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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타고 전국일주해 볼까?

두꺼비의 귀환 2023년 다큐 극

by 신지승

# 2023년 2월

한 달 뒤, 두 아이는 6학년이 된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난 뒤 한 달 동안

두 아이는 핸드폰과 게임에 빠져 살고 있었다.

나와의 공부는 ‘대항해시대’에 멈추어버렸다

시내버스만 타고 전국을 일주하는 여행을 해 볼까?

"시내버스만 타고?"

"그래! 시내버스만 타고 전국을 일주하는 거야!

이 마을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원통까지 그리고 원통에서 진부령으로 가서. 고성.

고성에서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는 거야 "

속초 , 강릉 삼척 그리고 네가 키웠던 띵이가 살고 있는 포항도 가고 부산 할아버지 집에 좀 있다가

남해안을 돌아 서해안으로 인천 , 서울로 돌아와 다시 인제 원통으로 해서 이곳으로 돌아오는 거야! "

띵이. 태어난 지 2달 만에 포항으로 강제 입양된 강아지였다.

아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키운 강아지다.

어쩌면 아들은 띵이가 보고 싶어 흔쾌히 여행을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도시를 좋아하는 딸은 서울이라는 곳에 이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이 최북단 마을과 휴전선과의 거리는 겨우 10km

나도 질긴 무기력과 절망을 떨치기 위해 애써 일을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을 순간순간 하긴 했지만

두 마리의 개들을 건사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나뿐이었다.


양평 용문산 속 한편에 있던 무허가 집에 불이나 주차장을 전전하며 살다가

이곳에 온 지 어느덧 5년

커가는 아이들과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두 마리의 개들과의 산책도 고역이 되어가고 있었다. 부산의 동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을 받고서도 작품만 보내고 가지 않은 것도

복실이 동동이를 사랑하는 애견인 체 하는 , 스스로 속이는 짓이 조금은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분교초등학교 결국 우리 두 아이, 하륵과 하늬만 남았다

6학년 1명은 졸업하고 3학년 1명은 3년 만에 자신의 집과 가까운 학군의 학교를 찾아갔다

같은 5학년 1명은 한국 아빠와 캄보디아 엄마사이의 양육권문제로 마을을 떠나버렸다

결국 쌍둥이 하륵 하늬가 두 명의 부부선생만 남았다

두 아이가 학교에 남기로 결정하면 폐교는 되지 않는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한다면 두 부부선생이 직업을 유지할 수 없기에

6학년을 마칠 1년 동안은 절대로 전학을 갈 수 없다는 불평등 조건이 붙었다

아이들은 한사코 자신들만 남은 학교에 '최후의 2인'이 되기를 고집했다.

엄마는 아이들 편이었고 나는 결사코 반대했다.

어디든지 스스로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자유야말로 우리 아이에게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최북단 마을 원통 종점 터미널의 시내버스를 타고 떠나는 전국일주여행.

어떤 계획도 없이 , 그야말로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여행은 나에게도 흥분과 설렘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집을 떠났다.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라 집을 떠났다.

아빠와 남매의 여행, 그 첫 식사는

눈 내리는 520 해발 진부령 고개에 있던 버스정류장에서였다

물은 끓여주겠지만 라면 냄새가 걱정되는 진부령 유일의 작은 가게 주인은

맞은편에 보이는 진부령 미술관옆 버스정류장을 가리켰다.

진부령 버스정류장의 투명한 박스로 몰아치는 눈보라들은 거세었지만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점심식사장면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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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의 진부령 고개 버스정류장에서 시작된 그 여정이 앞으로 다가올 우리들의 몇 달 앞을 그때는 우리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출발이 있었던가?

집을 떠나는 일은 나에게는 직업이 아닌 생존과 다름없었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100여 개가 넘는 마을에서 일주일 혹은 한 달 혹은

3달을 넘게 살아보았다.

진부령고개 한편에 백두대간 684km 남한 종주의 마지막 지점을 가리키는 표지석을

지나가는 아이들의 얼굴을 찍는다.

또 한 편의 영화가 시작된다.

손에 쥔 작은 오즈모 카메라는 눈발이 날려 바짝 웅크린 아이들의 얼굴을 놓치지 않으려 제 스스로 분주히 움직인다.

내 삶의 유일한 이유인 하륵과 하늬와의 겨울 시내버스여행을 담은 영화의 제목을 뭐로 할까 고민하다가 그럴싸한 제목 하나를 떠올린다.

‘시를 걷는다 “

그런데 그 제목이 ”두꺼비의 귀환“으로 바뀌는 대는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고성 시내버스를 타고 오호리 마을에 내렸다

오호리마을의 넓고 긴 골목은 곧장 송지호 해변으로 이끈다.

골목을 지나가다 1층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인다.

버스가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 왔듯이 오늘 밤은 고양이가 이끄는 대로 이 고양이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기로 했다

진눈깨비 몰아치는 낮의 바다는 그야말로 하얀 허공이었다.

아무도 밟지 않는 하얀 모래로 가득한 바다는 처음이었다.

소금 같기도 하고 , 눈 같기도 한 하얀색과 검붉은 바다에 빠져들었다.

하륵은 마트에서 연을 집어 들었다.

하얀 바닷가에서 아빠는 연을 하늘 높이 올리고 아들은 힘차게 물레를 감는다

바람은 연의 생명줄이다. 바다로 불던 바람은 곧 그 방향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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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륵 하늬가 태어나 처음으로 연을 날려 본 곳은 서울 한강 원효대교 아래서였다.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가족의 인생 속 한 장면. 바람은 2016년 6살 때의 그날을

6년 만에 다시 되돌린다.

2016년 8월. 아이들은 ‘한강아저씨’라고 부르고 나는 ‘원兄’이라고 불렀던

한 노숙자.

원효대교 기둥 아래 한 남자가 누워있었다.

“담배 두 까치만 빌려주세요”

나는 담뱃갑 속에 남은 두 까치의 담배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두 까치밖에 없으니 한 까치만 가져가세요라는 무언의 요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는 두 까치를 요구했다

담뱃갑 속에서 한 까치만 밀어내어 그에게 다시 내밀었다

그는 포기할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두 까치를 주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그와의 인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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