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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로또를 사세요.

촬영예정

by 신지승


지하철역 앞 시장입구 오뎅가게, 4월이지만 겨울바람처럼 차가웠다.

특이한 게 청테이프로 표시된 꼬챙이오뎅은 900원, 아무 표식 없는 꼬챙이의 오뎅은 700원이었다. 주인도 손님도 계산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700원짜리를 몇 개 먹다, 900원짜리 오뎅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서 몇 개 먹어 봤지만 나의 입맛으로는 구별이 쉽지 않았다.

먹은 게 얼마인지 계산하고 있던 차에 한 남자가 뭔가를 가득 담은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다른 손에 복조리 하나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가게 주인은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라 , 사지도 않을 텐데" 가게 안에는 족발과 치킨을 안주 삼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중년 남자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애써 그 사람이 가게로 들어오는 걸 말릴 의지도 없는 , 가득 담긴 가방의 남자를 마치 손님을 대하는 듯한 마음이 담긴 태도는 조금 인상적이었다. 요사인 손님들이 불편해하니깐 다른 상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모습에 익숙해져 버린 탓이다. , 나도 덩달아 흥에 겨워 "돈 있는 사람들도 저런 것 안 사요! " 그 말을 하고 난 순간부터 난 주인장의 말과 내 말의 묘한 차이와 뉘앙스가 그 남자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고민에 빠져버렸다. 내가 말실수를 한 건가? . 돈 있는 사람들도 안 살 물건? 내 말은 가게 안의 손님들 귀에도 충분히 들어갈 만큼 컸다. 예상한 대로 가게 안의 손님들도 5천 원 복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릴 적 정월 대보름날 새벽에 누군가가 담너머로 던져 놓고 간 복조리가 마당에 떵그러니 놓여 있었던 장면. 어린 나는 그 무지막지한 강매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벌건 낮에 복조리 값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부모님은 아주 기쁘게 돈을 건네었다. 그런데 정월 바람 같은 4월의 바람 속에서 만난 '오래된' 남자는 하나의 복조리도 팔지 못한다. 오래된 늙은 남자는 나에게 다가왔다. "마수 해야 하니깐 하나 사주세요 " 내가 뱉은 말과 오래된 남자의 '마수,라는 말은 바둑의 호구처럼 , 도저히 나로선 저항할 수 없었다. 그런데 돈이 문제였다. 5천 원에 그 복조리를 살 형편은 못되었다.솔직히 5천원에 사기에는 불필요하고 비싼 물건이었다.

내 수중에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만 남았는데. 카드가 안 되는 오뎅가게앞에서 난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어야 했다. 900원 3개에 700원 5개면...... 대강 계산해도 복조리를 5천 원에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름 벅찬 수학문제를 푸는 걸 빤히 보고 있던, 오래된 남자는 복조리값을 4천 원으로 내렸다. 항우의 사면초가처럼 몸을 던져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말 한마디 잘못하는 바람에. 갑자기 4월에 내려온 그놈의 북극한파 때문에 찾아온 오뎅이 갑자기 땡기는 바람에. 정월 초하루, 복을 갈구하는 이들의 마음을 꿰뚫어 담너머로 복조리를 던져놓던 어린 시절의 전통과, 나의 한마디 말과 '마수'라는 은근한 무게로 복조리를 건네던 이 오래된 남자의 간절함은 무엇이 다를까 싶지만 결국 나도 기쁜 듯 4천 원을 건네고 만다. 남자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꼭 로또를 사세요 지금 바로 로또 복권을 사세요 1등이 될 겁니다 " "예 예 " 마지못해 약속 아닌 대답을 한다. 물론 이 말대로 내가 로또 1등에 당첨될 것이라고 스스로 믿을까 물론 나는 이제 로또를 살 돈마저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말은 허황되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았다. 로또 1등은 탐나지만 이전보다는 로또를 사지 않고도 며칠 뒤면 미련 없이 이 예언과 축복을 잊어버릴 오래된 세상에 대한 아쉬움. 그 어떤 행운의 환상을 더 이상 가지지 못할 스스로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이제 이 돈으로 나도 로또 사러 갑니다 " 오래된 남자는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남자가 사라지자 그제야 정신이 좀 또렷해졌다. “이건 영화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저 '오래된 남자,를 꼭 출연시켜야겠다.”그리고 왜 하필 무수히 많은 물건들 중에 복조리를 선택하였는지 듣고 싶기도 하고. 아마 그에게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복조리에 얽힌 이야기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어떤 판타지도 기도도 구원도 담지 못한 , 심지어 중국산 물건으로 폄하하지만. 4월의 찬바람과 복조리는 근사하진 않았지만, 왠지 모를 여운을 남겼다.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을 것이다. 4천 원에 산 그 남자와의 인연에 한 번 기대를 걸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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