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 역할에 걸맞은 책임감을 가져라 ①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회사는 직장인들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현실적으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이며, 또한 자신의 존재 의미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소중한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어쩌면 누군가에게 있어서 삶의 모든 것일 수 있는 회사라는 또 다른 세상을 설계하고 창조하는 사람이 바로 인사담당자이다. 때문에 설계의 당사자인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달라지게 된다. 그런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는 만큼, 당신은 그에 부합하는 설계자로서의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한다.
첫째, 제도를 설계할 때에는 항상 신중해야 할 책임이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던 회사는, 회사 내에 제품을 개발하고 연구하기 위해 기업부설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기업부설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연구원들은 “연구”라는 업무의 특성상, 상사에게 무언가 직접적인 지시를 받기보다는, 어떤 업무과제가 부여되면, 본인 스스로가 그 과제에 맞춘 연구계획을 세워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본인이 업무계획을 세우다 보니, 업무시간도 그렇고,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도 모두가 제각각이었다. 어떤 연구원들은 정해진 근무시간 중에 업무를 완수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두가 퇴근한 후의 시간대에 더 집중해서 업무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연구원들의 업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실제 잔업을 한 시간을 계산해서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한다는데 있었다.
근로기준법을 보면, 근로자의 연장근로시간에 대한 제한 규정이 있다. 그것은 설사 서로 간의 합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근로자는 주 12시간을 넘는 연장근로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그것이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업무 특성상 이를 지키기가 매우 어려웠다. 스스로 업무계획을 세워 근무를 하고 있었고 상사로부터 별도의 관리를 받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업무를 하다 보면 주 12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회사로서는 법률 위반이라는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뭔가 해결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해결 방안으로 떠오른 것이 재량근로시간제도였다. 재량근로시간제도란, 연구직과 같이 업무의 성질상 업무수행방법이나 시간 배분의 결정 등에 구체적인 지시를 하기가 곤란한 업무에 대해, 사용자가 그 수행방법을 본인의 재량에 맡기고, 서면합의로 근로시간을 정하면 실제 근로시간보다 많든 적든 간에 정한 시간만큼만 근로한 것으로 보는 제도이다.
인사에서는, 연구원들은 정해진 시간을 강제하기보다는 본인의 재량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성과측정에 있어서도 근로시간의 길이보다는 연구실적으로 판단을 해야 하는 직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상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연장근로시간의 위반 문제도 해결이 시급했기 때문에 재량근로시간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였다. 곧바로, 도입계획을 세우고, 해당 인원에 대한 설명회나 개별 토론회를 열어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입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재량근로시간제도가 도입되면, 실제로 잔업을 한 시간에 따라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얼마를 근무하든 정해진 보상만을 받게 된다. 이러한 점 때문에, 평소 잔업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연구원들은 환영을 했지만, 이와는 반대로 많은 잔업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인사에서는 근로시간의 구속 없이 본인의 성향에 따라 자유롭게 근무가 가능하며, 고정적인 수당을 지급받게 되어 경제적인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는 점 등 제도 도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점을 들어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설득했다. 결국, 적정한 수준에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지만, 사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너무도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제도로 만들어진 것은, 그 제도에 문제가 있든 없든 간에 이처럼 다시 바꾸기란 어렵다.
사람은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오랜 기간 반복해서 경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숙해져 버린다. 처음에는 문제가 있다고 인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경험해 오면서 몸에 익숙해지게 되면, 처음에 생각했었던 문제 인식이 점점 낮아지게 된다. 그리고, 결국 현재의 이것이 나에게 알맞은 것이고 올바른 것이라고 판단해 버리고 만다.
실 잔업을 재량근로시간제도로 바꾸는 것처럼, 나중에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개선하려고 하거나, 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바꾸고자 하면, 사람들은 기존에 익숙했던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것에 적응해 가야 하는 과정을 또다시 밟아야 한다. 그 과정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기존의 것이 옳은 것이고 반드시 자신들이 지켜내야 한다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이러한 변화에 크게 반발한다. 이런 사람들의 반응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한 번 제도로서 성립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안착이 되면, 이런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다시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그것이 자신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제도라면 더욱 그렇다.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제도라 하더라도, 그것을 만들 때에는 처음부터 여러 가지 사항들을 다각적으로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회사를 믿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고 인사담당자로서의 의무이다.
둘째, 장기적 관점에서 균형 잡힌 설계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많은 기업에서 복리후생제도의 일환으로 자녀학자금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근로의 대가로 받는 월급과는 별개로 자녀에게 소요되는 교육비를 직접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직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마련한 제도이다.
직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녀 교육비를 직접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도가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직원들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회사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구직자들에게 기업의 가치를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제도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인사담당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제도를 설계할 때에는 당장 얻을 수 있는 결과 이외에 여러 가지 것을 고려하여 균형 잡힌 판단을 해야 한다.
