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밀려온 로또 2017년 60분 속초 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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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엘사(겨울왕국)와 정글북영화 , 같은 데서 만들었지?
-그래? 어떻게 알았어?
-둘 다 성에서 불꽃놀이하는 게 시작할 때 나오니깐.
-디즈니라고 하는 회사야
-미국 사는 가족이지?
6살 하륵과 하늬는 세상의 모든 영화들이 가족들끼리 찍고 만드는 줄 안다.
진짜 경찰이 경찰 연기를 하고 진짜 아빠가 아빠 연기하는 줄 안다.
아들은 정글북을 수십 번 보고 딸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50번도 넘어 보고 있다
그렇게 보고 살았기 때문이다. 아마 연기를 하려면 오디션을 봐야 하고 엄청난 경졍을 거쳐야 하고 또 스타들의 엄청난 기득권을 알게 된다면 그때는 망아지 같은 아이들도 아마 더 이상 연기를 안 한다고 버틸 가능성이 크다.
--그래 근데 디즈니는 애들 보는 영화만 만들어 돈을 벌지
-(아들) 우리는 할머니들만 보는 영화만 만들지..
-(딸) 할머니들이 돈이 없어 우리는 돈을 안 받지? 아빠 ~
-돈 생기면 뭐 사고 싶은데?
-(아들) 아우디 (딸) 난 bmw
-앞으론 우리 영화에도 너희들이 나오고 돈 많은 애들이 보고 돈 낼지도 모르니깐 연기 좀 열심히 해라 제발 잘하는 것까진 안 바랄게.
-연기하면 토요일 밤에 아우디 bmw 태워줄 거지?
연기를 하려고 작정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연기를 할 생각도 없는 이들과 함께 극을 만들어 가는 것은 이미 자살골을 차려고 자기 골대를 향해 몸을 향하고 있는 이와 다름없다 아니면 정면승부를 피하는 고도의 전략일지, 선남선녀가 아닌 장삼이사, 갑남을녀의 극으로 예술의 혁명을 꾀하려는지..
나는 기존의 직업연기자들과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몇 년 경험하고는 그 방식이 지긋지긋해졌고 별 감흥이 없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영혼이 없다 삶터의 공기, 문화에 절여지지 않은 개성들이다. 그들을 통해 표현되는 사람의 어설픈 이야기로 삶의 구체성을 잃어버리는 손실은 얼마나 큰가?
내가 아는 그들의 웃음을 얼마나 닮을 수 있을까? 웃음과 슬픔을 모방, 표절할 수 있다는 게 나로선 얼마나 부당한 것인가? 그것이야말로 가장 고유한 생의 자산이 이거늘
슬픔 아픔 상처야 대변해줄 수 있었다고 하지만 그 골짜기에서 구름 속의 햇살처럼 잠시 비추는 그들의 싱싱한 웃음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 가?
이렇게 가족끼리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일단 신뢰는 반쯤은 잃는다
지원사업을 안 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가족과 다니는 게 마음 편하고 작품에도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지만
어차피 지방 다니며 먹고 자는 불편함을 감당하는 스텝들에게
충분한 보상 해주지 못하는 착취자와 잔소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한 지 다른 사람은 모른다.
삶의 굳은살이 얼굴과 말에 스며든 이들이야말로 몸의 창작과 표현이 준비되고 가능한 이들이다
도시에서 영화하고 싶은 이들 모여라라고 하는 작업은 그야말로 고역이다. 삶의 스토리가 없는 이들, 뻔한 삶을 산 이들의 연기에 대한 욕심만 가득한 이들에게 나올 수 있는 건 그렇게 깊지도 않고 감동스럽지도 않았다.
내가 마흐말로프가족을 대하는 태도는 좀 질투적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 감독가족의 영화는 사실 네오리얼리즘 작품들과 다를 바 없다. 시나리오, 연기를 하려는 사람들 , 정치사회적 약자, 눈물, 상처, 아픔 고통의 이야기에 기반을 둔다. 작은 커뮤니티의 웃음이 목적은 아니다. 물론 우리도 그들 웃음만이 목적은 아니지만
우리는 눈멀지 않은 이에게 눈먼 연기를 시키지 않으며, 이야기를 먼저 준비하여 진짜 사람의 캐릭터와 개성을 무화시키지 않는다
그들 몸에서 누에가 실을 뽑듯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유구한 엘리트 지식인들에 의한 창작방식의 폐기다 라며 아주 격렬하게 우리 가족의 존재를 증명해나간다. 따져보면 엇비슷한 시기에 작품들이 시작되었고 (우리가 좀 빨랐다 ) 우리 가족이 좀 더 진화된 영화의 개념을 가지고 있노라고 여전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 있는 점집에서 남자는 무당에게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00놈 열 잡아먹고도 눈 깜짝하지 않을 놈이야 넌
소금에 좀 절여야 돼
그래야 숨도 죽고 양념이 잘 묻히는 거야
우리 마을 할머니 들 봐 세상의 잡놈들에게 절여져 저렇게 된 거야
두리둥실... 쓸데없이 실속 없이 다니지 말고 경로당에서 할머니들이랑 좀 놀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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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폄하하려면 단 두 마디만 하면 된다
-에이 그 애!
