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90분 보안여관, 오프 앤 프리국제영화제 초청
복실이의 젖이 커져가고 있었다
다음 달이면 우리 쌍둥이가 태어날 예정인데.. 이 정신없는 상황이 몹시 부담스럽다...
무인도 같은 용문산 속에 졸지에 산모가 둘이다.
복실이의 고향은 경북 영주 무섬마을이다
2010년 1월 전통 한옥 마을인 무섬 마을의 주민들이 출연한
" 선비가 사는 마을"이라는 극영화를 찍었다
마을주민들의 드라마에 복실이는 영화 속 또 다른 주인공으로 출연했고 복실이는 그때 갓 한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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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도 암놈이라 우리 여자들처럼 세상사는 게 고생일 거다"
마을할머니가 마당에 누워있는 복실이를 바라보며 즉흥적으로 내뱉은 그 대사는
우연스럽게도 이 영화의 주제가 되었다. 나의 마을영화는 그렇게 영감을 받고 종전까지 촬영한 모든 것이 영감의 주제로 새롭게 연결된다.
우연이란 건 질긴 관찰을 통해 얻어지는 발견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배운 선비들이 산다고 알려진 무섬마을 가면 잘 살 것 같다고 기대하고 시집을 왔건만
오히려 잦은 잔소리와 가난으로 인해 고생깨나 했다고 푸념하는 할머니.
그래서인지 이리저리 마을을 쏘다니는 게 일인 복실이에게는 유독 살갑게 대한다.
같은 여성이라는 동병상련의 마음에서였을 테다.
여느 마을처럼 처음에는 "무슨 영화를 찍는다고 이런 난리야?" 하다가도
그냥 자기들 살아가는 모습이나 마을 풍경이나 찍을 줄 알았다.
웬걸 , 푸석한 얼굴 내밀고 TV의 최불암처럼 연기를 해야 한다고 하면
그때서야 질겁을 한다. 그래도 체통을 앞세우던 양반 마을이었던 무섬 마을에서는 몹시도 그 과정이 지난했다.
나이 70 평생 연기라는 연자 생각을 해보지도 않은 자신이 신성일이나 엄앵란 같은 그런 연기를 해야 한다니 모두들 긴 한숨 내쉬는 절차는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리고 뭐 캐스팅이나 오디션 같은, 고르고 가려 뽑는 절차도 없다
이 사람 저 사람 카메라 들이대며 웃고 떠들고 하다 보니
점차 최불암 신성일이 하던 게 이런 거구나 알게 되고
나로선 오히려 그들의 연기를 뛰어넘는.. 그들의 연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위기의 연기를 창출해 내게 되었다.
한국 최초의 천만 관객영화, 최진실 주연의 '편지' 이정국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생활연기의 구현'라고 했다. (이정국 감독 또한 몇 년 뒤 그리고 최근까지 평범한 마을 주민들과 영화를 찍고 있다. 또 2024년 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에 찾아와 응원해 주고 최근 제작한 감독 자신의 마을영화를 상영하였다)
무슨 연기교육이 필요한가? 그들 있는 그대로 의 말투며 캐릭터를 기반 삼아
주어진 어떤 상황들을 연기하다 보면 어느 마을에서나 그 땅과 그 사람들의 드라마가 탄생하게 된다.
그 시작이 누구냐? 첫 단추를 누가 채워줄 것인가도 나에겐 중요하다
가장 먼저 손들고 나온 이가 복실이였다
내가 자는 한옥 집 방 마루밑에서 기다리다가 방의 불이 꺼지면 마을에 있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곤 했던 복실이
하도 기이해서 일부러 불을 끄고 복실이가 가는지 문틈으로 보고 있기도 했다
금방 눈치채고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
내가 자는 것을 확인하고야 혼자 마을의 집으로 되돌아가는 복실이를 보면서
객지의 외로운 마음달래고 고맙고 감동스러웠다
또한 영화의 영감을 받고 말았다.
결국 무섬 마을 영화 "선비가사는 마을"에서 복실이는 시간이 가면서 결국 이야기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전통 유교문화 속에서 억압당하고 있는 여성성에 대한 상징적인 역할과 지위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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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의 촬영이 마무리될 때 우연히 서울에서 마을을 찾은 40여 명의 주부들과 주민들이 함께 가편집된 영화를 처음 볼 기회가 있었다.
"지금 한 시간 동안 도대체 무슨 말인지 대사를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외국영화 보는 것처럼
한 마듸도 알아들을 수 없어요
복실이라는 개는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었지만, 이 영화에 자막을 해야 되지 않나요?"