자녀학자금지원제도라는 것은, 당장에는 적은 비용으로 제도를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 제도는 비용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직원이 미혼이라 하더라도 아마 많은 이들이 결혼을 할 것이고 아이도 낳을 것이다. 지금은 자녀가 고등학교를 다니지만, 나중에는 대학교를 다닐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외유학을 갈 수도 있고, 특수학교를 다닐 수도 있다. 이렇게 비용이 증가할 것이 확실한 상태에서, 회사가 부담할 수 있는 여력이 어느 정도인지, 얻을 수 있는 효과와 비교해서 제도를 만드는 것이 좋은지 등 다각적이고 장기적인 시야에서 검토를 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이 제도에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될 때, 개선이나 폐지가 용이한지도 검토해야 봐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학자금지원제도의 경우 비용 증가가 당초 예상보다 높아 회사의 제정적인 부담이 된다거나, 기혼자에게 편중된 복지제도로 인해 미혼인 사원들의 사이에서 역차별 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럼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선택적복지제도와 같은 제도로 전환하는 것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선택적복지제도란, 다른 말로 복지포인트제도라고도 한다. 회사에서 사원들에게 복지포인트를 지급하고, 회사가 만들어 놓은 건강, 여가, 자기계발 등 여러 가지 항목 안에서 사원들이 스스로 선택해서 혜택을 받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일단 개인에게 지급하는 비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복지비용이 얼마가 소요될지 알 수 있고, 비용의 통제도 가능하다. 두 번째 장점은 혜택이 일부에게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 제도를 도입할 때, 기존 제도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할 때에는 보통 추가 재원을 투입하기보다는, 기존 제도를 폐지하여 재원을 마련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재원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도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입방식 때문에 기존에 자녀학자금지원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당연하게도 많은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회사에서 결국 학자금지원제도는 그대로 두고 추가로 재원을 투입해서 제도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지금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는 배려하는 마음으로 섣부르게 제도를 만들 경우, 나중에는 걸림돌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제도를 만들 때에는 단기적인 효과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지식과 장기적인 시야를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에는 회사와 사원, 내부와 외부, 현재와 미래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며, 이러한 여러 각도에서의 검토를 통해 균형 잡힌 생각을 갖고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셋째, 설계자로서 직면하는 벤치마킹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각 거점 별로 흩어져 있던 영업소를 하나로 통합하고자 움직이고 있었을 때의 일이었다.
이 당시 약간의 문제점이 있었다. 아무래도 하나의 사무실로 통합하려다 보니, 공간적인 제약이 있어서 영업사원 모두에게 충분한 업무공간을 제공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공간을 활용하여 모두에게 충분한 공간을 제공할까 고민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떠오른 것이 “프리어드레스(free address) 제”를 벤치마킹하는 것이었다. 프리어드레스제(free address制)란, 사무실 등에서 고정식 좌석을 폐지하고 비어 있는 자리에 마음대로 앉아서 업무를 보게 하는 것으로, 사무실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나온 제도이다. 이 제도는 해외 글로벌 기업과 같은 일부 기업에서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던 제도로, 사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알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영업사원들이다 보니, 실제로 사무실 공간에서 근무하는 시간보다는 출장으로 인해 비는 시간이 훨씬 많기도 했고, 회사 내에서도 장시간근로를 개선하는 등 “근무방식개혁”을 추진하고 있었던 때였기에 시기적으로도 적절하다 싶었다. 게다가, 해외 글로벌 기업에서도 이미 그 효용성을 인정받은 제도이기 때문에, 이 제도를 벤치마킹해서 우리 회사에 도입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사원들은 “내 자리”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다. “내 자리”가 있음으로 해서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인데 이 제도를 도입하면 떠돌이와 무슨 차이가 있냐는 것이었다. 또, “내 자리”가 있으면 간단한 사무용품을 책상 위에 두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는데, 없어지게 되면 볼펜 하나를 쓰려고 해도 공동으로 사용하는 사무용품 함을 뒤져야 한다는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기업문화가 다르기도 하고, 사원들의 의식이 기존에 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장하지 않았음에도, 이를 간과한 것이다. 결국 절충안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공간 자체가 협소해서 책상을 개별로 줄 수는 없었지만, 각자가 사용할 자리만은 고정적으로 배정하게 된 것이다.
인사담당자는 제도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더구나 일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사원들에게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그런 제도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인사담당자는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방법이 맞는가? 혹시 더 나은 방향은 없었는가? 지금 설계하고 있는 제도의 수준이 타사에 비해 어떤가?라고 말이다.
이렇다 보니, 인사담당자는 벤치마킹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벤치마킹이라는 기법 자체는 매우 훌륭한 기법의 하니이다. 이를 잘만 활용한다면 좀 더 쉽게 우리 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타사의 상황을 확인함으로써 우리 기업의 수준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벤치마킹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고 말한 것은, 어설프게 벤치마킹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어설프게 제도의 겉모습이나 장점만을 보고 도입할 경우에는 앞서 예를 든 바와 같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오히려 분란만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년 일하기 좋은 최고의 직장으로 뽑히는 구글(Google)의 복지제도 중에 무료로 식사와 간식을 제공해 주는 혜택이 있다. 사내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고급 레스토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식사와 간식을 언제든지 무료로 제공한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제도이다. 그러나 그런 부러운 복지제도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는, 구글의 강력한 성과주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퇴근하지 못하는 직원들이 많아서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인사담당자가 타사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때에는, 항상 그 제도가 정착되게 된 배경에 대해서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배경이나 이유를 확실히 이해한 후에, 우리 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혹은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는 형성되어 있는지를 깊게 고민하고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제야 그 벤치마킹이 제대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직원은 결코 인사담당자의 실험대상이 아니다. 단순히 좋아 보인다고 해서, 단순히 최신의 인사기법이기 때문에 인사담당자로서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섣부르게 제도를 도입하고 적용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설계자로서의 책임을 가지고, 항상 신중하게 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제도를 만들 때에는 장기적인 시야로 여러 가지 사항들 속에서 균형을 잡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어떤 제도든 간에 깊은 고민과 성찰을 통해서 확신이 생겼을 때, 그때야 비로소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