어쩌면 남자는 그런 취급을 받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약하고 가진 것 없고 작지만 인간적인 이들에게 불안과 공포는 많이 보인다.
그렇기에 모두들 권력과 돈, 글에 스스로를 의존시키려 하는 것 아닌가? 실속 없다는 건 기실 권력과 돈을 가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권력과 돈에 접근하려는 이들은 특히나 더 잔혹하게 권력이나 돈이 없는 자를 멀리하고 경멸하는 경우가 더 많고 없는 것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더 거세다..
하지만 살아갈 날들이 마냥 불안한 암탉만이 알을 품는 법이다..
신뢰의 완장하나를 그 남자에게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남자는
- 나 영화 찍어... 온 동네방네 다니면서 소문을 낸다
물론 그 실속 없는 남자의 소문에 내 영화의 대가는 혹독할지 모른다
하지만 경로당의 할머니들은 이미 우리 기족을 잘 알고 이미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남자와 함께하는 연기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연기이니깐 더욱...
# 두 할머니 이야기
마을 경로당 바로 앞에서 몇 년간 일을 했는데도 경로당 안으로 들어와 이렇게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었다
낯설고 새로운 사람의 역할은 크다
사람의 관계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낡아진다. 헌사람이 되어버린
관계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이유로 무덤덤 해진다. 얼굴도 안 보는 이들은 아예 고개를 돌려 지나가고
매일 만나도 별 할 말이 없는 관계야 말로 그 얼마나 슬픈가?
우리에게 이 마을은 새롭고 낯설지만 그들에게는 재미있는 가족이다
아침 촬영 리어카를 몰고 가는 우리 앞으로 다가오는 할머니 한분
몇 번 촬영 하긴 했는데 자꾸 연기를 안 하려고 피했던 할머니다.
그런데 양손에 무얼 쥐고 있다. 도루묵알을 볶은 것이다. 물렁 물렁한 것 같은데 딱딱한 알 비린내가 입안에서 진동한다
이걸 볶았는데 누굴 줄까 하던 차에 우리를 만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멋과 맛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정말 감격스럽다.
몇 년 전 구정 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자전거를 경품으로 받은 적이 있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띠리다니면서 둘이서 징징
거리는데 사람들 눈 때문에 고함도 못 지르고 ,,
이제 다시는 안 사주는 것을 꼭 약속을 하라고 협박하고서야 사주었는데...
경품 추첨 한다고 영수증을 넣어라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 아이의 그 영수증이 건져졌던 것이다.
당첨되는 순간의 기쁨과 놀라움 그리고 방금 전의 징징거림이 몇 번 와도 좋을 것 같은...
우리를 따뜻하게 한다
우리 아이들이 길 위에서는 얻는 것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아마 너희들이 커서 더럽다 못생겼다 할 그 사람들이 너희들에게 해준 그 기억, 잊히더라도 아빠는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다
책에서나 영화 50번 본다고 해도 이런 이야기는 못 만난다
언젠간 불현듯 그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떨칠 수 없을 것이다
나로선 이것이 내영화의 마약이다 문제는 밥을 안 먹고 마약만 먹어서 문제 이긴 하지만
시나리오에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보탠다
# 남자는 로또 복권을 사서 마을의 구석구석에 감춘다 어느 할머니가 앉았던 소파밑. 밖에 나와 앉아 놀다가 내일 다시 앉으려고 접어 놓은 종이박스 가운데...
그들이 운 좋게 찾으면 그들 것이 되는 로또 복권 10장을 일주일에 한 번씩 사서 한 장씩 숨기고 다니며... 그는 언젠간 이 마을에서 로또 1등이 나올 것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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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우리 마을에 좋은 일이 생길 거야
-무슨 소리야
-두고 봐
-네가 하는 이야기는 콩으로 메주 쑨다고 해도 안 믿어
-내가 로또 복권을 마을 구석구석 숨겨놓았거든.. 두고 봐
-미친놈 그걸 네가 쥐고 있어야지. 내 쓸데없는 짓만 골라서 해
실속 없는 놈이 머리도 없어
#그런데 로또 복권을 숨기는 남자의 모습을 숨어서 보고 있다가
남자가 가고 난 뒤 숨긴 복권을 몰래 꺼내는 아이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