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인사담당자로서 첫 발을 내디딘 곳은 이제 막 공사가 한창인 외국계 기업이었다.
허허벌판에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허름한 조립식 건물 두 채가 전부였고, 바로 옆에서는 각종 건설장비와 공사업체 인부들이 뒤섞여 소음과 먼지 속에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임시로 지어진 사무실에서는 한국인 사장과 업무를 총괄하는 부장, 회계를 담당하는 과장과 여사원 한 명, 그리고 공장 건설을 담당하는 다섯 명, 이렇게 아홉 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 외에, 생산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 외국 본사에 파견을 보낸 연수생이 스무 명 가량 있다고는 하지만, 입사 당시 내가 볼 수 있었던 인원은 열 명 남짓에 불과했다.
그렇다! 내가 입사한 기업은 이제 막 만들어지기 시작한 초창기 신생 기업이었던 것이다.
초창기 기업이 그렇듯, 입사했을 당시 기업으로서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직체계 조차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사람도 없었으며, 인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하나씩 하나씩 배워가면서 처음부터 만들어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입사하고 내가 처음 접한 것은 근로기준법이었다. 근로기준법이란, 근로계약에 관한 내용을 시작으로 임금, 근로시간, 휴게, 휴가, 연장근로, 취업규칙, 재해보상 등 근로자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한 노동 관련 법률 중 하나이다. 그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내가 "법"이라는 것을 알리가 있었을까? 나는 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법"이라는 것을 익혀야 했고, 인사의 "인(人)"자도 모르면서 대책 없이 인사담당이 되어, 무작정 몸으로 부딪쳐 가야 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직급체계와 임금체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장 일하고 있는 직원이 있고, 또 계속해서 충원해 가야 하는 상황임에도, 직급과 호칭체계를 어떻게 하고 임금 수준을 어떻게 가져갈지도 결정되지 않는 채, 주먹구구식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급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임금체계를 만들려 해도 막막하기만 했다. 관련 지식도 없었고, 어느 정도의 임금 수준이 적정한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조직 체계가 갖춰져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역할이나 업무 구분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결국,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을 적용하는 호봉제 밖에 없었다.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하여 호봉테이블을 구성하고, 직급별로 적정임금 수준 등을 고려하여 각 호봉의 테이블과 직급을 매칭 시켜 임금제도를 설계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취업규칙, 인사관리규정 등 기업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규정・규칙 등을 정비하고, 복지제도, 승진 및 평가제도, 교육제도 등 기업 운영에 필요한 기본적인 제도 등도 설계・구축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제도들이 효율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인사관리 시스템, 근태관리 시스템 등 전산 시스템도 어찌어찌 도입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구축한 제도를 실제로 운영해 가면서, 그때그때 하나씩 발견된 문제점은 내부 검토를 통해 수정・보완해 가면서 기업으로서 갖추어야 할 제도를 조금씩 완성시켜 나갔다.
당연하게도, 이 모든 것이 나로서는 처음 해보는 생소한 것이었다. 나는 이끌어 주는 사람도 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만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큰 일을 경력직도 아닌 신입에게 시킨 사람이나, 또 그것을 하고 있었던 나나, 정말 무모했었던 것 같다. 정말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해도 나는 매번 관련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정보를 취합해야 했고, 전문가의 자문을 구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외부 교육기관의 공개과정을 수강하는 등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많은 실패를 할 수밖에 없었고, 또 그만큼 만회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런 모든 과정들이 그 당시의 나에겐 너무도 힘들었었다. 아마도 젊음이라는 무기가 없었다면 할 수 없었던 일이지 싶다. 그렇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런 어려운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지 않나 생각한다.
비록 그러한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으나, 오랜 기간 인사를 담당하면서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사담당으로서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이나 자세를 깊이 공감하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지식은 노력하면 스스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인사담당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나 자세와 같은 정신적인 부분은, 단순히 노력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 인사업무를 해 오면서도, 그런 마음자세가 부족해서 스스로의 위치를 자각하지 못한 채, 단순히 기계적인 작업만 했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인사담당자로서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시받은 일 이외에는 사원의 불편함, 고충 등을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는다거나, 당사자에게는 매우 큰 일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배제한 채, 단순히 기계적으로 처리해 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경영진이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조언을 해야 함에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일도 많았다.
물론,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상황에 부딪치면서 경험을 축적하여 스스로 깨우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만약 인사업무를 담당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인사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고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이 그때 있었다면, 그 기간은 좀 더 짧아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사를 오랜 기간 담당하는 동안 부하직원을 육성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처음에는 나 스스로도 인사담당으로서의 역량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주로 직무지식에 대한 교육을 중심으로 OJT직무교육(On the Job Training)을 실시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육성된 부하는 직무지식역량은 높아졌을지 모르지만, 인사담당으로서의 넓은 시야와 유연한 사고방식 등 제대로 된 역량을 발휘하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단순히 인사업무를 하면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기계적으로 하는 단순한 "작업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후, 여러 명의 부하직원을 육성해 오면서, 진정 중요한 것은 단순히 직무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담당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맞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직무지식에 대한 교육뿐만 아니라, 인사를 담당하면서 지금까지 경험하고 느꼈던 여러 사례들과 더불어, 인사담당으로서 갖추어야 할 역량을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막상 가르치려고 해도 마음이라는 주관적인 것을 전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체계적이지 못하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주먹구구식으로 전달하다 보니 효율적이지도 못했고, 부하직원의 입장에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매 사안마다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는데 너무도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고, 당연히 부하직원이 인사담당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기까지도 오랜 기간이 걸렸다.
나는 인사담당자로서 갖추어야 하는 역량을 지금처럼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들을 전달하기보다는 좀 더 체계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했고, 도움을 받고자 관련 서적을 찾아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인사담당자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이와 관련된 책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직무분석, 전략적 인사관리, 면접기법 등과 같이 인사업무에 대한 전문 지식을 알려주는 책은 있었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책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인사담당자로서의 자세나 마음가짐이라는 것은, 어떤 평가기법이나 경영기법과 같이 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실험을 통해 확립된 객관적인 지식이 아니라, 극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책이 없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어쩌면, 인사담당으로서의 역량이라는 것은 오랜 기간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 이에 대해 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관련 서적이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책이 없다면 내가 직접 써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말이다. 내 생각이 비록 정답은 아닐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인사를 담당하면서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정리해 보는 것만으로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곧바로, ‘누군가 나에게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것들’, ‘내가 인사를 담당하면서 느꼈던 것들’, ‘부하직원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도, 전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히려 논점을 흐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중에서 ‘이것만은 꼭’ 전달해야지 싶은 것들만을 간추렸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인사담당자로서 반드시 가졌으면 하는 마음가짐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자부심, 책임감, 전문성, 소통능력, 변화 주도, 그리고 신뢰와 신념이라는 7가지의 마음가짐이다.
내가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그래서 꼭 전해주고 싶은 이 7가지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고자 한다. 이 글이 인사담당자의 길을 이미 선택한 사람과 그 길을 걷고자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