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잡중
“불이 그린 그림이에요! ”
AI가 그린 그림에 환호하는 시대에 불이 그린 도자기의 그림은
감동을 안긴다.
1500도가 넘는 가마 속의 폭발하는 불이 그린 그림은 오묘하고 신비스러웠다
하연(유길수 ), 예당(김옥희) 도자기 작가의 부산 하단의 천백요 작업실로 초대받아 아이들과 함께 찾았다.
3대째 전통 장작가마방식으로 도자기작업을 하고 있는 그곳에서 요변의 결정체를 마주한다.
나에겐 처음이었다
요변이란 가마 속에서의 색과 이미지의 혁명적 변화다. 도공의 오랜 손을 떠나 1500도의 불이 그에게 선물하는 화룡점정이다
우연성, 기다림의 예술과 만나는 그 지점이야말로 작가에게 구원이다.
개인적으로도 자본의 계획에 따라 연탄 찍어내듯 하는 영화작업에는 오래전에 매력을 잃었다
나에게도 우연과 즉흥성이 개입되지 않는 촬영은 너무나 건조하고 목적적인 작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효율적인 작업과는 거리가 멀지만 작가에게 요변적인 희열은 너무나 큰 에너지로 역할 한다.
개구리를 좋아하는 아이가 도자기 속의 개구리를 발견하고는 신이 났다.
오랜만에 산왕거미를 만날 수 있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지겨운지 모르고 논다.
2023년 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 APORIA FF 해외감독들을 하루나 이틀 초대해서 열어 주시기로 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여주고 재워주시게요?
전 아무것도 드릴 게 없을 텐데
까짓 껏 하루 이틀인데 ...우리 천백광도자기는 앞으로 글로벌하게 뻗어나갈 거니깐
그래도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마음 바뀌셔도 전 아무 상관없습니다.
불의 신과 함께 하는 이곳 부산 둔치도 천백요에서 마을영화제를 연다는 건 참 새롭고 요변적일 것이다.
그러니 그냥 존재하고 움직이고 포효해야 한다. 그다음은 어차피 요변 같은 것이다.
요변이야 말로 삶과 예술의 결정체
그래서 삶과 예술은 설렘이다 .
부산 둔치도 천백광 가마굴뚝에서 연기가 아니라
불이 솟았다.
도자기와 불 그 자체다
소리 또한 파장으로 드러난다 (계속)
나영철 언론인 | 기사입력 2023/08/25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의 핵심개념으로 기억한다. 적정기술의 개념은 1960년대에 독일계 영국 경제학자 슈마허(E.F Schumacher, 1911~1977)로부터 시작된다. 선진국과 제 3세계의 빈부 격차의 문제를 극복하는 목적으로 거대 자본의 대량생산을 기반을 두는 선진국과는 달리, 적은 비용으로 간단한 기술을 활용하여 작은 지역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소규모의 생산 활동을 지향하는 기술을 말한다.
슈마허는 적정기술의 전형적인 예로 영국의 대형 방직공장의 생산에 대항하며 물레를 돌리던 인도의 간디가 벌였던 운동을 꼽았다. 그리고 ‘작은 것은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슈마허가 1973년에 간행한 적정기술을 대표하는 저서이기도 하다.
▲ 끄트머리 국제마을영화제 ©브레이크뉴스
▲ 끄트머리 국제마을영화제. 천백광 도예가의 유길수(66-왼쪽) 장인과 아들 유승방(36). ©브레이크뉴스
필자는 이러한 적정기술의 사례를 작년에 한 영화제에서 발견했다. 작년 초가을에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국제영화제를 개최한다며 지인의 초대를 받게 되었다. 처음엔 “조그만 시골 농촌에서 국제영화제라니”라고 생각하며 의아했다. 국내에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전주, 제천, 부천, 강릉 등, 그리고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화제를 다녀봤지만 처음 접하는 영화제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골 농촌에서 평상시와 같이 농사일을 마치고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마을회관에 동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행사 주최자의 인사말과 함께 그날 상영할 영화와 외국에서 온 제작감독을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화 감상에 들어간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부터 진풍경이 펼쳐진다. 구글 번역기의 도움으로 감독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막 감상을 끝낸 영화의 제작감독이 근거리에서 제작 동기와 과정 그리고 취지와 에피소드 등의 설명을 직접 해주니, 여타의 영화제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름은 물론, 자유로운 소감과 말 잔치가 몹시도 의미롭다. 시골 농부들이 말하는 감상평과 질문의 날카로운 면들을 보며, 인터넷, 유튜브 등을 통한 지식, 정보화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달라진 면면들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시간이 끝나고서 본격적인 잔치가 벌어진다. 마을에서 수확한 야채와 과일과 음식들로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회관의 넓은 장소로 이동해서 시 낭송과 동참자들이 제각각의 장기자랑을 하며 외국인 감독들과 어울려서 춤도 추고 흥겨운 시간을 갖는다. 그 자리에서 노래와 춤 실력을 선보인 이탈리아에서 온 젊은 감독은 며칠 전 영화 상영을 먼저 했기에 다음날 일찍 출국 예정이다. 이별의 아쉬움에 유난히도 큰 그의 눈망울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며칠 동안 농부들의 밭일도 돕고 일상을 함께 보내며, 한국의 시골 정서와 마을 사람들의 정감에 깊이 빠졌음을 알게 한다. 참으로 보기 드물고 아름다웠던 시간의 경험으로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 끄트머리 국제마을영화제 신지승-이은경 감독부부. ©브레이크뉴스
이 영화제의 이름은 ‘끄트머리 국제마을영화제’이며 그 중심에 신지승 감독이 있다. 신 감독은 지난 25년간 전국에 두메산골과 시골 농촌을 돌면서 작은 마을의 생태환경을 배경으로,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영화를 제작해왔다. 대규모 자본이 투여되고, 소수가 제작한 영화를 다수가 보는 기존의 영화제작과 관람 양식을 과감히 탈피하고, 마을공동체가 주어진 일상의 환경 속에서 친숙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영화라는 도구를 통해서 문화적 공감대를 고조시키는 효과를 얻는 것이 신 감독의 의도다.
