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月
(이어서)
할아버지 당시에 우리 가족 중에 나만 남자였다고. 가족들이 다 나보고 일주일 정도 산에 숨어있으라 했어. 일주일동안 감자만 먹으면서 버티는데 아유. 폐가였지, 산속에서. 결국에 발견되었어.
나는 그렇게 죽는 줄 알았어. 행운이었던 거야, 총알이 불발되어서. 그 때 기억난다구. 그 순간에 고요했거든. 내가 바로 그 때 그 사람 밀치고 도망쳤어. 그냥 도망쳤어. 그리고 신의주인가에 도착했지. 거기서 잡혔어.
나 그렇게 거제로 오시게 된 거에요?
할아버지 그래, 거제로. 포로가 된거지.
엄마 자, 이제 나가자. 좀 있으면 11시 10분이야, 준비해. 아버지도 준비하시죠. 근데 아버지, 나도 갑자기 가보고 싶다. 아버지, 그쵸?
할아버지 ...
내 녹음기는 여기까지 저장되어있다. 가족들은 하나둘씩 방에서 나와 우래옥에 갈 채비를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소파에 조금 더 오래 앉아계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주신 맹산 지도와 그 곳에 대한 자료가 담긴 종이꾸러미, 그리고 할아버지의 손 때가 남은 지도를 들고 비닐파일에 끼웠다.
여전히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많은 일들이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분명 그 많은 일들의 고작 일부였으리라. 할아버지가 다시 고향에 못 돌아가셨다는 것, 거제도에서 힘든 포로생활을 하셨다는 것, 그리고 전쟁 후 어찌저찌하여 먹고 살 길을 찾고 이렇게 나와 함께 같은 소파에 앉아있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 후로, 인터넷 검색과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큰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위성사진을 보며 위치를 찾아내는 데에만 혈안이었는데, 현실은 북한의 조그만 마을 자료 찾기가 그닥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고향을 다시 지어보겠다는 내 의지의 불꽃은 희미해져갔다. 다만, 할아버지께서 주신 자료들은 책장 어딘가에 재운 채로 말이다.
2022. 여름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4년 후의 나는 할아버지께 말한대로 건축학교에 들어와 마지막 학기를 준비 중이었다.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할아버지께서 건강이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소식이었다. 임종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는 소식에 전화를 끊고 나는 조금 멍해있었다. 그리곤 이내 내 머릿속에는 할아버지와 나눴던 대화가 다시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저 예전 자료들을 다시 들춰보면서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왜 이걸 중간에 멈춰버린 것일까, 진작에 할아버지랑 더 많은 대화를 나눠볼 걸, 할아버지한테는 얼만큼의 시간이 남은 것일까 생각하면서. 후회가 밀려왔다.
할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의 가치는 내 학교생활의 종지부를 끝내기 위해 들이는 노력의 시간보다 더 우위라고 판단했다. 모든 시간을 할애해 어떻게든 할아버지 고향의 모습을 떠나시기 전에 보여드리고 싶었던 나는 그렇게 내 마지막 학기의 건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다시 짓는 이북땅 할아버지 고향'.
그렇게 다시 할아버지 고향을 찾아보는 여정에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