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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데이 Oct 15. 2023

5화. 전화 한 통의 나비 효과

2018. 8月



(이어서)


할아버지  당시에 우리 가족 중에 나만 남자였다고. 가족들이 다 나보고 일주일 정도 산에 숨어있으라 했어. 일주일동안 감자만 먹으면서 버티는데 아유. 폐가였지, 산속에서. 결국에 발견되었어.


나는 그렇게 죽는 줄 알았어. 행운이었던 거야, 총알이 불발되어서. 그 때 기억난다구. 그 순간에 고요했거든. 내가 바로 그 때 그 사람 밀치고 도망쳤어. 그냥 도망쳤어. 그리고 신의주인가에 도착했지. 거기서 잡혔어.


나  그렇게 거제로 오시게 된 거에요?


할아버지  그래, 거제로. 포로가 된거지.


엄마  자, 이제 나가자. 좀 있으면 11시 10분이야, 준비해. 아버지도 준비하시죠. 근데 아버지, 나도 갑자기 가보고 싶다. 아버지, 그쵸? 


할아버지  ...




내 녹음기는 여기까지 저장되어있다. 가족들은 하나둘씩 방에서 나와 우래옥에 갈 채비를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소파에 조금 더 오래 앉아계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주신 맹산 지도와 그 곳에 대한 자료가 담긴 종이꾸러미, 그리고 할아버지의 손 때가 남은 지도를 들고 비닐파일에 끼웠다. 


여전히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많은 일들이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분명 그 많은 일들의 고작 일부였으리라. 할아버지가 다시 고향에 못 돌아가셨다는 것, 거제도에서 힘든 포로생활을 하셨다는 것, 그리고 전쟁 후 어찌저찌하여 먹고 살 길을 찾고 이렇게 나와 함께 같은 소파에 앉아있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 후로, 인터넷 검색과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큰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위성사진을 보며 위치를 찾아내는 데에만 혈안이었는데, 현실은 북한의 조그만 마을 자료 찾기가 그닥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고향을 다시 지어보겠다는 내 의지의 불꽃은 희미해져갔다. 다만, 할아버지께서 주신 자료들은 책장 어딘가에 재운 채로 말이다.


맹산군 송암리로 추정되는 곳들의 위성사진 몇 장




2022. 여름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4년 후의 나는 할아버지께 말한대로 건축학교에 들어와 마지막 학기를 준비 중이었다.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할아버지께서 건강이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소식이었다. 임종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는 소식에 전화를 끊고 나는 조금 멍해있었다. 그리곤 이내 내 머릿속에는 할아버지와 나눴던 대화가 다시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저 예전 자료들을 다시 들춰보면서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왜 이걸 중간에 멈춰버린 것일까, 진작에 할아버지랑 더 많은 대화를 나눠볼 걸, 할아버지한테는 얼만큼의 시간이 남은 것일까 생각하면서. 후회가 밀려왔다. 


할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의 가치는 내 학교생활의 종지부를 끝내기 위해 들이는 노력의 시간보다 더 우위라고 판단했다. 모든 시간을 할애해 어떻게든 할아버지 고향의 모습을 떠나시기 전에 보여드리고 싶었던 나는 그렇게 내 마지막 학기의 건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다시 짓는 이북땅 할아버지 고향'. 


그렇게 다시 할아버지 고향을 찾아보는 여정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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