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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K 방주

촬영 중 웹툰 혹는 애니미이션

by 신지승



ARK. 이 단어가 무슨 뜻이지?

내가 궁금해하자, 옆에 있던 여자가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날의 키워드는 ARK. 방주였다.

바로 어제, 나는 요즘 뜨고 있다는 Perplexity라는 검색엔진을 처음 접했다.
뜻이 궁금해 사전을 찾아봤다. 혼란, 당혹, 이해할 수 없음—그런 의미들이었다.
의미 있는 작명이었다.
내가 한때, 국제영화제의 이름 앞에 ‘끄트머리, 끝자락’이란 뜻의 Aporia를 붙였던 것처럼.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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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구글이라는 도구로 모든 질문이 해결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Perplexity의 등장과 함께 그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Perplexity에 들어가 내 이름을 검색해 봤다.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구글은 여러 자료를 나열하고, 사용자가 선택하게 하지만
Perplexity는 그것들을 하나의 보고서처럼 정리해 제시한다.

FELO는 거기에 더해, PPT까지 만들어 준다.

매일같이 새로 생겨나는 AI 앱들. 그 속도는 기술의 진화가 아니라
나의 언어를 앞질러 달리는 짐승처럼 느껴졌다.

내가 나를 알고 있던 산만하고 혼란된 정체성을, 더 자신 있고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느낌이었다.

지식이 누군가에겐 권위였고, 방주였던 시대는 지났지만 무언가를 새롭게 안다는 것은 아직도 여전히 기쁨의 본능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거대한 배라고요?”

“예.”

나는 순간 당황했다.

8명의 남자와 여자가 오늘 오전 10시에 이 배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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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학교’라는 이름의 모임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총 4주 동안 여행에 관한 수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1주 차에는 ‘여행’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배웠고,
2주 차에는 7인 단위로 조를 꾸려 여행 계획을 세웠다.
총 48명의 사람들, 6개의 조.

나는 6조에 속했다. 대부분의 조는 남자 2명, 여자 5~6명의 구성.

그리고 오늘, 3주 차. 실습 여행의 날. 각 조는 직접 여행을 계획하고 출발했다.
각 조원에게는 5만 원의 여행비가 주어졌다. 조건은 단 하나. 가능한 모든 예산을 소진할 것.

하지만 나는 오늘, 원래의 6조가 아닌 4조의 여행에 참여했다.
갑작스럽게 통영으로 떠나는 계획을 포기하고, 가까운 부산의 흰여울마을로 향하는 4조에 편입되었다.

그 모든 과정이 나에겐, 묘하게도 ARK라는 단어와 겹쳐졌다.

배 위에서. ARK라는 글자가 새겨진 포토존 앞.
누군가가 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 8명은 어쩌면, 함께 방주에 올라탄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
지구 위의 존재 중, 누가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겠는가. 더 바랄 게 없는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더 바랄 게 없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가혹한 형벌이기 때문이다.

검색은 몇 초면 끝나지만, 가장 어려운 검색은 바로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 뭐 하시는 분이시죠?”

현실의 검색은 키보드에 이름을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조심스럽게 묻는 것이다. 그 말을 마치자마자 누군가는 의심 없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말하기를 주저한다. 먼저 물어도 되는지 아닌지는
인간의 분위기로 판단해야 한다. 인간은 참 어려운 존재다.

AI 검색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이 배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커피숍이 있다고 한다. 부산에 살면서도 나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우리는 조금 전, 아르떼뮤지엄이라는 어두운 공간에서 나왔다.
거대한 스크린, 컴퓨터로 합성한 비디오 아트 이미지, 4K 빔프로젝터. 지금의 AI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어쩌면 구식의 전시 방식이었다. 단지 스크린에 영상을 투사할 뿐.
그런데도 인간은 그 스펙터클한 이미지와 함께 있다는 감성을 충족시킨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를 찍고 찍히는 놀이 속에서 어색함을 넘는다.

8명이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한 일—
사진 찍기였다. 증거를 남겨야 하는 현대에서 가장 필수적인 절차가 되었다.
그리고 헤어질 때까지 우리는 마치 숨을 쉬듯 의식을 치르듯 그렇게 사진을 찍고 찍히며 하루를 보냈다.
갑자기 6조에서 이 4조로 스스로 제 발로 편입되어 온, 처음 보는 남자를 탐색하는 것 같았다.

Perplexity와 FELO는 나에 대한 검색을 몇 초 만에 끝내지만, 나는 나의 이름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검색하고 나를 먼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것은 지금의 내가 아니라 아주 오래된 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얼굴, 말, 행동을 통해. 그들이 나에 대해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을 판단했는지 검색할 수 있다.

그건 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나 호의에서 그리고 그들의 눈에서 아주 최소한은 검색될 수 있는 법이다.

아르떼뮤지엄에서 생각했다.
인간은 거대함에 대한 갈망을 어찌할 수 없는가 보다. 스마트폰 하나로 손 안의 극장을 가진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스크린을 향한 향수는 DNA처럼 잊히지 않는다.

가장 작은 것으로 가장 사소한 것에서 출발했고 그것으로 나의 창작의 방주로 삼았던 나로선 그 거대함이란 것 자체가 적대적이었음을 그들은 나의 행동 말 표정등에서 도저히 검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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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는 자신이 찍히기보다는 남들을 찍어주기를 유독 좋아했다.
그것이 단순한 기호인지, 혹은 그렇게 상대를 검색하고 탐색하는 방식인지 알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를 검색해 보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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