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빛들 90분 2019년 다큐+극 DMZ국제다큐영화제 초
이 글은 영화 "길 위의 빛들" 이야기를 글로 옮겨 놓은 것이다
# 용문산 숲 속의 집
노픈 산 ,너븐들 만들고 남겨놓은, 구불구불 오르막 내리막 울퉁불퉁 흙길.. 따라가면 외딴집 하나. 있었다.
생강나무 노란 꽃망울 하나, 온 산의 무채색을 깨우면
산수유, 산벚꽃 흐트러지고 한 껏 웅크린 어린 두릅 기지개 켠다.
그 땅속에 웅크리고 살았던 돌들로 차곡차곡 앉혀 만든 ‘돌극장’
아래 마당 빽빽이 덮던 빨간 딸기 밟지 않으려 봄바람에 춤추며 걷던 아이들의 시간
다시 돌아온 물 만나 흐뭇하게 흐르던 개울에서
울 쌍둥이 발가벗고 목욕하며 여름 간다,
개울 옆 잣나무숲, 언제나 그윽하고 향기로웠다.
겨울 외로운 집 뒤에서 순간 만나 서로 놀라는 멧돼지만큼도
보기 힘들었던 사람동물 얼굴
울 아이들은 언제 외딴 터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알기나 할까?
그 땅의 돌들처럼,.
내 늙어가는 몸속 깊이 숨어 술래잡기하던 아이들이 엄마 배에서 솟구쳤던.
그날들의 외딴 기억 담은 그 좁은 골짜기 고사리밭이었던 그 땅
이제 나도 잊어버린 건 아닐까?
능욕과 모욕 부끄러움과 허무들이 뭉쳐 기다림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고 키우던 모든 것이 세상과 만나
드디어 난공불락의 성을 만들었던 깊은 시간의 해발 200미터 용문산 외딴
# 무허가집
‘전쟁이 날지 몰라,
2017년 봄바람 타고 흘러 다니던 소문 때문에 쌀과 라면 많이도 사 챙겼다. 이 그늘진 곳에서 아이들, 두 마리의 개들과 가난의 전쟁을 버티려면 수십 마리의 햇닭이라도 장에서 사야겠다고 벼르는 그때
두 달 동안 방 안에서 글만 쓰고 이제 막 낙서 같은 초고를 끝내고 외딴집으로 돌아오는 길
# 증평역 대합실 안 조그만 서재에서 발견한
예술과 사회라는 허버트 리드의 책 몇 장을 뒤적이고 있을 바로 그때
한 번도 전화 걸 일 없는 외딴집 아랫마을 사람
“ 지금 집에 불이 나서.. 아이들과 아내는 다행히 빠져나왔고
소방차들이 막 올라가고 있다”.
가족들은 무사하다지만 기차는 느렸다
타오르는 불이 하늘로 향하는 고드름처럼 얼어 버릴 수 있기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염불 했다.
증평에서 제천으로 다시 갈아탈 즈음 다시 걸려온 전화
“ 허물어진 잔해를 들어내야 진화가 되는데 언제 오냐 ”
그 집에는 내 인생의 보물들이 숨겨져 있었다. 그건 내가 20년 동안 찍어왔던 마을의 영화들이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는 안됩니다 절대"
돌아와 보고 듣자니
물 머금은 뚱뚱한 소방차, 벌건 대낮에도 난공 불락의 요새를 찾지도 못하고
이길 저길 헤매다 좁은 흙길을 오르지 못하고 긴 창자 같은 호스를 질질 끌며 낮부터 밤까지 흙언덕을 빨간색
옷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신발도 팽개치고 뛰어나온 맨발들의 아이들
전쟁을 몸으로 겪은 영락없는 패잔병의 몰골.
