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오면서 누군가가 처음 내뱉은 말은 "이렇게 난해하고 해괴한 영화는 처음이야"였다. <록키호러픽처 쇼>(짐 셔면, 1975)의 양성애자 외계인 닥터 프랭크는 관객들에게 일반적이지 않은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처음 물꼬 튼 감상평을 시작으로 사람들은 하나둘씩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도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였다.
사람들 대부분은 이 영화를 보고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고 그 원인을 여장을 한 프랭크의 옷차림과 동성 간의 사랑으로 꼽았다. 그러나 100여분의 영화 러닝타임 동안 나는 이러한 장면들이 '해괴하다' 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아무런 기준과 규범 없이 융합되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구성으로 완전해 보였다.
상영관을 나오자마자 들려오는 아무개씨의 영화평은 특정한 경계로 왼쪽과 오른쪽을 나누지만 이 기준을 나누어 생각한 발상이다. 하지만 이 기준을 정한 사람은 누구이며 그 기준에 있는 사람은 예외적인 것으로 치부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생겼다. 흔히 예외적인 것 또한 그들의 세계에서는 중심인 것이기에 어떠한 관점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규정짓는 대상에 따라 규범 안의 범위와 밖의 범위가 달라지므로 누가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프랭크의 저택 안은 이러한 이분법적인 절단이 없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외계인과 인간, 동성애와 이성애 공존의 코드는 해괴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이상적인 공간을 단편인 일련의 예시로 보여 준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저택 안만 비추지 않는다. 저택 밖 서재, 즉 현실의 시선과 교차하여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이상의 세계에만 물들지 않게 한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공간은 간절히 바라는 이상일 뿐, 실제 현실의 시선과는 동일하지 않다, 때문에 이 영화를 접했을 때 대다수의 관객들은 현시로가 이상의 간극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이러한 작영이 '해괴하다'라는 말을 내뱉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기준이라고 속단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세계에서 예외를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폭력적인 행위이며 이를 당연시 여기는 것 또한 자제해야할 것이다. 나와 모든 이가 같은 생각을 하기란 어렵겠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경계선이 조금은 옅어지는 사회가 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