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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들의 전쟁

 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닭 

  산속에서 수탉 한 마리를 키웠다 

꽤 멀리 떨어진  마을 아랫집개가 새벽 어둠  헤집고 올라와 닭들을   다 물어  죽이고 운 좋게 살아남은 

한 마리였다  

강원도로 영화를 찍으러 떠나야 하는데 덩그러니 

산속에  혼자 남겨두고 가기에는 마음이 아파 

데리고 다녔다  

5톤 탑차 트럭 지붕에 닭장을 만들고선  강원도 태백 장성동에서부터 충청도 공주 입동리, 전라도  화순 벽나리마을까지 함께 다녔다  

가는  곳마다 강아지처럼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수탉 꼬꼬 덕분에 마을 주민들과도 더 빨리 친해지고 

마을의 아이들과도 쉽게 어울릴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긴 긴 겨울의 여행에서 돌아와  마을의 닭 키우는 집에서  

4마리의 암탉을 사와서 신방을 만들어 주었다. 

그 귀여운  수탉은  무슨 연유인지 시름 시림 앓다가 죽어버렸다. 

산림청 땅이라는 박아놓은  시멘트 막대 같은 , 

한문으로  山이라고 적힌 그 표지석 아래에 묻었었다 

그 뒤  난 오랫동안 닭장을 잠그지 않았다

남아있는 닭들에게 사료도 주지 않았고  풀이나 먹으면서  살든 죽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닭장 쪽으로 눈길을 주다 보면 이제 山이 된 꼬꼬생각이 떠올라 되도록 닭장 쪽을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4마리 암탉은 방치되어 갔다

어느 날 보니 암탉 3마리만 보였다.  산짐승이나  족제비에 물려 죽었거니 

애써 가볍게 생각하며 무시했다      

여전히 닭장 문을 잠그지 않았고 달걀의 수는 3개였다 

  

아침, 마당에  산책을 나간 아내가  소리를 친다 

닭이 4마리라는  것이었다. 3마리여야 할 닭이  4마리라니? 

없어진 암탉 한 마리가 살아 돌아온 것이다

한 달 이상 어딘가에서  홀로 숨어 살았던 것일까? 

추적해보니깐  마당 아래  무대를 만들어 놓았는데 아마 그곳에서 도둑 고양이처럼 

세 마리의 암탉눈에 띄지 않게 홀로 숨어 살아갔었던 거다.

 한 달 넘게 고독스러운 은둔으로   버텼던 모양이다. 

 암탉 세 마리는 미운 오리 새끼 한 마리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쪼아댄다          


혹시   山과  유독 친했던 암탉이 있었는데 이  암탉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꼬꼬가 山이 되고 난 뒤

세 마리의 암탉으로부터 미움을 받은 것인가 싶기도 하였다 

왕따 암탉 한 마리만을  닭장에 넣고 닭장 문을 잠그었다 


그런데 아내는 의외의 말을 한다 

 山이 죽고 난 뒤 먹이를 주지 않고 닭들을 방목했을 때  

 왕따 암탉이 먹이를 독차지하기 위해  세 마리의 암탉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세 마리 암탉은  단합하여  암탉 한 마리를 공격하고 결국 숨어 살  수밖에 없었단 것  아닌가?


 어려운 문제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이 왕따 암탉은 억울한 외톨이인가 아니면 욕심 많은 독재자로 살다가 저항을 받아 

추락한  권력자인가? 나는 어느 편에 서 주어야 할까? 오랜만에 일거리 하나 생겼다.


다음날  마을에 내려가서  수탉 한 마리와 암탉 한 마리를 사다가

 왕따 암탉과 함께  닭장에 넣었다 

닭장에 들어가지 못한  패거리 세 암탉은 마침 비가 오는 와중에 졸지에 

보금자리를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왕따 암탉은 새로 들어온 암탉과 수탉까지    제압시켜버렸다.


수탉과 암탉을 제압한 왕따 암탉 , 풍찬 노숙과 외로움으로  

 다져진  질긴  독기만 남은   듯하다 


다시 새로운  힘의 균형이 필요해지자는 밖에  있던 세 마리의 패거리를  닭장 속에 밀어 넣었다     

세 마리 암탉이 닭장 속의 하극상을  평정해 버렸다 

새로 온 수탉은 여전히 한쪽 구석에서 함께 온 암탉과 머리를 맞대고 웅크리고 있었다 

왕따 암탉은 바닥으로 내려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얌전해졌다

이제  6마리  닭의  평화로운 동거가 시작되고 

나는 꼬꼬가 山이 된 후  처음으로 닭장의 문을 잠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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