불로 이글러진 물건들
절규하던 뭉크의 그림 속 얼굴이 그토록 사실적이고 예언적이었다니
오랜 울분과 모욕으로 얽켜서
외딴집의 재산과 추억들을 모조리 삼키고서야
성이 찼는지 모든 걸 검은색으로 만들고 놓고 말았다
검은 쌀과 검은 산벚꽃
전쟁의 불안이 데워진 외딴집을 먼저 태워 버리기나 한 것인가?
밤마다 찍찍거리는 천정의 쥐들, 아이들을 잠 못 들게 한 깊은 적의
그들의 밤놀이를 방해받은 불만이 불이라도 되었던가?
내 업과 울분과 죄들이 서로 어울리지 못하여
불(火)이 되어 되돌아온 것인가?
어떻게 씨 뿌려져 어디서 숨어 웅크리고 있다가 솟구쳤는지
내 억울한 슬픔이 불에게는 즐거운 탄생이 되는
한 편의 영화를 연어처럼 거슬러 가고 싶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부슬부슬 그치지 않고 비가 내렸었다
불이 꺼지자 신기하게 비가 그쳤다
타고 남은 재, 그위로 남은 건
늙은 남자와 여자
겨우 7살 남자아이와 여자 아이
그리고 풍산개 복실이.
항상 복실이의 갑질에 밥만 먹고는 총총히 2층 올라가던 수놈 동
뼈 한 조각을 12시간 바라보며 아까워 먹지 못하던 동은 불이 되었다.
2009년식 갤로퍼와 2004년식 5톤 트럭
적십자 긴급구호물품이 들어있는 노란 가방 하나.
동화 속의 외딴집을 떠나
산을 뚫어 만든 아스발트도로 타고
물 있는 곳을 먼저 찾아 떠돌기 시작했다.
잘 되었어 더러운 쥐들 다 죽었버렸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
다행히 아이들은 늙은 부부보다 재빨리 외딴집 잊어버리는 듯했다.
# 남양주 삼패공원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도 불량식품으로 단속받던 여의주 문 용, 생전보지도 못한 크기의 잉어 모양의
설탕얼음과자 파는 할아버지. 있었다.
어딘가 숨겨놓은 신념 아니라면 버티지 못할 듯 한
뻔한 적자의 인생.
같은 화장실, 같은 물을 구하는 동지가 되었다.
산책 나온 행복한 도시가족들 물끄러미 쳐다만 보는 친구
아무도 사 먹지 않아 남아 더운 4월 가장자리 녹아내리는 설탕 과자
아이들에게 건넨다.
아이들에겐 123층 빌딩이 바벨탑만큼이나 신기했다
그게 보이는 날 안 보이는 날로 갈렸다.
늙은 아비에게는 123층이 안 보이는 날은 화생방경보였다.
마스크 써야 돼 그건 불의 전쟁만큼 공기와의 전쟁이었다.
가자! 공기 좋은 물이 있는 곳으로
집은 없어도 이 화생방전쟁터 같은 도시를 떠나자
# 속초 아바이 마을 해변
바다도 전쟁터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바다가에서 들었던 며칠 전 너울성 파도에 떠내려간 얼굴 모르는 아가씨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
한 발 앞서 북한 고향 땅 밟으려는 탈북피난민들의 마을
많이도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 2달 만에 급조된 바둑판 마을인 새마을로 집단 이주하였던 68년 속초해일
덕분에 방파제가 여기저기 난공 불락의 요새처럼 만들어 놓았네
밤에 덮칠 너울성 파도 걱정 없이 잠잘 수 있는 바다
해변을 걷다 말다 일하다 쉬다를 반복하던 할머니
열린 5톤 트럭 안을 보고 부러움 가득하다.
집을 가지고 다니네
부러움은 스스로를 외롭게 만드는 독이다
"집에 불이 났어요 그래서 달팽이 신세가 된 거죠"
듣자마자 할머니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버린다
한참 후 다시 돌아와 아이들에게 꾸깃꾸깃한 천 원짜리 지폐를 건넨다
"아침에 일찍 나온다고 돈을 안 가지고 와 다른 공공 근로 하는 이에게 빌렸어
나도 집 없이 고생해본 시절이 있어 뭘 주고 싶은데..."
