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시장 2015년 80분 극 (국제마을영화제 상영 )
지금 생각하면 아쉬뭄이 큰 프로젝트였다. 언론의 많은 응원과 관심만큼 시장 상인들의
일상은 영화촬영에 집중할 만큼 여유롭지도 못하였고 또한 당시의 암사시장은 상인공동체가
최소한으로 형성된 상태도 아니었다. 나의 무능력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는 건 비겁한 태도이긴 하지만.
우선 적극적인 참여는 상인임원진 몇몇에 한정되었고 심지어 일상적인 촬영마저도 흔케하게 받아주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보통 2-3달 정도의 기간을 설정해놓고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제작비나 일정상 한 달 안에 촬영을 마쳐야 하는 조건이었다. 나의 작업이 일상적인 다큐멘터리 촬영에 기초하여 에피소드와 이야기를 서로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성격의 작업방식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영화생산 방식처럼 먼저 시나리오를 완성해놓고 연기자를 선정해서 진행하는 방식도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외부 연기자에 대한 개입범위는 예산의 문제로 최소 몇 회에 불과했다. 시나리오를 확정하고도 그에 맞는 연기참여자가 응해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내가 설정한 기획은 시장상인들이 출연하는 뮤지컬적인 드라마였다
그런데 나와 교감을 일상적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에 한정되었다 그중의 한 사람, 시장에서 폐지를 줍고 사는 86세 할머니였다. 결국 난 그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제일 많았고 내 상상은 불가피하게 그 할머니를 중심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었다. 시장 사람들에게는 시장과 관련이 없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올해 86세 시장에서 폐지 줍는 할머니..
아침 7시에 나와 새벽 2시에 고물상에 폐지를 갖다주고 하루가 끝난다
이 할머니를 둘러싼 이야기는 스스로에게 항상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모시장에서는 몇 년 전 폐지가 비싼 가격에 거래될 때 동네 할머니들 리어카가 시장을 복잡하게 한다고 아예 외부용역을 줘버렸단다.
그런데 종이값이 1/3로 떨어지자 용역업체가 그냥 철수해 버렸다.
지금은 하루종일 일해도 돈 만원을 못 버는 하루하루가 이어진다
시장영화 "노래하는 시장" 에피소드의 하나로 할머니의 리어카를 찍기로 하였다
할머니! 촬영비로 하루에 돈 만원만 드릴게요 그냥 1시간 우리가 따라 다니면 됩니다.
돈이 많이 없어.. 더 드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
내 영화에서는 없었던 출연료였다
그런데 돈은 우리 아이들이 되돌려 받았다 .
당시 제작노트에 있었던 암사시장 제작메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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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리 추위가 일찍 찾아온 겨울이다
암사시장에는 여러 시장에서 처럼 폐지를 모아 파는 사람들이 있다
리어카에서 자는 팔순의 할머니가 있다
시장 사람들은 당연히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폐지를 팔아 모은 돈은 아들이
모두 꼬박꼬박 가져다 간다
또 한 명은 폐지를 주워 시어머니를 홀로 모시는 장애를 가진 젊은 아주머니가 있다.
안보는 체 하지만 암사시장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의 일상을 하루하루 보고 생각하지만 옆에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혼자 훔쳐보고 생각에 빠진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무언가를 한다
암사시장 사람들만 아는 남은 모르는, 은밀한 비밀의 대상이다
그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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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시장바닥에 이상한 그림이 밤마다 그려진다
상인회에서 하는 문화시장 만들기의 일환인데
하루하루 새로 생긴 그림들을 찾아다니고 사진 찍고 다니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무슨 이유에서 시장 바닥의 그림에 호기심을 가지는 걸까?
