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에서 처음 시작했던 우리는,
결혼하고 반년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자그마한 아파트로 옮겼다.
아파트로 이사 갈 정도로 갑자기 여유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회사 일 때문에 밤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많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이 허다했다. 결국, 항상 아내 혼자서 원룸을 지켜야만 했다. 처음에는 우리 형편이 좋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자 혼자 사는 원룸에서 범죄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니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결론은 이미 나와 있었다. 무리가 되더라도 옮길 수밖에.
나는 인근에 있는 작은 아파트 중에서, 비교적 저렴한 아파트를 찾아봤다. 지금 가지고 있던 돈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회사에서 사원 대출을 받으면 어찌어찌 전세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이사했을 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은 부모님들이었다. 방 두 개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려한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이제 아들 집에 놀러 갈 수 있겠다며 좋아하셨고, 장모님은 근처에 사시는 친척들에게 연락해서 조촐한 집들이를 대신해 주었다. 이렇게 다들 좋아하시는 데, 진작 이사 갈 것을 그랬다고 우리들은 서로 이야기했다.
막상 이사를 하긴 했지만, 우리들의 살림살이는 원룸 때 사용하던 그대로였다. 아파트 주민들은 우리가 이사하는 날 짐이 너무 없는 것을 보고 학생들이 이사를 왔나 보다며 소곤거렸다. 집만 커졌을 뿐 살림살이를 살 돈은 없는 걸 어쩌랴.
그런 우리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일까? 장모님은 어느 날 우리 둘을 데리고 가구점에 갔다. 장모님은, 결혼할 때 살림살이를 장만해 주려고 모아뒀던 목돈이 있다며, 이것으로 필요한 살림살이를 사라고 했다. 결혼하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지만, 처음으로 우리만의 살림살이를 장만한다고 생각하니, 마치 이제 막 결혼하는 신랑 신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파트로 이사한 것은 다행이지만, 우리는 더 힘들어졌다. 이전보다 더 아끼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당시 전세금으로 빌린 돈은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리 큰돈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그 돈은 평생을 갚아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깊은 수렁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내가 없는 곳에서 아내 혼자 원룸에 있는 것보다는 안심이 되었으니까.
난 내 아내가 웃는 것이 좋다. 행복하게 해 주겠다며 결혼했는데, 아내를 웃을 수 있도록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런 아내에게 적어도 넓은 공간은 마련해 주고 싶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집안의 모든 살림이 한눈에 보이는 그런 곳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도 존재하는 그런 공간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에 우리는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아파트로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한동안 입원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보금자리는 가끔 청소나 빨래를 하기 위해 잠시 들리는 곳이 되었다. 우리가 다시 이 공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집을 마련한 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전세는 보통 2년을 계약한다. 당연히 2년이 되면 계약을 갱신하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이사를 다시 가야만 한다. 우리도 그렇게 다시 재 계약을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집주인에게 연락해서 재 계약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락을 받은 집주인은 아파트 시세가 올랐으니, 전세금을 400만 원은 더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대출금을 갚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우리에게 400만 원이나 되는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다. 대출을 더 받을 수 있을까? 어디 빌릴 곳은 없나? 어렵게 마련한 집에서 또다시 이사를 가야 하나? 등등 별별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보험 회사에서 자꾸 교통사고 합의를 하자고 하는데, 우리 그냥 합의할까?”
아내는 합의를 말하지만, 그건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아내는 아직 치료가 더 필요했다. 더 이상 병원 사정상 입원이 어려워서 퇴원한 것이지, 교통사고 후유증이 완전히 나아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원인 모를 두통도 있었고, 어지럼증도 좀처럼 가시지 않았으며, 공황장애로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아내의 말대로 합의를 할까?라는 유혹이 자꾸만 들었다. 전세금을 해결하려면 지금 당장 합의금을 받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서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그 합의금이 자꾸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믿기 어려운 일이고,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겠지만, 보험회사에서 부른 합의금은 더도 말고 딱 400만 원이었다. 신기했다. 정말 하늘이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필요한 돈을 마련해 준 것일까?
망설이고 있는 내 마음을 아는지, 아내는 웃으며 이렇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우리는 복이 많은가 봐.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주시지는 않지만, 이렇게 딱 필요한 만큼은 주시니."
비록, 아픈 아내를 희생시킨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냥 이번만은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허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를 불쌍히 여겨, 딱 필요한 그만큼은 항상 주시는 것 같아
앞으로도 우리는 지금처럼 어떻게 든 함께 잘 살아가겠지?
딱 그만큼은 주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