가장 낮은 자리에 서 있을 때도 가끔 행복할 수 있게 하는 마음 하나. 만났다
# 삼척 민박 할아버지
염주를 돌리며 불경을 들으며 대통령 선거 벽보 바라보고 있었다
"정치는 총칼 안 든 전쟁터나 다름없어
가족들과 이렇게 다니면 참 좋겠어 "
"불이 났어요 "
역시 둘 사이에는 침묵이란 것도 정답다
"집이야 뭐 다시 만들면 그만이지만 건강이 최고예요"
# 경포대 주차장
강릉에서 산불이 났데
불 난 가족은 불난 강릉을 찾아갔어. 우리와 같은 허망한 마음을 가진 이들 옆에 있고 싶어서였을까?
그런데 그날 아침 복실이가 사라졌다. 갤러프 뒷 트렁크를 집 삼아 자던
두 아이들은 동시에 늙은 아빠를 의심했다.
함께 길 떠다니기 부담스럽고 귀찮아서 그들이 자는 사이 어딘가에 놓고 온 듯
아이들의 직감은 놀라웠다. 정확해서가 아니라 짜증 내고 살아가는 발악하는 아빠를 엿본 것이다
복실이가 제 스스로 떠났는지 아니면 길을 잃었는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우리에게 넋 놓고 살지 말고 작품을 만들라는 거야 복실이는 돌아올 거야"
-풍산개 복실이를 찾습니다-라는 전단을 곳곳에 붙이고 다니며 강릉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강릉사람들을 만났다
한 달이나 이어진 철 지난 이산가족 찾기는 강릉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시작했어
여름바캉스 철이 지나면 강릉에는 유기견으로 넘실 거리지
한 달이 다 되어가자 아이들은 지쳤다.
" 아빠 복실이는 죽었을 거야 "
그러나 복실이가 카메라를 놓고 좌절하던 나를 다시 내세웠다
이야기를 찾듯이 나를 찾아라고
강릉의 무인 구호 가게에서 나는 쌀을 구하고 아이들 장난감을 집었다
라면을 집던 아내뒤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집에 불이 났어요"
"그래요?"
그날 그 사람들은 트렁크를 냅다 열어 쌀과 라면을 가득 실어 주었다
복실이를 10킬로도 더 떨어진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보름 전에 보았다는 사람을 만났다
결국 한 달 만에 복실이를 찾았다 그러자
# 이제 물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극심한 6월의 강릉가뭄 때문에 우리는 떠났다.
집 있는 이들도 물을 구할 수 없는 공원의 수도는 잠겼고 공중 화장실의 물도 그쳤다
# 우리는 인제로 왔다
한계리에서 여름과 월학리와 가을 보냈다
2010년 우리랑 영화를 만들었던 그 마을로 문광부장관이 찾아왔었다.
# 우연히 찾은 천도리
그런데 우리는 그 전쟁으로 걸어 들어왔다. 군부대밖에 없네 마을이 안 보여
이미 전쟁의 땅이었다. 여기는 지나가는 동네가 아니다.
밤마다 들리는 북한 선전 방송 낮에는 총소리 포소리 논밭에는 삐라
모두들 전쟁이 가까이 왔다고 소란을 뜬다. 전쟁이 나면 저 대피소로 갈 수 있잖아
그런데 그건 공동묘지예요
"북쪽으로 향하는 산 반대편 남쪽 사면 쪽에 가서 웅크리고 있는 게 나아요"
숨통이 막힌 동네다 그런데도
도서관과 소방서 경찰서 심지어 아이들에게 돈을 받지 않는 목욕탕이 한데 모여 있다.
