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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가장 가까운 극장 -마을극장DMZ

타란투라의춤바람 2018 극

by 신지승

이 마을의 저 산을 넘어 6km를 가면 휴전선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4km를 더 가면 북한이다. 이 마지막 산은 일반인은 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다. 2017년 12월 가족은 이 마을로 찾아 들어왔다. 양평 용문산에 섬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집이 타버렸다. 남은 5톤 트럭을 타고 다니며 이 주차장 저 주차장 옮겨가며 거처로 삼았다.

주차장에서 가족들이 밥 먹고 놀고 하는 것을 불법캠핑으로 바라보고 내쫓겨 다른 주차장으로 옮겨야 했다.

방송에서도 개까지 데리고 캠핑 다니는 가족으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는 우리를 집 없는 가족으로 알고도 함께 영화를 찍으면서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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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7시면 어김없이 군부대의 기상나팔 소리와 국민체조 소리가 마을을 깨웠다.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 북한의 확성기와 남한의 확성기가 하늘에서 충돌하여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소음으로 밤은 소란스러웠다. 마을 북쪽에는 제사상의 병풍처럼 산이 가로막고 있다. 그 산 너머는 정치적 이유로 접근할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된다. 그러나 남쪽의 마을은 요양원처럼 고요하고 단조로운 시간이 흐른다. 노인들의 무료한 일상과 이주 노동자들의 분주한 삶이 교차하며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빨간 집'이라고 불렀다. 1970–80년대에는 군인가족과 외로운 객지생활을 이어간 다방의 젊은 아가씨들이, 1990년대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이곳에서 공동생활을 했다. 빨간 집은 집단 축사와 대규모 파프리카 농장 사이에 끼여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마티즈의 붉은 방을 떠올리게 했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 분단을 거치며 이 땅은 논이었다가 1979년에 논 위에 마을이 세워졌다. 이 땅 아래에는 수많은 사연이 묻혀 있을 것이다.

빨간 집이라고 하면 나는 빈센트 반 고흐의 노란 집이 떠올랐다. 고흐는 파리의 혼란을 피해 아를로 내려가 예술가 공동체를 꿈꾸었지만, 결국 고갱과의 갈등으로 그 꿈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빨간 집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10명의 작가들이 몇 달 동안 일시적인 예술 공동체를 이루었다. 코로나19와 긴 장마 속에서도 이곳에는 고흐와 렘브란트, 이중섭, 박수근 같은 이 시대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았다. 마을 식당을 오가며, 빨간 집의 마당에서 삼겹살과 술을 나누며 마을과 분단, 전쟁의 추억을 떠올렸다. 때로는 북을 치고 노래하며 마티스의 "춤"을 재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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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는 날이면 작가들이 어김없이 함께했다. 렘브란트의 집단 초상화처럼 마스크를 쓰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오미자의 빨간 열매를 따며 노동을 배운 작가도 있었다. 마을 아이들과 주민들은 빨간 집 마당에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배우며 가을 햇볕 아래서 시간을 보냈다. 작가들은 벽면에 6.25 전쟁 당시의 삐라를 벽화나 행사 포스터로 재해석하며 협업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빨간 집에서도 고흐와 고갱의 갈등처럼 예술가들 사이의 의견 충돌이 있었다. 고갱은 예술이 일상에서 벗어나 본질과 직관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흐는 일상의 인간적인 면모를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이들의 철학적 차이는 빨간 집에서도 재현되었다. 한 작가는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지만, 다른 작가는 방문을 굳게 잠그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빨간 집에서의 생활은 마냥 낭만적이지 않았다. 작가들은 예술 활동 중 크고 작은 사고를 겪었다. 누군가는 청소 중 찬장 모서리에 머리를 찧었고, 또 누군가는 브라인더로 인해 아킬레스건에 심각한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은 예술 공동체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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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꿈꾸던 예술가 공동체는 밀레의 바르비종과는 달랐다. 밀레는 농민과 자연을 따뜻하게 그렸지만, 그의 생활 속 농부의 이름은 들리지 않는다. 반면, 고흐의 노란 집에는 우편배달부와 카페 주인이 있었다. 빨간 집은 노란 집보다도 더 진화된 공동체로, 생활인과 예술가가 어울린 시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접경 마을은 단순히 정치적 갈등의 경계가 아니라 예술과 일상, 자연과 창작이 만나는 또 다른 경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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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의 주인공이 막다른 산 아래에서 스스로에게 묻듯이, 빨간 집에서 우리는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되묻는다. 경계의 이미지마저 예술에서는 또 하나의 이어짐이다. 마티스의 "춤"은 인간의 원초적 에너지가 빚어내는 환희의 순간을, 이중섭의 "춤추는 가족"은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이어가는 가족의 모습을, 루벤스의 "춤추는 농부들"은 풍요와 생동감 넘치는 자연 속 인간의 기쁨을 그렸다. 이 작품들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 예술이 가진 보편적 연결성을 보여준다. 빨간 집에서의 기억은 이 접경 마을이 예술과 삶의 경계를 어떻게 넘나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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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tv 김영철의 동네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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