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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

by 신지승

나의 아침은 아들 딸의 방에 불을 켜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일어나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날린다.

내 아이들의 나이일 때 나의 아버지는 항상 이불을 걷어 젖혔다. 그 차가운 감각이 오랫동안 남겨져 있었다.

나는 감히 아이들의 이불을 걷어 젖히지 못한다. 스스로 차가움을 견뎌내어 스스로 일어나는 게 가장 바라는 바이기 때문이다

매일 머리를 감아야 하는 사춘기 아이들이 등교시간에 늦었다고 밥 먹기를 거부하면 간혹 국에 말아 그들의 입까지 숟가락을 넣어주어야 한다.

요즘 아침저녁 축농증 약을 먹어야 하는 딸아이는 필사코 밥을 먹여야 한다. 따뜻한 결명자 끓인 물이나 생강과 대추를 넣고 끓인 물을 같이 준비한다. 생강 끓인 물을 싫어한다면 결명자 끓인 물을 플랜 B로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과를 깎아 그들의 머리맡에 두고 나오는 것까지 나의 아침의 기도이며 예불이다.

어떡해든 늦어도 7시 30분까지는 아침밥을 마무리해야 한다. 7시 20분이 넘으면 여지없이 다시 신경질을 날려야 한다.

구옥 2층집의 아래층은 아이들이 등교를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이다.

두 번의 고관절 수술로 인해 이제 워크라는 도구를 의지해서만 걸을 수 있는 어머니는 기어서라도 자신의 앞가림을 스스로 하시려니 내 손이 크게 갈 필요는 없다.

8시 25분. 주간 노인보호센터에 등원하는 어머니를 현관문에서 마당대문까지는 워커로, 마당 대문에서 다시 휠체어로 바꾸어 태우고 좁은 골목을 나선다. 큰길로 나서면 주간보호센터라고 적힌 봉고차가 와 있거나 그 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봉고차에 센터 직원 두명이 어머니를 태우고 나면 나의 아침은 그제사 고요해진다. 하지만 잠시의 고요뒤 4시 50분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이제 거칠고 낡은 나의 운명과 내전을 벌여야 한다.

간혹 일주일에 한두 번 11시에서 12시 면회시간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아버님이 계시는 요양병원에도 찾아가야 한다. 사지가 멀쩡한데도 허리협착증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는 아버지. 심장이 좋지 않아 88세 고령으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정형외과 친구의 권유로 수술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종점을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삶이나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건 정말 참을 수 없는 고역이다.

요양병원을 나와 간혹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간다. 버스의 종점은 부산 종합 터미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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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매번 떠나는 운명이었던 시간이 유독 많았던 나로선 책상에 앉아 돌처럼 굳어 무언가 일을 하는 게 작은 꿈이었다. 떠나는 것이 간혹 무섭고 두려울 때가 있었기도 했기 때문이다. 5톤 트럭을 몰고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전날 밤에는 간혹 악몽을 꾸기도 했다. 브레이크오일을 보충하는 것을 잊어 브레이크가 안될 때의 기억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방곡곡 100개가 넘는 마을을 찾아 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이제 스스로에게도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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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욕망 때문이었을까. 원주의 토지문학관에도, 증평의 21세기 문학관에도 머물렀다. 3개월, 길게는 6개월. 글을 쓰겠다고 머물렀던 곳이었다.

그러나 21세기 문학관에서 몇 권의 초고 제본을 들고 나와 증평 기차역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던 그 시간. 산속의 집에 불이 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후 거리와 주차장을 전전하며 살았고 아이들이 아직 10살 아래 위다 보니 마음 편하게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가지기가 쉽지 않았다.

첫 번째 책 이후에 두 번째 책은 매번 실패했다.

가득한 초고뭉치들은 제본이 되어 기다리고 있는데 여전히 힘겨워하는 매미소리처럼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어딘가로 떠나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버스터미널입구. 그 길목에 한 외국인이 바닥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다

'세계여행 중입니다 당신의 응원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짧고 서툰 한글이 바닥에 놓여 있다

그는 사람들에 눈길을 주지 않고 얇은 모포를 어깨 위에 두르고 매서운 한파의 길목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다. 에릭 마티의 음악처럼 소란스럽지도 엑센트도 없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풍경처럼

그 이유는 이전 노숙자들이 그렇게 앉아 기대고 있었던 자리였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공시설인 터미널 안의 따뜻함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그에게는 없었고 노숙자에게도 없었기에 그 자리는

따뜻함으로 갈 수 있는 최전방 같은 자리였다.

