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 영화만들기 70분 다큐멘타리
글쓴이는 24년 동안 ‘마을영화’라는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고민해 왔습니다. “침묵의 사람들에게 극(드라마)을 어떻게 생활 속에서 펼쳐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붙들고, 전통적인 영화산업이나 미디어교육과는 다른 길을 개척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명확한 해답을 완전히 보여주지 못했고, “황금을 찾으려다 동굴에 갇힌 처지” 같다고 솔직히 고백합니다. 이 글은 그 노력과 시행착오를 기록하여, 마을영화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무엇을 추구할 수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마을 주민이 배우이자 창작자
전통적인 영화에서는 감독이나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선발합니다. 반면 마을영화에서는 마을 주민 누구나 배우가 될 수 있고,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 갑니다.
“오디션 캐스팅은 범죄”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쓰면서, 누군가를 탈락시키거나 소수만을 배우로 선정하는 방식 대신, 전체가 참여하며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상의 드라마
마을영화는 축제의 영화이자,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드라마’를 추구합니다.
화투판에서 스쳐 간 할머니의 에피소드가 시나리오의 첫 장면이 되고, 길고양이의 죽음이 새로운 극적 갈등(장례식·유해 발굴-살아가는 기적중에서 )으로 이어지는 등, 현실의 우연한 사건들을 재료 삼아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기존 대중영화·독립영화와의 차별성
대중영화나 독립예술영화는 보통 “1~2인의 주인공, 다수의 엑스트라”라는 구조를 갖고,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추구합니다.
마을영화는 거대 제작비, 프로 연기자, 극장 상영을 전제하지 않으며, 누구나 이야기를 만들고 참여함으로써 공동체 전체가 ‘주연’이 됩니다.
축제이자 잔치
마을영화는 결과물을 극장에서만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을 광장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다 함께 잔치를 열어 감상합니다.
끝난 뒤에는 음식을 함께 먹고, 서로의 연기를 이야기하며 즐기기도 합니다. 이는 공동체적 유대와 직접적 소통이 핵심이 되는 예술 형태입니다.
새로운 미학과 철학
마을영화의 방향성은 “마을주민이 일구어 가는 실제 삶의 이야기”를 우선하는 것입니다.
극적인 갈등이나 살인·복수·멜로와 같은 자극적 서사 대신, “생활인의 관계 ,노동 ,정서”에서 감동과 재미를 찾습니다.
시나리오도 시작부터 완벽하게 짜인 것이 아니라, 매일 촬영하고 중간 시사회를 거치면서 조금씩 변형·보완·재구성됩니다. 작가나 감독 한 사람이 아닌, 참여한 이들의 협력과 즉흥성이 중요합니다.
기획과 연출
“일방적 지시 없이 대화하고 협력한다”가 원칙입니다.
전문 장비가 없거나 예산이 적어도 괜찮습니다. 살수차가 아니더라도 호스로 물을 뿌리고, 표준렌즈만으로도 충분히 ‘장면’을 만들어 냅니다.
시나리오와 캐릭터 생성
“생활 속의 한 장면”에서 출발해, 그것을 살짝 비틀어 내러티브(극적 흐름)를 늘려 가는 방식으로도 가능합니다 .
예: 보청기를 잃어버린 할머니가 화투판에서 돈을 벌어 만회를 해 보려 한다 → 여기서 만들어진 할머니 캐릭터가 연기를 하게 되고,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짐.
촬영
기다림과 관찰이 중시됩니다. 주민들은 실제 삶을 살다가, “카메라가 돌 때” 가벼운 유도나 상황 설정만 받아 연기합니다.
배우들은 “평소에도 생활이 곧 연기”가 되는 상태가 점차 익숙해집니다.
편집·시사회
편집 과정에서 여러 번 중간 시사회를 열어,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합니다.
“누구의 작품”이라는 개념보다, “함께 만든 공동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반영됩니다.
다소 중구난방이어도, 결과적으로는 공동체 이야기가 하나로 엮이는 ‘조각보(patchwork)’ 같은 형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
완성 후 축제
영화 상영 후에는 자연스럽게 잔치 분위기로 이어집니다. 주민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확인하며, “마을공동체가 만든 작품”에 자부심과 즐거움을 느낍니다.
‘브리꼴레르(bricoleur)’ 개념을 빌려와, 논리만으로 무장한 전문가보다는 ‘체험적 깨달음’과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창작자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브리꼴레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습니다:
에토스(Ethos): 사람 자체에서 풍기는 인간적 신뢰감과 품격.
파토스(Pathos): 청중의 가슴을 파고드는 정서적 호소력과 공감 능력.
로고스(Logos): 논리적 근거와 객관적 사실을 통해 설득할 수 있는 힘.
마을영화의 창작자나 참여 주민들은 주로 에토스와 파토스에 강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전문 훈련을 한 프로는 아니지만, 바닥에서 체험을 통해 몸소 배운 지혜와 인간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생활 속의 설득력”이 바로 보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Ⅴ. 마을영화와 기존 영화의 차이점
상품·예술영화 vs. 반(反)영화로서의 마을영화
기존 영화: 자본(대기업), 극장, 직업 연기자가 핵심. 흥행성, 예술성을 갖춘 완성된 이야기가 목표.
