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이야기 : 끊임없이 소통하라 ③
기업에서 운영하기 어려운 인사업무 중의 하나는 바로 평가제도일 것이다.
당시 회사에서는 사원들의 평가를 역량평가와 성과평가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었다. 역량평가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업무역량을 평가하는 것으로, 어떤 목표를 달성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내고 있는 행동특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성과평가는 결과에 대한 평가로서, 조직의 목표와 연쇄하여 본인이 자신의 목표를 스스로 세우고, 이를 달성한 정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성과평가의 경우, 목표만 제대로 세워져 있다면 생각 외로 운영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 왜냐하면 결과는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가결과에 대한 이견이 나오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능력 평가의 경우는 다르다. 목표를 달성해 가는 과정 중에 정보를 수집해 나가는 행동과 같은 적극성이나, 성실함, 노력, 업무자세, 조직이나 동료와의 협업 등을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수치로 나타내기도 쉽지 않다. 평가지표 자체도 애매할 뿐만 아니라, 정확한 근거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평가자 자신이 평가를 했다 하더라도 이를 피평가자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기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상대적으로 피드백이 쉬운 성과평가에 대해서는 회사의 방침으로서 피드백을 하도록 하고 있었으나, 역량평가는 아무래도 평가자에게 부담이 되었기 때문에 사원에게 피드백을 할지 말지는 평가자의 재량에 맡기고 있었다.
문제는 평가의 납득성에 있었다. 당시 회사에서는 승진이나 기본급 인상을 결정할 때, 역량평가의 결과를 반영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피드백이 없다 보니 사원들이 평가결과에 납득을 하지 못했다. 승진한 사람을 보고는 자신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데 승진하게 되었다며 납득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승진한 사람 자신들도 자신이 왜 승진대상이 된 것인지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사에서는 이러한 평가제도의 공정성 문제를 인식하고, 평가제도를 개선하기로 하였다. 평가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원들이 평가결과를 스스로 납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기 평가를 하는 것도 납득성을 높이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첫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미국의 정부 기관에서 실험한 일화가 있다. A집단과 B집단으로 나누어, 그중 A집단에게 연구를 위해 지금 하는 실험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밀실에서 종이비행기를 접도록 시켰다. 그러고 나서 A집단과 B집단에게 각각 종이비행기를 얼마에 사겠느냐고 물었다. 종이비행기를 만든 A집단은, 만들지 않은 B집단에 비해 매우 비싼 값을 불렀다. 종이비행기를 만들지 않은 B집단에게 종이비행기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물건에 불과하지만, 직접 만든 A집단에게는 자신의 노력이 들어간 만큼, 스스로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이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이 들어간 것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주위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에도.
둘째, 자신의 능력이 아무리 훌륭해도 진정 중요하게 평가해야 하는 것은 회사가 기대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청소하는 업무를 하는 사람을 평가할 때는, 청소하는 능력만을 평가하면 된다. 그 사람이 설사 외국어 능력이 출중한 우수인재라 하더라도 청소를 제대로 못하면 회사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능력인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 그 사람은 아마도 자신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라고.
이러한 이유로 자기 평가를 배제한 채, 사원의 납득을 얻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고, 결국 회사가 기대하는 역할이 무엇이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게 하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연초에 성과목표를 설정할 때, 능력 평가의 평가 항목에 대해서 상사와 부하가 서로 면담을 통해 회사가 기대하는 역할이나 태도, 역량 등을 명확히 전달하는 “기대 행동 전달 면담”이라는 프로세스를 넣어 스스로가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상사의 말을 통해 명확히 알게 하자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의도한 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상사 스스로도 각각의 평가항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도 했고, 무엇을 기대하는지, 그 수준은 어떤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정립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사 스스로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것을 부하에게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겠는가?
의도는 좋았고, 제도도 좋았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사원들의 입장에서는 이전과 달라진 점이 없었다. 그리고, 평가자들은 평가자대로 기대 행동 전달 면담이라는 프로세스의 진행과 역량평가에 대한 결과 피드백에 대해 엄청난 부담감을 느낄 뿐이었다.
이런 문제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제도를 만드는 데 있어서 사람을 간과했기 때문이었다. 사람과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책상에 앉아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배워, 어떤 제도를 아무리 잘 만들어 냈다 하더라도, 그 제도에 사람이 없으면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떤 제도든 간에 결국 사람이 운영하기 때문이다.
방금 예로 든, “기대 행동 전달 면담”이라는 평가 프로세스도 평가자 교육과 팀장에 대한 인사의 개별 지원으로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정착할 수 있었다. 결국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많은 소통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떤 제도든 그 속에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
또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회사에서는 QC분임조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QC분임조라는 것은 어떤 문제에 대해 혼자가 아니라 관련된 사람들이 하나의 모임을 구성하고, 상관 설계, 연관도와 같은 각종 품질기법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을 총칭하는 말이다.
인사에서는 이제 좀 더 고차원적인 분석기법을 도입하여 체계적인 품질관리체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당시 관심이 있었던 6 시그마 제도를 도입하고자 했다.
6 시그마란, 기업경영의 혁신기법의 하나로서, 통계적 접근방식으로 제품 100만 개 당 0.002개 이하의 결함만을 인정하는 등 사실상 무결점 수준의 품질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980년대 모토로라에서 처음 도입된 제도이다. 이 6 시그마에서 사용하는 기법들은 단순히 품질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사적으로 확대하여 사무 지원과 같은 지원업무의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는 등 그 활용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이러한 장점이 있는 6 시그마를 전사적으로 도입하면, 회사 내에서 하고 있는 각종 개선 업무에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능력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이미 QC분임조를 통해 각종 품질기법들을 활용하고 있는데, 새롭게 6 시그마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현장의 목소리도 있었으며, 6 시그마에 대한 이해도 낮았다. 그리고 경영자 또한 큰 기대를 하지 않아 경영측면에서의 지원도 부족했다. 결국 6 시그마 제도의 도입은, 현실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제도가 도입되면서 얻을 수 있는 장점만 생각했지, 사람들의 생각이나 기업의 풍토,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적 요건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사담당자는 많은 지식을 쌓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지만, 그 지식을 인사담당자로 있는 동안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그 기업의 풍토나 조직 분위기, 경영자의 의지 등과 맞지 않을 경우에는 실제로 도입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어떤 때에는 오히려 도입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그 기업에 맞는 제도가 좋은 제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인사담당자로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보고 싶다는 욕심을 갖기 마련이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뭔가 조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든지,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제도를 우리 기업에도 도입해 보고 싶다든지 하는 유혹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사는 책상에서 자기만족만을 위해 제도를 설계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인사가 만든 제도는 그 조직의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제도를 설계할 때, 인사담당자는 “사람”, 그리고 “현실”과 소통해야 한다. 운영할 여력도 없고, 현실과도 맞지 않고, 조직문화와도 맞지 않는 어설픈 벤치마크는 실패와 반발만이 있을 뿐이다.
즉, “사람”과 “현실”이 없는 제도는 도입하기도 전에 이미 실패한 제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