그곳은 전쟁터 속의 물의 천국은 아니더라도 오아시스정도는 되었다
" 우리 가족이 여기 살려면 어떡해야죠? "
우리는 목욕하기 위해 영화를 찍어야 했다
제목은 “ 금강산 가는 길”이라고 정했다.
촬영이 시작되자 말자 농촌공사에서 누군가가 찾아왔고 아내가 쌀도 돈도 안주는 대통령상을 받았다
“지난 4월 경기도 양평의 집에서 불이 났다 가족의 보금자리는 타 버렸다 “로 시작하는 신문의 기사
5톤 트럭 앞에는 군복바지 양말과 돈 5만 원의 구호품 아닌 이 마을 인심과 마음이 놓여있었다.
참 기막히게도 여기서도 여전히 우리 가족은 노픈 산 ,너븐들 만들고 남겨놓은, 구불구불 오르막 내리막 울퉁불퉁 흙길 따라가면 외딴집에 살고 있다.
영하 20도에서 아이들과 트럭에서 자는 걸 차마 보지 못한 평화생명동산 이사장께서 우리에게 세상에서 가장 더운 서화재라는 이름 집 방 하나를 내어주었다
12월 트럭 안에 텐트 치고 옷을 입고 자야 했던 추억을 오래 갖고 싶었던 늙은 아빠의 욕심과 아쉬움 뒤로 하고 몹시도 추웠던 1월의 겨울 아이들은 너무 방이 더워 매일 팬티바람으로 자야 했다
복실이는
구불구불 산과 들 만들고 남은 길 탱크가 지나가고 장갑차가 지나가는 전쟁의 풍경 속에서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 있었다. 그 길은 오래전 산과 들을 만들다 남겨 놓은 구불구불한 서화리로 오는 옛 에움길
다들 찾아 산을 뚫은 길을 가는 대신 그게 복실이가 뛰어다니는 길이다
아이들은 21명이 전교생이고 그들과 합쳐 1학년이 4명뿐인 작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불이 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었을까?
우리에게 그날의 불이 축복이었을까ᆞ 아니면 저주였을까ᆞ 아직은 헤아릴 수 없다
굳이 불이 되어 버린 시간을 찾아 무얼 할 건가 싶지만 찾아야 한다
그래도 원통에서 서화리 가는 길은
"이 길은 막힌 길이야 특별한 목적이 없는 이가 다닐 길이 아니다 이 길은 살고 있는 이들만 왔다니 갔다니 하는 길이지 "
하지만 아직도 전쟁의 소문은 가시지 않았다. 남북 정상 회담, 북미 회담으로 이 기다림의 불이 될 것인지 물이 될 것인지 땅이 될 것인지
이제 글자를 익힌 아이들, 내 핸드폰으로 손가락 누르는 재미로 메모앱에
낙서를 한다 써놓은 외계인의 글 같은 글을 들고 환호를 외쳤다
"아빠 내가 막 쓴 글인데 말이 되는 게 있어? "
"봐 뭐가 "
“우리늘성찰시키는 건 실수롸잘못이다. 모든 상처는 정신 적인 것이다 ”
말이 된다 와! 아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우쭐거리며 자신이 막 쓴 게 말이 된 것으로 기뻐했다
사실 그 글은 밤마다 불면의 밤을 보내며 종이를 찾지 못해 아이들이 쓰는 핸드폰에 메모해 놓은, 두꺼운 손으로 쓰다 보니 맞춤법이 맞지 않게 적힌 내가 쓴 메모였다
그래 다시 봄이 돌아오고서야 모든 상처는 아물어질 것이다
"정신적인 게 뭐여?"
"몰라 "
"그럼 육체적인 물질적인 건 뭔지 알아?"
