 무작정 잡히는 종이를 하나 들고 거실로 나갔다.
나 할아버지, 여기요.
할아버지는 강부터 그리기 시작하셨다. 어찌나 거침이 없으시던지 강의 줄기를 그으시던 모습은 90이 넘은 노인의 기억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확신의 선긋기랄까. 그의 선긋기가 끝날 때까지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
지도가 완성된 후, 할아버지는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해주시기는 커녕, 듬성듬성 보이는 것들부터 설명하셨다.
할아버지 이게 강이라고. 마탄강. 대동강 상류야. 그리고 마을 들어오려므는 다리를 건너야했다고. 그 다리 아니면 마을에 못 들어와. 아마도 그 뭐야 시멘트 그 뭐지.
나 콘크리트 다리라는 말씀이시죠?
할아버지 그래. 그건가봐. 마을을 둘러보면 다 산이었다구.
나 그럼 산동네였어요?
할아버지 아냐, 아냐. 평지였어. 근데 산이 둘러싸고 있는거지. 마을은 다 기와였어.
나 기와집은 부자들 살던 집 아니었어요? 다 기와일 수가 있나.
할아버지 그 때는 좀 상황이 바꼈지. 기와집은 더이상 양반들 집이 아니었어요.
나 얼마나 있었는데요?
할아버지 아마 30채 정도였나.. 우리 할아버지께서 향교 교장이셨다구. 향교라 불렀어... 그래서 우리가 마을에서 제일 큰 논을 가지고 있었다니까.
가끔 할머니는 할아버지랑 말다툼하실 때, 종종 이런 말을 하셨다. "부잣집 도련님이 뭘 알겠어". 당시엔 할머니가 왜 저렇게 얘기하실까, 참 별 소리를 다하셔 싶었지만, 진짜였구나- 했던 순간이었다.
할아버지 다리를 건너면, 공동묘지가 있었어요. 그 공동묘지를 지나야만 집들이 나타나. 다 일제 때 지어진 한옥들이었지. 집들은 산 밑에 있는거고. 기와가 아마.. 그 저기 뭐냐, 고려대학교 기와. 거기 가면 볼 수 있는 기와랑 비슷했어. (후에, 나는 고려대에 기와지붕을 찾아봤지만 그런 건물을 찾지 못했다.)
그러고선 할아버지께선 커피 한 모금 마시더니,
할아버지 내가 아마 광복하고 1년 반 정도 나중에 마을을 떠났을거야. 18살이었나. 네 삼촌*이랑 떠났어 (*할아버지의 사촌을 말씀하시는 거다) 그리고 많은 일들이 있었지.
많은 일들이란 말에 더욱 귀를 쫑긋 세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