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시간 21일 공부캠프로 떠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by 신지승


보고 싶은 하륵아,

벌써 2주일이 지났구나. 아마 이렇게 오래 아빠와 하륵이가 떨어져 있었던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아빠는 매일 아침, 네가 새벽 6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14시간 공부 캠프에서의 사진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단다. 한 사람의 부지런함과 열정은 주변 사람들의 마음마저 움직이게 하는 법이지.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시간인데. 꿈을 향해 달려가는 너의 선택이 하늬에게도 영향을 주었는지 , 하늬도 공부 시간을 체크하는 앱을 설치해 공부를 하고 있다. 하루 14시간씩 자신과 싸우며 지내는 하륵이의 모습이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운지, 또 한편으로는 아빠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왜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친구들과 함께 놀던 즐거운 시간도, 네가 매일 즐겨보던 자전거 바퀴 돌아가는 영상도 없는 그곳에서, 너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핸드폰도 없이 오직 스스로의 의지와 공동체의 분위기로 하루하루를 이겨내고 있겠지. 그것이 얼마나 값진 경험이며, 또 얼마나 소중한 성장의 시간이 될지 아빠는 잘 알고 있단다.

최근 아빠가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하나 접했어. 임진왜란 때 일본에 납치된,지금 너의 나이와 같은 13세 소년이 28년 만에 아버지와 편지로 재회했다는 이야기란다. 그때 10만 명이 넘는 조선의 아이들, 여자들, 남자들이 마카오와 세계각지의 노예시장으로 끌려가고 일본 각지로 팔려갔지. 그중에 여대남이라는 13살 소년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평소 외우고 있던 두보의 시를 일본 장수 앞에서 써 보였단다.

(두보는 중국의 유명한 시인으로, 그의 시는 고전시가의 정수를 이루며 인생과 자연, 인간의 고뇌를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어.) "나 홀로 비탈진 돌길을 높은 한산 오르니, 흰 구름 피난 곳에 외딴집 하나 있네..."라는 시를 적어 보여주었는데 그 시는 여대남의 삶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지. 13살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노력을 알아본, 일본 장수는 여대남을 일본의 본묘사라는 절로 보냈다 , 그는 30대의 나이에 뛰어난 재능과 인격을 인정받아 본묘사의 주지가 되었단다. 이후 일본의 요청으로 왕래하던 , 납치되었던 조선 사람을 데려오는 역할을 맡은 쇄환사(刷還使) 오고 가던 시기에 아들의 소식을 우연히 알게 된 아버지의 편지로 아버지와 아들은 28년 만에 기적적으로 서신으로 재회했단다.

하지만 그들은 조선으로 보내지 않으려는 영주의 방해로 평생 편지로만 소식을 주고받다가 끝내 서로의 얼굴을 한번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

이 여대남의 기록으로 인해 임란 때 선조의 아들인 임해군의 아들과 딸이 일본으로 포로되어 온 사실도 밝혀졌다. (임해군의 아들도 일본의 절에서 승려가 되었다 )

이 이야기는 아빠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아들의 공부를 소중히 여기고 게을리하지 않도록 한,물론 양반집이라 그런 배움의 문화가 좀 수월했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공부를 즐거워 한 덕분에, 그 힘겨운 시대에도 서로를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주고받았던 편지가 400년 전의 수많은 이들이 이름 모르게 사라진 그 불행하고 아픈 시대를 단편적으로나마 증거 해주는 귀한 역할을 하게 한 것이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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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륵아, 아빠는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어떤 길을 선택하든 언제나 네 곁에서 믿고 응원할 것이다. 지금 네가 쏟고 있는 노력들은 반드시 네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경험과 커다란 열매로 돌아올 거란 걸 확신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라. 결과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그 과정에서의 시간들과 너 자신을 사랑하고 믿는 마음이란다.

아빠도 이 소중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하륵과 하늬에게 남겨질 책을 만들어보기로 했단다. 하륵이가 보내는 이 3주 동안, 그간의 아빠의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며 아빠 자신을 돌아보려고 해. 비록 너희들이 바라는 여느 아빠와는 달리 나이도 많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아빠이지만, 아빠가 보낸 시간을 이렇게 남기려는 것은 여대남과 그 아버지의 편지처럼 그렇게 기억되고 기록되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도 작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륵이와 하늬는 용문산 산속에서 태어나 자라며 경상도 우포늪, 제주도 , 전라도 강진, 강원도 태백, 속초, 강릉,인제 등 전국의 마을을 마을사람들과 영화를 찍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건 김정희가 전국을 다니고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를 위해 한국의 산과 강을 찾았듯이 매우 귀하고 가치로운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과 함께 찾아간 마을의 기억을 어느 순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너희들을 보게 되었어. 8살 이전의 기억이 그렇게 고스란히 사라졌다니.. 너무 놀라웠다. 1999년부터 아빠는 마을들을 찾아 다녔고 5톤 트럭을 만들어 타고 100여 개가 넘는 마을을 다니며 그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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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숲 속의 집에 불이 나서 양평을 떠나 이 주차장 저 주차장에서 보낸 시간부터 너희들의 기억이 시작된다는 것은 아빠로서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너희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제주 북촌리 , 강진 , 우포늪, 태백 구문소마을등의 정답고 아름다운 즐겁고 유쾌했던 추억을 찾아주고 싶고 기록하고 싶다.

이 책은 하륵이와 하늬에게 아빠와 함께 보낸 아름다운 마을의 사라진 추억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다.


24년간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한국의 다양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사람들의 웃음이 어우러진 그곳에서 아빠는 역사와 삶의 구체성과 진정한 창작의 에너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에너지는 여전히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지금도 아빠의 창작을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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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글들이 부담되고 와닿지 않더라도 10년 뒤 하륵과 하늬에게 어떤 도움이 되고 우리 가족의 귀중한 기록이 되길 바란다.

사랑하는 하륵아, 지금 힘들고 지쳐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너 자신을 믿어라. 일주일 뒤 다시 만날 때, 더욱 자랑스러워진 하륵이 얼굴과 20일간의 매일 14시간 분투의 이야기들을 들을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단다.

너를 보고 싶은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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