마을영화: 생활인, 품앗이, 마을광장, 축제. 흥행보다도 ‘함께 만드는 과정’을 중시. 한두 명 주인공보다 모두가 주인공.
메시지·갈등 vs. 실재와 가공이 결합한 이야기
대중영화나 독립영화: 관객를 끌기 위해 갈등과 상징, 선악 대립 혹은 주제를 명확하게 설정.
마을영화: 갈등의 극단보다 일상의 소소한 사건과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연대·공존을 추구함.
연기와 드라마
기존: 연기 교육과 훈련을 통한 프로의 연기가 중심.
마을영화: ‘생활연기’, 즉 일상생활 그대로의 즉흥성과 우연성을 살린다. 프로적 기교보다 자연스러움과 공동체적 에너지가 우선.
모두가 예술가
특별한 천재가 아닌 평범한 마을 주민도 자신만의 “1의 창의성”을 발휘해 이야기와 연기에 참여함.
그 결과 ‘10 x 1=10’ 수준의 새롭고 풍부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음.
작은 마을에서 울려 퍼지는 큰 공감
지역 축제를 통해 마을 내부에서 의미를 만들어 내지만, 그 파장은 넓은 세상으로도 퍼져 나갑니다.
가난하고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삶의 지혜와 시간을 공유하며,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는 공동체를 만듦.
과거 예술사와의 유사성
밀레, 렘브란트 등도 왕족과 귀족만 그렸던 당시 풍조에서 벗어나 평범한 사람과 농민들이 주인공인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 마을영화에서도 이어지며, 현실 속 ‘보통 사람들’을 예술의 주인공으로 재발견합니다.
잊힌 이들의 이야기 복원
사회에서 침묵하거나 움츠렸던 개인들에게 카메라 앞에 설 기회를 주고, 스스로를 표현하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의 ‘숨겨진 가능성’을 깨우는 것이며, 문화예술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셈입니다.
마을영화는 궁극적으로 “가장 작은 공간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조명하여, 그곳에서 생겨나는 삶의 교향곡”을 만들어내는 일을 지향합니다. 자본·권력·지식이 없는 이들이 중심이 되어 탄생한 ‘생활 공동창작’은, 기존의 영화산업(상품·독립·예술)의 틀을 넘어서는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감독 개인의 상상이나 작가의 아이디어에 얽매이지 않고, 실제 마을 주민이 함께 즐기며 만들어 낸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어떤 작은 마을과 사람도 대단한 예술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내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마을영화가 이윤이나 극장 흥행이 아닌, 진정한 ‘공동체 축제’로 자라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동시에 스스로 고군분투해 온 시행착오가 더 많은 마을에서 ‘생활 속 드라마’를 꽃피우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1) “마을영화”와 기존 상품영화(상업영화)·예술영화(독립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질문: 마을영화가 상업영화나 독립영화와 어떻게 다른지, 특히 제작 주체나 목적, 관객과 소통 방식에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상업영화는 자본을 중심으로, 독립영화는 작가주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마련이죠. 반면 마을영화는 자본도, 작가의 개성도 아닌 ‘공동체 그 자체’를 기획 단계부터 앞세웁니다. 누가 주인공이 될지, 누가 관객이 될지도 모두 마을 주민들이 정한다고 볼 수 있죠. “누가 만들고 누가 보는지”가 아니라 “다 함께 만들고 다 함께 본다”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일 겁니다.
2) 주민들의 자연스러운 생활연기가 전문 연기보다 감동이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질문: 왜 비전문가인 주민들의 즉흥적이고 서툴러 보이는 연기가 오히려 큰 감동을 줄까요?
답변: 사실성(fidelity) 때문이라고 봅니다. 예쁜 말투도, 완벽한 표정 연기도 없지만, 생활 자체가 연기이니 자연스럽게 ‘진짜 이야기가’ 묻어나오죠. 미숙함에서 오는 어색함이 오히려 ‘저건 바로 우리 옆집 할머니의 모습이야!’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거예요. 사람들 마음속에 “저건 나도 할 수 있겠다, 나도 저렇게 살아왔겠다”라는 여운을 남기게 됩니다.
3) 축제로서의 마을영화가 공동체 재생(재구성)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질문: 해당 마을에서 영화를 축제처럼 만들고 상영하는 과정이, 그들의 공동체 문화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잡변: 마을 주민이 모여 협동하고, 서로 이야기와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 자체가 축제가 됩니다. 일상적인 갈등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도 있지만, 그걸 ‘영화 만들기’라는 공동 목표로 풀어내면서 유대감이 생기죠.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기록한다는 성취감이 곧 공동체의 결속을 키워줍니다.
4) 작품 완성도(기술·예산 등)가 낮아 보일 때, 이를 어떻게 예술적 가치로 승화할 수 있을까요?
