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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데이 Oct 22. 2023

9화. 그날

할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서

1952. 2月


본 이야기는 필자가 할아버지의 그날 하루를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마치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는 시점으로 서술합니다.  


날이 밝았다.



잠을 설치던 할아버지는 새의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깨신다. 밖을 보니, 해가 이제 간신히 뜨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떠나기 전날, 일주일 동안 먹을 감자를 미리 챙겨놓으셨다. 소쿠리에 감자를 담고 옷감으로 묶어놓았던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나갈 채비를 하신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즉 나의 고조할아버지께선 맹산향교의 교장이셨다. 당시 향교는 폐지된 이후였지만, 여전히 글공부와 예절공부는 고조할아버지께서 직접 지도해주셨다고 한다. 그런 고조할아버지는 매사 정신력을 강조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내게 항상 정신력을 강조하셨던 것처럼. 아마 이 교육은 자손 대대로 이루어지고 있나 보다. 할아버지는 떠날 때에도 다짐했을 것이다.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더라도 정신력만 붙들면 살 수 있다고 말이다.


곧바로 집을 나서는 모습이 보인다.



할아버지네는 밭 만평, 논 오천 평을 소유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긴 평원을 지나는 데에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드디어 우리 앞에 볏짚으로 만들어진 울타리가 보인다. 울타리를 지나니 이제 진짜 떠나는 길이라고 생각하셨는지 뒤를 한 번 돌아보신다. 금방 돌아오겠다고 생각하시는 건가. 이내 산 쪽을 향해 걸어가신다.



집 앞 마탄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야 했다. 강가로 점점 다가가신다. 아직 날이 어두워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어떤 다리를 건너시려는 걸까. 이 마을에는 통나무다리와 콘크리트 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이내 콘크리트 다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통나무다리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방향을 트신 듯하다. 자갈밭을 지나 큰 돌을 밟으며 다리 위로 올라가신다. 물소리는 자글자글하고, 아침이라 그런지 수분이 촉촉하고 안개가 낀 듯하다.



마을을 벗어나려면 넓은 공동묘지를 지나쳐야 했다. 으스스한 아침에 아무도 없는 길거리를 걸으며 묘지를 가로질러가야 한다는 사실이 할아버지를 두렵게 만드는 것일까. 걸음이 빨라지신 듯하다. 아니면 그저 내가 무서워서인가. 자꾸만 걸음을 재촉하며 앞만 보고 걸어가신다.



장승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마을을 점점 벗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보통 유적지 여행하며 장승을 봐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장승을 보니 생김새가 사납다. 악귀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맞긴 맞나 보다. 눈을 부라리며 나를 쳐다보는 듯하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걸음이 빠르시다.



눈앞에 산나무들이 웅장하게 서있다. 안 그래도 검은 껍질을 가진 소나무들이다 보니 더 산이 어두워 보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숲 속으로 들어가려 하니 할아버지는 약간 주저하시는 듯하다. 어디로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시나? 이내 발을 내딛으신다.


고요하다. 너무 고요해서 작은 움직이는 소리에도 예민해진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동물인가? 호랑이가 산다고 전해지는 이 산속에서 더욱 귀를 쫑긋 세우며 걸음을 재촉한다. 얼른, 어디라도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시는 듯하다. 닥치는 대로 걷다 보니 저 멀리 어떤 오두막이 하나 보이기 시작한다. 누가 사나? 혹시라도 안에 군인이 있으면 어떡하지? 할아버지도 같은 생각인지 오두막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근처에서 잠시 집을 감시해 보시려는 것 같다.  



해가 점점 밝아온다. 점차 햇빛이 가지 사이 너머로 땅에 닿는다. 할아버지는 수풀 사이에 몸을 비집고 계속 30분은 넘게 그 오두막을 쳐다만 보신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웬 둔탁한 나뭇가지를 하나 챙겨서 다가가신다. 최대한 조용히. 저 오두막을 보아하니 창호지가 찢겨있고, 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이 폐가임을 짐작하게 한다.


나뭇가지로 문을 살짝 건드려본다. 집 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데, 아무도 없어 보이는 듯하다. 이내 문을 활짝 열어보신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집 안을 둘러보니 6평 남짓한 조그마한 오두막이다. 먼지가 자욱하지만 일주일 동안 지내기에 나빠 보이지 않은 듯하다. 대충 마루에 먼지를 쓸고, 구석에 앉으신다.



1일.. 2일.. 3일.. 4일..

(해가 지고 뜰 때마다 할아버지는 돌로 벽에다가 선을 그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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