"몰라"
불속에서 꺼내지 못한 나의 보물을 다시 기억할 방법이라도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느낀다
이제 다시 금강산으로 가야 한다
몹시도 불안했던 시간이 추억으로 지나가고 남북 정상 회담 북미정상 회담소식이 들린다
오히려 노픈 산 같은 전쟁과 너븐 들같은 평화사이 두 갈래
이제 그 길 하나가 될 거야 전쟁인지 평화인지 말이지 그러나 전쟁과 평화사이를 걷고 걸어온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같이 없는 이들은 구불구불 울퉁불퉁 오르막 내리막 같은 흙길 그 어디로 가든 흙길"이라고
금강산 가는 길, 흙속에서 숨어 살다가 바람, 비 만나 다시 드러나 세상과 만나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을 가장 작은 돌이 된다.
그래서 노픈산 너븐 들 만들고 남겨 놓은 흙길 걸어가며 길었던 불의 역사를 이제 다시 찾아야 한다라고...
<길 위의 빛들>
운이 좋게도 이번 디엠지에서 본 몇 편의 영화들이 다 좋았지만, 그중에 딱 한 작품만 꼽으라고 하면 이 작품을 꼽고 싶다. 한국독립다큐멘터리에서 도저히 계보를 찾을 수 없는 이상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영화제에서도 특별히 주목을 못 받은 것 같고, 앞으로 언제 또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기에 기록 겸 추천 겸 글을 쓰지만, 이 아름다운 영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전히 난감하다.
영화는 전국을 다니며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마을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하던 신지승 감독의 가족이, 갑작스러운 화재사고로 인해 살던 집을 잃고 난 뒤, 커다란 트럭을 타고 이것 저곳을 돌아다니는 과정을 담고 있다. 한강 둔치부터, 군사 접경선에 가장 가까운 강원도 인제의 작은 마을까지. 정해진 목적지 없이 생존을 위해서, 종종 쫓겨나고 때로는 환대받으며, 떠돌아다니는 그들이 담는 한국사회의 풍경은 생경하고도 기이하다.
영화는 가족들이 키우던 복실이라는 강아지를 잃어버리면서 개를 찾으려고 지방도시를 떠돌아다니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마주하는 변두리의 삶들은 언뜻 하잘 것 없어 보이지만 적어도 이 영화 안에서는 반짝반짝 빛난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 보면 이들이 마주한 풍경과 삶이 한국사회의 특수하고도 보편적인 문제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한 채로 평생을 군사분계선 접경지역에 사는 할머니, 한강 다리 밑에서 기거하는 노숙인, 민간인 학살의 기억을 가지고 사는 마을주민, 주인이 없는 한겨울 들판의 떠돌이 개 등등. 필연적으로 쓸쓸할 수밖에 없는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아름답고 정겹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들이 이 풍경과 삶들을 단순히 스쳐지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우연히 만났던 노숙인을 다시 찾아가 안부를 묻고,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투박하지만 생생한 영화로 담아내고, 어쩔 수없이 떠돌이 개를 내치지만 밥 한 그릇을 챙겨주는. 잃어버린 개를 찾아서 한 달 동안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결국에는 찾아내는. 2000년대 한국에서 이게 가능할까 싶은 이 이상한 가족의 여정은 척박한 대한민국 땅 위에서 희망을 찾기 위한 고행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중화장실과 야외 수돗가에서 목욕과 빨래를 하고, 물이 나오는 장소를 찾아서 이동하며, 지역축제 장기자랑대회에 참가해 받은 상품으로 일용할 양식을 조달하는. 이 고난의 여행기는 위태로울지 언정, 마냥 처량하지만은 않는데, 하늬와 하륵이라는 천진난만한 두 아이들이 이 여정에 함께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동시에 재난영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여기서 재난은 남북 분단 상황, 미세먼지, 화재를 비롯한 안전사고, 그리고 가난과 추위다). 한편으로는 두 아이들이 주인공인 성장영화다.
이 가족의 삶과 영화를 - 여기서 둘을 구분하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 동정이 아니라, 응원한다.(글 김주현)
https://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988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