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년 촬영예정
아이들 동화책에 항상 나오는 첫 구절들이 있다
옛날 어느 산속 외딴집.. 왜 항상 산속, 외딴집이 많을까 싶다
아무래도 등장인물이 많아지거나 마을로 확장시키면 이야기와 캐릭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지는 건 불가피하다. 단순하고 도식적인 , 집중적인 전개가 쉽도록 하려는 이야기의 속성에 기인할지도 모른다
밤마다 도깨비가 나타나 '이야기'를 해달라 조르는 '이야기'도 있다
'이야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외딴 산속 할아버지 이야기. 나는 광해군과 유몽인에 대한 상상의 이야기를 만든다.
인목대비 폐위문제로 의견이 다른 자신을 숙청한 광해군. 유몽인은 광해군이 세자일 때 글스승이었다.
한양으로 진격하는 일본군을 피해 선조의 피난을 (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뜻의 몽진아라고 하였다) 도왔지만 정작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고 피난 간 형의 죽음을 통해 인생의 허무를 이미 깨달은 유몽인.
인조반정 당시 유몽인이 폐비당론을 따르지 않았다고 그때는 숙청당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 은거하고 있던 유몽인을 결국 단 1년뒤 처형해 버린다.
중립외교 정책과 윤리적인 약점으로 인해 친명당파에 탄핵당해 버린 광해군. 정치세계에선 어쩔 수 없는 법칙이다. 그런데 45살이라는 늙은 나이에 얻은 딸. 그 딸이 5살 때 인조반정으로 궁에서 쫓겨나고
하나밖에 없던 아들을 강화도 유배지에서 잃고 먼 제주도로 유배지를 옮겨야 했던 광해군. 이괄의 난 등 흉흉한 정세속에서 다시 복위에 대한 꿈을 꾸었는지 모를 일이다.
당대정치에 대한 관심을 뒤로하고 민초들의 이야기를 남기려고 발품을 팔고 다닌
어우야담이라는 야담집을 만들어 가다가 자신을 향하던 칼이 잠잠한 듯 했는데
정치권력들의 불안하고 성급함으로 유몽인과 그의 아들은 함께 죽임을 당한다.
팔도의 이야기를 채집하러 다니던 유몽인과 유배당한 광해군은 어떤 모의를 한 건 아닐까?
유몽인의 아들을 통해 은밀하게 이어진 짧은 모의의 움직임을 상상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본다.
이후 제주 유배지 위리안치에서 여자 하인에게 영감이라는 소리를 듣고, 안방이 아니라 대청에서 잠을 자야 하는 모욕을 이겨내면서 다가올 복위를 열망하는 광해군
친척집에서 키워지고 늦은 나이에 결혼도 못하고 있는 , 하나밖에 없는 딸과 광해군의 서신을 연결하며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건져 올리는 유몽인과 그의 아들의 은밀한 이야기에 대한 상상
임진왜란으로 인해 임금이 될 위치가 아닌 자신의 한계를 역전시키고 등극하지만
하루아침에 싸워보지도 못하고 어이없이 궁에서 피난 나왔지만 다시 은둔한 이의밀고로 인해 체통 없이 잡혀 버린 광해군 그러나 조선의 어느 왕보다 67살이라는 최장수하고 행복하게도 자연사하게 되는 광해군이었다 . 현재의 탄핵정국에서 그가 오버랩된다 .
결국 광해군은 유몽인의 '무위'를 그제사 제주도 유배지에서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 글스승이었던 유몽인의 가르침을 마냥 흘리고 말았고 다시 폐비논쟁에서 스승의 정치적 의견을 묵살했던 광해군
오히려 세상사는 실존의 비애를 가득 안고 산 사람 일 것 같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처참한 역사 속에서 숨겨진 민초들의 이야기를 건져낸
유몽인과 임진왜란의 영웅 광해군이 강화도와 제주도 유배지에서 권력과 힘의 역사를 떨치고
명분과 먼지 같은 삶의 허무를 만난다는 그런 가상의 사극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물론 인조반정 당시 5살 그리고 광해군이 죽을 때 21살 미혼 상태 ..유몽인과의 왕래나 편지가 오고갔다면 1623년 밖에 없는데 그때는 너무 어렸을 때 였기는 하다.유몽인은 아들과 함께 1623년 처형되었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어우야담에는 "배우"라는 단락이 있다
"예로부터 배우를 두는 것은 보고 웃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상을 교화하는 것을 더욱 돕도록 요구함이니...라는 구절에서 시작한다
어떤 배우가 나무로 만든 귀신 가면을 쓰고 그 아내와 함께 걸식하였다
그러다가 아내가 물에 빠져 경황이 없어 귀신 가면을 벗지못 한 채 발을 구르며 곡을 하는데 그는 비록 애달파했으나 보는 사람들은 목이 쉬도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
그게 역사와 정치를 보는 민초들의 시선이고 역사극이 다다러야 할 태도라는 생각이다 .
어우야담 유몽인
임란 때 전국 8도를 다니며 암행어사를 하다 보니 애초부터 민초들의 이야기에 대한 집착이 강했을 거다. 춘향전이나 홍길동처럼 가상적의 캐릭터들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살았던 평범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야담집의 의미가 동화의 산속 외딴집의 반경을 떨치고 홍길동 , 춘향전 같은 영웅담과 연애담과는 다른 민초들의 생활이야기로 확장시켰다는 데 의미가 크다.
우리 역사 속 허망이 극에 달했던 시대라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이후 대기근시대였을 것이다.
그 임란 때의 암행어사직을 수행하면서 민초들의 삶을 대면했고 광해군의 글 스승이었던 이 유몽인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미루어 놓은 작품 중의 하나이다 .
역사를 통해 가족과 무위라는 가치를 되새겨 볼 수 있을 이야기이다 .
거대하고 복잡한 역사의 서사를 정치 당파적으로 사유화하거나 남녀 상열지사의 드라마로 해석해내는 편협과 단순,관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