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1년도 되지 않았던 때인 것 같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장모님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고가 났어. 와봐야 할 것 같아.”
떨리는 장모님의 목소리를 듣는데, 도대체 내가 뭘 들은 것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사고, 병원, 그리고 와야 할 것 같다는 말만 겨우 알아듣고 서둘러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택시에 타자마자 난 사고가 났다며 빨리 가야 한다는 말만 택시 기사님에게 되풀이해서 말했다. 택시 기사님도 뭔가 심상치 않다고 여겼는지, 서둘러 가 주었다. 빠른 길로 가려고 고속도로로 진입한 순간 도로가 꽉 막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택시 기사님은 몹시도 미안해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타 들어가는 속마음과는 달리,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겨우 대학병원 응급실에 간 나는 쓰러져 있는 내 아내와 그 옆에 안절부절못하고 서있는 장모님을 볼 수 있었다.
“버스터미널에 가려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차가 갑자기 달려들었어.”
장모님의 횡설수설에 난 겨우 이 말만 이해했다. 응급실에 쓰러져있는 아내는 계속해서 정신을 잃고 토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화도 났다.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의사는 엑스레이를 찍으려면 기다려야 한다는 둥, 더 급한 환자를 먼저 봐야 한다는 둥, 속 편한 소리만 해댔다. 미칠 노릇이었다. 하지만, 난 아내 옆에 있어주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다른 사람보다 몸이 약하다. 지금 갖고 있는 극심한 통증과 싸우기에도 너무도 버거운 사람이다. 그런 아내에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보통 사람이라도 견디기 힘들 텐데, 그 약한 몸으로 견뎌야 하는 아내를 보기가 힘들었고 너무도 안쓰러웠다.
사실, 아내와 나는 아이를 갖기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을 예약해 두었다. 이 날은 검진을 받기 위해 서울로 가려고 버스터미널로 향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모든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다행히도 잘 견뎌 주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그래도 차와 사람이 직접 부딪친 사고였는데 이 정도에 그친 것은 거의 기적이라고 했다. 치료를 위해 상당 기간 입원 치료는 해야겠지만, 그래도 치료가 끝나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아내와 나는 하늘이 우리를 도왔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병원생활이 시작되었다.
내 생활은 이전과 완전히 변했다. 병원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병원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다.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에는 장모님께서 아내의 옆을 지켜 주셨다. 난 회사 일을 부지런히 끝내고, 다시 병원으로 와서 장모님과 교대했다. 저녁 식사가 나오면 아내가 먹을 수 있게 준비해 줬다. 주말이 되면 잠깐 집에 들러 간단하게 청소나 밀린 빨래를 하고는, 곧장 돌아와서 아내와 같이 있었다. 매일 쳇바퀴 돌 듯 그런 삶의 연속이었다. 병원 생활은 생각보다 길었다. 처음에는 2~3개월쯤이면 퇴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입원 기간은 예상을 훌쩍 넘겨 반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회사 사람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모두들 고생이 많겠다며 나를 위로해 주려 했다. 아내도 옆에서 병간호를 하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자주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난 괜찮다고 웃으며 얘기를 했는데, 그 말은 빈말이 아니라 정말 내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때의 마음을 좀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오히려 즐거웠다는 게 맞을 것 같다.
그곳이 어디든 우리가 같이 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고, 아내를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 난 무척 행복했으니까. 그리고, 겨울이 지나고 아내와 함께 병원 앞을 산책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멋들어지게 만개한 벚꽃잎이 밤하늘에서 눈이 되어 내리고 있었으니까.
병원에 있는 동안 난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거기가 어디든 내겐 전혀 상관없고, 너를 위해 뭔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건 내게 기쁨이니까.
큰 사고였는데, 무사히 나아서 정말 다행이야.
그거면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