경상북도의 사투리가 듬뿍 담긴 대사는 이곳 사투리를 처음 들은 몇몇 서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낯선 경험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 나는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였고 좀 중간중간 사투리로 인해 알아듣기 힘든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충분히 이해했다"라고 했다
'
경상북도 사투리는 껴, 가 붙는다
"했니껴 ? "
" 잘 지냈시니더"
"서로 얼굴도 못 보고 지냈니더 , 좋으이껴 , 안녕하시껴, 밥잡사니껴,
이렇게 껴 와 이더 가 들어간다
사실 그런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인가?
오랫동안 경상도에서 살았던 나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심지어 자막이라니?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댕기 오시데이 적은 ?( 다녀오세요 근데 저녁은 )
어띠 추운동 (어찌나 추운지 )
쌔가 빠지다(힘이 너무 들다)
디다(피곤하다)널짜(떨어뜨려라)
이게 일반적인 표준어를 무기로 하는 방송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잘 보고 들을 수 없는
그 땅만의 언어다
"그래서 저는 이런 영화를 만듭니다
우리가 시골에 와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넓어진 이빨 사이로 발음이 새서
어눌하고요. 진한 사투리를 뿜어대면서 몇 번씩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고 좀 피곤한 이런 사람들입니다
TV에 주로 나오는 사투리는 전라도 욕, 경상도 성깔 부리는 사투리밖에 없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우리가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영화를 만듭니다. 자막을 하면요 그때는 진짜 외국인이 됩니다 "
자막을 하면 될 터인데 굳이 안 한다고 선언할 수밖에 없는 나의 고집은 솔직히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날 영화상영과 토론으로 인해 친해진 서울의 아줌마들은 다음날 나와 함께 함께 무섬마을의 영화에 끼어들 한 씬들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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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실이가 나만 따라다니다 보니 복실이 주인이 좀 섭섭해졌다.
그리고 복실이를 인근 마을의 지인에게 팔 요량이라, 복실이를 내가 데려가야 할 상황이 되었다.
"복실아 우리 따라 양평 용문산 가서 살래? "
마을에서 최종 영화 상영을 끝내고 결국 복실이를 데리고 양평 용문산으로 돌아왔다
복실이와 나는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몇 달 뒤 복실이가 외로워할까 봐 내가 사는 용문면에서 수놈 복동이를 데리고 왔다.
2년 뒤 2011년 산속에서는 11명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복실이는 그 후 길 위의 빛들, 숲 속의 엄마( 서울 스마트폰영화제 우수상) 생은 누구에게나 찬란 하지만 (부산국제동물영화제 개막작) 동물의 밤은 사람의 낮보다 (동물영화제 초청) 등의 영화를 나와 함께 찍었다.
그리고 2024년 4월 15살로 나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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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ebs시네마천국을 진행했던 정재형 동국대교수는
영화 "선비가사는 마을"을 보고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겨주었다.
이 삶은 오래 지속될 것인가.
영화 <선비가 사는 마을>은 선비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듯이 서울,
대도시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선비들이 사는 마을 경북 영주시 무섬 마을은 유령마을이다.
그곳에 없는 것들. 젊은이가 한 명도 없다.
그곳에 개 복실이가 있다. 인심 좋은 개 복실이. 한바탕 웃음이다. 개에게 인심을 말하다니. 복실이는 묶어놓을 필요가 없다.
사람을 물지 않으니까.
그녀 복실이는 인심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다 보니 덩달아 인심 좋아져서 사람을 경계하지도 물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서 심심하게 살다가 평온하게 임종을 맞이하는 그런 사람과 같은 개다.
그 인심 좋은 복실이 같은 개는 서울에 더 이상 없다.
이 영화는 젊은이 없는 마을, 대신 인심 좋은 개와 인심 좋은 어르신들이 사는 마을을 통해 현재 도시가 잃어버리고 사는 가치에 대해 토론한다.
과연 이 삶은 영원히 지속할 수 있는가.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뭔가.
그건 사람 가치, 삶 목표에 관한 성찰이다.
앞으로만 달려가는 삶. 계획만 있고 앞만 있고 뒤는 없고 돌아봄이 없는 세상은 숨 막힌다. 신지승 감독이 선택한 마을 무섬마을 이야기는 유령과 유령 같은 서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관광단지로 조성된 마을은 형식적으로 전시적으로 존재한다.
달집 태우기 민속전통 유희 때문에 타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의식을 집전하는 마을.
이 마을에 서울 처녀 두 명이 찾아온다.
그들은 이제는 청년이 살지 않고 마을만 존재하는 죽은 도시 무섬마을에 들어선다. 무섬마을, 그 말처럼 무섬, 무서움을 주는 으스스한 동네다.
어르신들은 유령처럼 느리게 움직이고 그들은 기력이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 도깨비는 바로 서울서 온 두 처녀다.
타국에서 온 듯 낯선 모습으로 나타난 두 여성은 더 이상 이 마을 정서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외모가 변해있다.
도농 간 격차는 으스스함으로 다가온다.(정재형 동국대 영화과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