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정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한 것은, 결혼하고 3년쯤 시간이 흐른 뒤였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회사의 폐업 절차를 마무리한 직후, 바로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다.
제대로 월급이 지급되지 않아 그동안 가정 형편이 말이 아니었던 우리는, 다른 회사로 이직하고 난 후부터 조금씩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없었던 저축이라는 것도 하기 시작했고,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도 늘어났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다고 해서 곧바로 지출을 늘리지는 않았다. 그동안 어려운 생활을 경험하면서, 느낀 바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늘어난 씀씀이는 결코 다시 줄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 다른 하나는, 또다시 경제적 어려움은 다시 닥칠 수 있는 만큼 우리는 미래를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씀씀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씀씀이를 늘리지 않는 대신 저축을 많이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다르게 저축은 늘어갔다.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오면, 가끔 아내와 맥주를 한 잔 했다. 그 당시 우리가 술을 마실 때면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하나는 우리들만 알고 있는 힘들었던 우리의 옛 시절에 대한 이야기였고, 또 하나는 우리가 모으는 저축 통장이었다.
“우리 통장 한 번 볼까?”
내가 먼저 말할 때도 있었고, 아내가 먼저 말을 꺼낼 때도 있었다. 어쨌든, 아내와 나는 늘어나는 통장 잔액을 확인하면서 즐거워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리 큰돈이 아닐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예전엔 꿈도 꾸지 못했던 저축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기뻤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들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다른 안주는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술안주는 항상 적금 통장이었다. 매월 적금을 넣고 나면 통장정리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아내와 술을 한 잔 할 때면, 어김없이 통장을 꺼내 들고 바라보았다.
너무도 힘들었던 그 시절을 함께 이겨내고, 지금 이렇게 그 보상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우리는 그렇게 좋았던 것 같다.
그 시절, 그렇게 통장은 우리의 술안주였다.
사랑하는 자기야.
어려운 시절을 같이 해줘서 고마워.
그때 우리 통장을 보면서 그렇게 즐거워했었지.
힘든 내색 하나 없이, 항상 내 곁에 있어 준 자기에게
조금 더 잘해주라는 누군가의 선물인 듯해.
우리 열심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