그의 오랜 활동을 통해서 ‘마을영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개척되었고 이제는 ‘국제마을영화제’로까지 성장했다. 이러한 꾸준한 활동이 가능하기까지는 신 감독의 아내 이은경 감독의 내조가 중요했다. 신 감독 부부는 둘 다 영상, 영화제작 전문가이다. 신 감독은 기획과 연출을, 그리고 아내 이은경 감독은 주로 제작을 담당하는 것으로 안다. 그들의 마을영화 운동의 활동 15년 차에 일찍이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교보환경대상을 수상받기도 했다.
그동안에 신지승 감독이 추구해왔던 농촌공동체 중심의 영화 운동은 기존의 대규모 자본과 유명 연예인 그리고 대형 극장 중심적인 독점구조를 극복하고, 저예산으로 그 지역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소규모 제작과 상영 등의 지향성은 앞서 거론했던 슈마허 경제이론인 적정기술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지극히 부합된다. 슈마허가 물레 돌리기 운동을 펼쳤던 인도의 간디를 적정기술의 선구자로 꼽았듯이, 마을영화라는 장르를 개척한 신 감독에게 어쩌면 ‘영화계의 마하트마 간디’라는 별칭이 붙어도 무방할 것도 같다.
지난 8월 20일부터 지역 마을 순회 방식으로 국제마을영화제가 시작되었다.
작년 장수군 방문에 이어서 올해에도 필자에게 ‘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에서의 반가운 초청이다. 이번에 방문하는 마을은 그야말로 한반도 끄트머리에 위치한 부산의 섬 둔치도이며, 7일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영화제는 그 주제어 부터가 흥미롭다. 행사 첫 번째 날인 9월 1일은 ‘흙의 날’ 그리고 다음 날에는 ‘불의 날’, 사흘째는 ‘흙과 불의 날’로 마을의 기원제를 겸하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행사의 마지막 날에는 ‘흙 불 그리고 빛’이라는 주제로 축제를 열며 폐막식을 겸한다.
필자에게는 이번 개최지인 둔치마을과 그 주제어만으로도 금방 유추되는 점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3대째 흙과 불을 다스리는 대가들이 사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천백광’ 도예가문이 바로 그들이다.
황해도 해주에서 도예로 대를 이어온 유씨 가문은 전쟁 당시에 부산으로 피난을 와서도 둔치도에 자리를 잡고 가문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유길수(66)와 그의 아내 김옥희(60) 도예가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그리고 두 아들 유승방(36)과 유승낙(32)이 대를 이어 도자기 가마에 불을 지피고 있다. 천백광 도예가는 요즈음 저렴하고 편리한 가스 불가마를 사용하지 않고 전통장작 가마를 고집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가마 속에 열을 최고치로 높이는 기술과도 관련 있을 뿐만 아니라, 불을 다스리는 대가들만이 느끼고 알 수 있는 묘법이 숨어있다고 한다.
▲필자/나영철 언론인. ©브레이크뉴스
또한, 그들은 도자기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흙과 불을 다스리는 기술로 다양한 연구개발에도 노력 중이다. 그중 한 성과로는, 일라이트와 같은 특수 광물질을 배합한 초벌 도자기와 신안 천일염을 결합해, 가마 속에서 소금의 불순물을 증발시키고 도자기에서는 미네랄을 비롯한 다양한 유익 물질을 흡수한 명품 소금 개발을 완성한 바도 있다.
이번 그트머리 국제마을영화제의 신지승 감독과 천백광 가문의 유길수 도예가의 협업인 흙과 불 그리고 빛이라는 마을영화제가 어떤 양식의 새로운 감동을 빚어낼지가 대단히 기대된다. 작년처럼 소박하고 정겨운 작은 아름다움에 다시금 빠져볼 기회다.
*필자/나영철 언론인. 전 환경TV 대표 / 탄소중립 ESG경영 기획컨설팅사 ESG-P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