질문: 소박한 카메라, 부족한 장비, 전문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촬영된 영화가 ‘아마추어적이다’라는 평가를 받을 때,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 또는 예술적 매력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답변: ‘아날로그 감성’이라 부르기도 하고, ‘거친 질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 마이너스가 개성이 되느냐, 흠결로 남느냐는 관객과 공동체의 의식에 달렸습니다. “비싸게 꾸민 꽃”보다 “웃자란 들꽃”이 더 인간적일 때가 있죠. 오히려 허술함 속에서 드러나는 진정성과 공동체의 정서가 기술적 화려함을 넘어서는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5) “브리꼴레르” 개념에서 에토스와 파토스가 강조되는데, 실제 마을영화에서는 이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질문: 브리꼴레르가 지닌 ‘체험적 지혜’와 ‘진정성 있는 인간적 신뢰감(에토스)’, 그리고 ‘가슴을 파고드는 감정(파토스)’을 마을영화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나요?
답변: 전문지식(로고스)으로 치밀하게 설계하기보다는, 마을 주민 각각의 체험담과 자연스러운 말투를 살리는 게 핵심이에요. 사건이나 캐릭터를 설정할 때 곧바로 논리와 계산으로 묶지 않고, “할아버지, 이거 어때요? 예전에 하시던 그 이야기 조금 더 해주세요” 식으로 ‘체험을 이끌어내는’ 대화를 해나가는 거죠. 그때 에토스가 깃들고, 파토스가 저절로 솟아납니다.
6) 우연과 즉흥성이 강하면 이야기가 흐트러질 수도 있는데, 이를 자연스럽게 한 편의 영화로 묶어낼 방법은 무엇일까요?
질문: 마을영화에서 즉흥적 상황이 계속 담기면 자칫 스토리가 산만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이를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구성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답변: 여러 갈래의 에피소드가 한데 얽힐 때, “조각보” 개념으로 접근해 보면 좋겠습니다. 거기엔 스토리의 일관성보다 “이 마을에 이런 사람이 있고, 이런 에피소드들이 겹쳐지며 자연스러운 리듬을 낸다”는 식의 결이 중요합니다. 즉,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강제하기보다, ‘마을’ 자체가 하나의 큰 주인공이 되게끔 편집과 흐름을 잡아가면 됩니다.
7) 살인·복수 등 자극적 갈등이 없는, 일상을 소재로 한 영화가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질문: 극적인 대립이 없어도 지루해지지 않을까 걱정될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다반사를 배경으로 관객의 흥미를 붙잡는 지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답변: ‘공감과 디테일’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작은 표정 변화, 정겹거나 우스운 사투리, 소소한 하소연... 이런 일상의 소품들이 의외로 우리에게 큰 몰입감을 줍니다. 자극적인 사건이 없어도, “저건 내 사정이랑 비슷하군!” 하며 정서적으로 빠져들 수 있게 되죠.
8) 마을영화 제작 과정에서 중간 시사회나 주민 간 협의는 얼마큼 자주,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요?
질문: 제작 과정에서 어떤 시점에, 얼마나 자주 주민들과 의견을 나누고, 영상을 미리 보여주는 게 좋을까요?
답변: 정형화된 스케줄보다는 ‘분기점마다’가 중요해 보입니다. 주요 장면을 어느 정도 찍고 스토리가 갈림길에 섰을 때, 간단한 모임을 열어 같이 관람하고, 후에 이야기꽃이 피도록 두는 거죠. 자주 만나긴 해야 하되, “일주일에 두 번”처럼 의무화하면 피로감이 생길 수 있으니 적절한 간격을 조절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9) 감독이나 작가의 “개인적 철학”과 “주민들의 삶” 사이 균형을 잡으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질문: 마을영화를 이끌어가되, 감독이나 작가가 자신만의 세계관을 앞세우지 않을 수도 없고, 주민들의 목소리를 100% 반영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 균형을 위한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답변: “조율·중재·경청” 세 단어가 떠오릅니다. 완전히 자신을 지워버리지 말되, 주민의 삶도 존중해야 하죠. 작가는 주민들의 다양한 생각을 받아듣고, 필요하다면 조심스레 “이건 어떨까요?”라고 제안하되, 끝까지 고집하지 않는 유연성이 중요합니다. 한마디로, ‘뿌리는 주민에게, 줄기는 작가에게, 열매는 함께’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10) 마을 단위의 예술 작업을 도시나 대규모 지역 공동체에도 확장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그 방법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질문: 대도시나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이런 마을영화 식 접근이 가능할지 궁금합니다. 가능하다면 실행 방안은 무엇일까요?
답변: 도시에서도 ‘소규모 커뮤니티’를 찾아내는 게 핵심입니다. 아파트 단지, 특정 구(區), 동(洞) 단위로 작은 공동체를 설정해서, 그 속에서 마을영화 방식으로 만들어 볼 수 있죠. 자발적 모임(독서회, 취미 모임 등)부터 시작해 점차 범위를 넓히면, “우리 동네 영화”를 만들어 공동체 문화를 되살릴 수 있습니다. 대규모여도, 반드시 ‘작은 단위의 밀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만 잊지 않으면 됩니다.
이상입니다.
이 10가지 질문과 잡변이 마을영화의 본질과 가능성을 좀 더 다면적으로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