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식당 갑시다!"
강원도 살다 부산에 와서 어슬렁거리다 동네 사람을 만났다. 시장으로 걷다가 샤시 가게로 들어가 사장에게 또 건넨다. "진주식당에 밥 묵으러 갑시다!"
활기라곤 없는 부산대 사거리 앞 시장 안, 여기 저기 거미줄부터 보이는 허술한 식당.
그런데 상 위에는 거미가 아니라 갈치와 고등어, 상추, 멸치가 빼곡하다. 셀 수 없는 반찬들이 그 작은 밥상을 채운다. 심지어 멸치반찬 그릇 위에 두 겹으로 채운 작은 파전
잔치상을 만난 것 같다. 밥값도 겨우 6천원(며칠 전 7천 원으로 올랐다)
식사를 마치고 시장 안 사무실로 들어가니 또 한 사람이 커피를 타준다. 올해 영화 한 편 찍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인지, 이 사람 저 사람이 여기저기 구경을 시켜준다. 고맙다.
며칠 전엔 금정산에서 봄산책을 그들과 함께 했다.
우연히 나온 대화 속에서, 4.3을 피해 어머니가 영도로 왔고 지금의 감천마을에서 10대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그 마을 남자들은 놀고, 여자들이 밥벌이를 했다고. 지금 관광지로 유명한 감천마을이 태극도마을이었다는 것, 증산교와 대순진리회가 거기서 탄생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마을에 살면서 포섭이 안 된 이유가 있을 것 같더니, 역시나 까닭이 있었다.
민초에게 밀려온 4.3이라는 파도. 단순히 정치적인 4.3사로는 알 수 없는. 거센 역사의 파도에 휩쓸려온 한 줌의 미역줄기를, 속초 아바이마을 관광지 어귀에서 마주했을 때와 같은, 그 기묘한 느낌.
같이 담배를 피우다가 고개를 든다.
도시의 먼지들이 모여 지붕 위에 오동나무를 키우고 있었다. 오동나무는 가야금을 만드는 나무다..
흙이 아니라 켜켜이 묵은 먼지. 그 먼지들이 흥과 진동을 일으키는 악기의 몸, 오동을 조용히 키우고 있었다.물론 모든 오동나무가 가야금의 몸이 되는 건 아니지만 어린 오동나무의 꿈 이기도 할 것이다
모두들 어린 오동나무를 보고 대견해했다.
그 속에서 언젠가 무너질 건물의 미래를 말하는 예언가도 있었다.건물이 무너지면 오동도 살아가지 못할 수 있다.그거 참.
흥의 몸과 뿌리는 여전히 위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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