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1주일 뒤
1925. 2月
탕!
정적이 흐른다. 내 눈앞엔 할아버지와 누리끼리한 옷을 입은 두 명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떨어진 무언가가 떼굴떼굴 구르는 소리만 들린다. 퀴퀴한 냄새도 난다. 나는 이 침묵이 불편하다.
그러자 갑자기 할아버지가 그들을 밀치고 밖으로 뛰어가신다. 너무 빠르셔서 따라잡기가 어렵다. 이내 뒤에서도 그 사람들이 달려온다. 뒤를 돌아보니, 한 명은 뛰어오고, 한 명은 자리에 앉아 우리를 조준하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뒤도 안 돌아보신다. 나도 안 돌아본다.
뛰면서 생각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그 상황이구나. 4년 전에 할아버지랑 소파에서 얘기할 땐 그렇게 죽는 줄 알았다고 나에게 덤덤하게 말씀하셨지만, 결코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셨을 것이다. 그렇게 총이 불발되고 앞만 보고 도망치는 할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할아버지에게 앞으로 닥칠 일들을 할아버지는 모르시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부디 그 순간들이 너무 할아버지에겐 고되게 다가오지 않길 바라면서 나도 뛴다.
병사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뛰었던 것 같다. 계곡 옆에 큰 바위 밑에 몸을 숨기고 물을 들이켜고, 또 얼마 안 있어 또 뛰고, 뛰었다. 마을은 가급적 피했다. 사람들을 마주치기 싫어서이신 듯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반복했다. 그리고 도착한 작은 항구.
할아버지가 누군가에 끌려가신다. 그 오두막에서 본 사람들과는 분위기가 달라 보인다. 여기저기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이북방언이 아닌 걸 보니 나는 짐작했다. 여기가 신의주일 수도 있겠구나.
1951년 겨울쯤 미군과 중공군 간 신의주에서 공중폭격전이 일어난 것을 알고 있다. 미군과 국군이 그 전투에서 이겨 이 지역을 점하고 있었나 보다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팔을 꽉 잡고 거칠게 다루는 사람들은 그를 철저히 수상한 이방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스파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열심히 항변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런데 아마 그게 할아버지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처럼 거칠게 다뤄지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 보인다. 그들이 곧 포로들이구나. 할아버지도 포로신세가 되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후에 올라탈 배가 도착할 때까지 그곳에 머무르셨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거제로 보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