# 시장 한가운데 한 달 전에 시장 도서관이 생겼다.
이름은 마실이다
오늘은 상인아카데미를 한다는데 시간이 날지 모르겠다
강의도 하고 무슨 동호회도 한다는데 장사한다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겨우 시간을 내서 책 한 권을 빌려왔다
읽어보려고 챙겨놓았지만 영 손이 잡히지 않는다
마실을 지키는 매니저라는 여자가 지나갈 때마다 책을 찾는다
#
구정이 다가오고 있다
재래시장의 상인들은 대목을 맞아 다가올 시간이 희망에 차고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다들 걱정 하나씩은 붙잡고 있다
가게가 시장의 끝자락에 위치하다 보니 그냥 머물지 않고 흘러 나가 버리는 사람들이 아쉽기만 하다
- 과일과 팥죽 파는 할머니
물러 터진 감을 보고 건너편 떡집 할머니가 묻는다
-감이 왜 저래(저 모양이야 )
-안팔리리깐 저렇지
-왜 이리 장사가 안돼!
-사람 봐 그냥 왔다 갔다만 하지.. 봉투 든 사람들이 없잖아
(시장에서 재래시장인 암사시장에서 장을 보고 가는 사람은 어김없이 검정 봉투를 들고 가기 마련이다 )
-신발가게는 어디 갔나?
- 며칠 비운다고 했잖아 여행 간다고..
-단골손님이 있으면 저렇게 비우고 못 가는데...
-단골도 경기가 좋을 때 단골이지 경기가 안 좋으면 무조건 싼데 로 가버리는데 뭐
주인할머니는 이야기 도중에 간혹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 목만을 바라본다
친구들 하나 둘 모인다
시장 내 또래 분들의 아지트다
-팥죽 하나 주세요 여기서 먹고 가도 돼요?
6명의 친구들이 아지트처럼 모이는 팥죽가게다
두 할머니는 나이도 생일도 같다 그런데
남편들도 두 달 사이에 하늘나라에 갔다
스스로도 신기해하고 있다
# 시장도서관 마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러 찾아온 가족
매니저가 잠시 나간 사이
아이가 책을 넘기다 책을 찢었다
5살밖에 안된 아이가 이리저리 살피다
-엄마 숨기자
-안돼 그냥 실수로 그랬다고 솔직히 이야기하자
-싫어
-그럼 안돼
매니저가 들어온다
엄마와 아이는 조용해진다
과연 엄마와 아이는 이후 어떻게 마실을 오고 갈까?
마실을 오고 가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 쌍방울 메리야스 가게 할머니
강의 가야 하는데 가게 좀 봐
며느리에게 가게를 맡기고 나간다
(뒤에서 ) 어머니 뭐 들을 게 있어요
이 시장에서 30년을 메리야스 가게를 하고 있다
요사이 유달리 생각이 많다
내가 잘 살아왔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가게를 지키는 시간보다는 시장을 이리저리 다니는 게 취미다
그 할머니의 고민은 무엇일까?
# 어묵, 생선, 애완용품
-오늘은 술 안 마시나요
-막걸리 한잔 할래요
-어제는 소주 더니 오늘은 막걸리예요?
- 딱 오늘 입에 맞는 거로
할머니 한분 들어오더니
- 이게 뭐예요
- 아지
-아지가 뭐지
-정강이
-아 매가리 경상도에서는 메아리라고 하지..
-맞아요... 아지는 일본말이에요
그 와중에 지나가는 옆집 가게 주인을 불러 세운다
막걸리 한잔하고 가~
시장의 시작은 다들 다르다
어떤 이는 1시부터 순대를 만들고 어떤 이는 새벽 4시부터 움직이고 어떤 이는 6시에 수산 시장을 다녀와야 한다 하지만 어김없이 9시면 시장에서 손님과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리고 마치는 시간도 다 다르다
어떤 이는 생선이 다 팔릴 때까지. 어떤 이는 새벽 1시까지 어떤 이는 9시면 문을 닫는다
그리고 나선 어떤 이는 노래방에서 어떤 이는 tv앞에 어떤 이는 그냥 잔다
내일 촬영할 드라마의 시작 부분이다.
어떤 게 찍힐지 모르고 또 이야기들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이걸 한 달 동안 해야 한다..
우리 아들과 딸이 슬레이트를 들었다.
4살 때 우리 아이들이 한 달간 보낸 암사시장에서의 시간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 매우 안타깝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