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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과 우연의영화

돌로 영화만들기 80분 2015년 오프앤프리국제영화제 초청

by 신지승

처음 본 사람이 마을극장 DMZ로 찾아왔다. 페이스북으로 서로의 글을 본 인연떄문이다 .

나의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마당에 앉아 소주를 마시며 살아가는 기적 영화 한 편을 안주 삼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을영화란 게 이런 드라마가 있는 영화인지 몰랐어요.” 영화의 중간쯤에서 그는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이건 키에로스타미를 뛰어넘네요.” 그의 혼잣말을 듣고 나는 “키에로스타미를 아는 사람이네”라는 생각을 하며 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하지만 사람 좋은 호의와 예의로 여겼다.

“그런데 음악감독이 있어야 하겠다.” 그 소리에 빈틈을 잘 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어느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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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음악을 따로 만들지 않았고, 마을에서 상영하기 위해 촬영을 마친 후 급히 현장에서 컴퓨터에 있는 음악을 최대한 조응하게 넣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다 이루었네요.” 그는 계속 더 좋은 작품을 기대한다는 말과는 다른 뉘앙스의 말을 남겼다. 그의 말은 내게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묘하게 맞닿아 있었다. 그의 속내를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이 작품은 음악이나 편집 이런 건 전혀 문제가 안 되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품입니다.” 그의 영화에 대한 찬사는 묵직하고 냉정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는 작가나 감독의 시선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의 시선으로 삶과 역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는 시나리오 없이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며 이야기의 돌탑을 쌓아갔다.

이 영화는 나의 창작 방식을 올곧이 반영한 즉흥과 우연의 영화였다.

“평범한 이들은 감당하지 못하고, 봐도 무엇을 봤는지 모를 것입니다.”

그는 말끝마다 작품의 본질을 꿰뚫는 말을 이어갔다. 사실 만든 나조차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영화속의 한 장면, 등에 엎혀가는 노인의 얼굴을 보고 뭔가를 끄집어낸다.

“이 영화는 랑시에르에게나 부산의 안00에게 보내 평을 맡겨야 하겠습니다. (안은 미술평론을 하는 나도 아는 사람이다 )아마 세계적인 작품이 될 것입니다.” 그는 버지니아 울프의 두서없음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그의 단호하고 분명한 평가는 지난 시절 이 작품을 본 이들의 글을 다시 찾아보게 만들었다.


삶의 비의성을 드러낸 작품 ,해석 이전의 세계를 다룬 영화 (이산하. 한라산 시인)

예술의 정수 ,삶의 교향악 ,발견과 기다림의 미학, 신화적 이면서도 생활적인 영화 (국민대 김윤진 교수,댄스서울프로젝트 총감독)

한국적인 감성을 가장 잘 드러낸 내가 본 유일한 한국영화답다 ( 파비안 ,독일 영화평론가 )

생활연기를 구현(편지의이정국 감독)

그는 영화라는 영특한 매체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공동체를 만나고,그리하여 미래를 만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최혜자 문화기획자)

지금 이 시기 신지승은 가장 중요하다 신지승은 그는 새로운 발견이다. 한국영화가 앞으로 지향해야할 중요한 미덕을 신지승은 제시한다. 그는 분명 문화예술의 대안을 개발한 사람이다. (동국대 영화과교수 정재형)

20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100여 편이나 제작한 신지승감독 역시 자신의 영화를 ‘모자람의 영화’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어떠한 이윤도 추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주민들과의 의식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모습에서 에드워드 사이드가 현대의 지식인들에게 요청해왔던 ‘아마추어리즘’이 떠오른다. 또한 애초부터 기록미디어로서 탄생한 카메라를 삶과 가장 자연스럽게 밀착시키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도 발견된다.(김지하 오프앤프리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마을영화는 에어컨-선풍기-부채- 그늘이라는 생태적 귀환을 영화적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경인여대 김태경 교수 )

기존 영화와는 달리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주지 않는다는데 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김찬연 번역작가)

이 글들은 내가 마을영화를 만든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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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창작시대가 도래했다. 배우기는 해야 하지만, 대중창작의 수위와 평준화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AI가 과연 적합할지 나는 회의적이다. 오히려 홍상수와 김기덕의 영화창작 철학과 방법론이 대중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영화가 예술적이거나 잘 만들어졌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창작원리와 방법론의 계승이 중요한 것이다.

홍상수와 김기덕은 자본을 탈피한 창작 방법을 스스로 찾아냈다. 글로벌 플랫폼의 자본중심적 창작구조에 대항할 면역성을 길러야 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방법론은 지금의 시대 더욱 숙고할 가치가 있다.

AI가 상업영화의 시나리오를 더 잘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창작자의 매력적인 위치가 아니다.


즉흥과 우연, 영감과 직관은 자본주의 상품예술이 따라오지 못할 개념이다. 즉흥과 우연은 공동체 예술과 진정한 축제와 맞닿아 있다. 홍상수는 지식인의 일상성을, 김기덕은 바닥의 삶을 반추상적으로 그려냈다. 둘의 영화 속 즉흥성과 우연성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현된다.


나의 영화는 민초들의 즉흥과 우연이 충돌하며 빚어진다. 감독 개인의 감성과 참여자의 의지가 조화되어야만 의미있는 창작이 가능하다. 자본 중심의 매끈한 예술이 아닌, 민초들의 찰나적 표현과 생활의 즉흥성이 예술적 가치를 드러내는 핵심이다.

“삶이 예술이다”라는 외침은 과장되지 않아야 한다. 즉흥과 우연만으로 예술이 불가능한 것처럼, 계획과 조화를 이루는 그릇이 필요하다. 그릇의 차이가 작품의 예술성을 결정짓는다. 마을영화는 민초들의 자발성과 감독의 예술적 그릇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한다.

자본에 의존하지 않는 창작, 민초들의 예술적 표현을 담아내는 그릇, 그리고 즉흥과 우연이 조화롭게 버무려진 영화가 진정한 마을영화, 토종로컬영화의 미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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