이게 합리와 규범, 배려의 글로벌의 세상의 모습이라는 걸까?

적은 돈을 그에게 주기에는 그를 모욕할 듯 미안한 느낌이고 최소 만원 정도는 후원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돈을 선뜻 그에게 주기에는 아직 나에게는 그럴 경제적 여유가 없다.

어디로 갈 것인가 ? 생각도 하기 전에 터미널 안 어묵가게 앞에 몇몇 사람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무리 지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제 각기 한 사람 한 사람들이라는 게 편하게 그곳으로 끌려간다. 어묵 1천 원 삼진어묵 1천5백 원 삼진어묵이 어떤 거죠? 주인은 넓은 나뭇잎 같은 크기로 담겨 있는 어묵을 가리킨다. 특별히 가격과 가치가 달라지는 이유를 알고 싶었는지 모른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적인 걸 묻는다는 부끄로움도 없지 않았지만 나에겐 삼진어묵은 난생 처음 들어온 어묵의 이름이었다. 그런게 이제 더 많아지고 세상은 더 나를 낯설게 만들 것이라는 걸 안다.

스스로 국물을 떠먹기 위한 국자가 놓여있고 빈간장접시를 포개놓아 각기 순서대로 얕은 접시를 꺼내 들면 되도록 모든 게 준비되어 있다. 이제 주인과 손님이 서로 묻고 답하지 않아도 제각기의 목적을 스스로 가동할 수 있도록 최적자동화되어 있다. 사람들이 몇 개를 먹었는지도 먹다 남긴 대나무꼬치가 서로 쉽게 게산을 할 수 있게 한다.아날로그세계도 디지털의 효율성을 닮아간다.

정다운 이야기를, 허튼 농담을, 나눌 시간도 여유도 필요도 없어진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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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피우기 위해 터미널 밖의 흡연소로 향한다 .흡연부스에 들어서자마자 군인 한 명이 친구 한 명에게 자신의 군대가 얼마나 오지에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

아마 군대 앞의 마을 이야기인 듯하다. "7,80대 할아버지 밖에 안 보여" 아마 내가 살았던 인제의 휴전선 10KM에 있는 마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 무작정 내가 살았던 그 마을이 분명하다고 믿고 들었다. 사복을 입은 군인의 친구는 여행자의 이야기를 듣기라도 하는 듯 믿기지 않은 듯 대꾸를 하며 되묻는다

"아이들이라도 한 두 명 보이겠지?"

"없어! 없다니깐 7-80대 할머니 할아버지뿐이야!"

전근대적인 공간인 마을이 완전히 소멸할 시간은 이제 몇 년 남지 않았다.


나에게 흥과 자신감이 왜 ,언제 사라졌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전 같으면 외국인에게 다가갈 것이다. 그 군인에게도 이야기를 걸었을 것이다." 어디 근무해요?"라고.

그 외국인에게는 "어디서 왔는가요? 당신은 어떤 나라를 여행했는가요?"

라고 그래도 띄엄 뜨임 구글번역기를 들고 이야기라도 나누었을 것이다 .

그런데 이제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런 외국인을 만나본 적이 있다. 서울 청계천에서 아이들과 같이 사진을 찍었었다 그런데 난 왜 오늘따라 우울한가?

자본주의에 기대어 살기보다는 사람들의 협력으로 자본주의의 강물을 연어처럼 거슬러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 믿지 않았는가? 자본주의와 도시화의 강물은 연어의 고향을 소멸시키고 있다. 나의 흥도 소멸하고 있다.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한 편으론 누구에게나 삶이란 아주 고달프고 지루한 여행일 것이다. 나의 이 짧은 하루 반나절 여행과는 너무 다른. 그래도 이제 나는 나를 깨워야 하는데. 세상의 차가움과 공포를 피해 거북이 껍질 같은 단단한 갑옷 이불을 덮어쓴 . 삶의 여행이 종점에 도착하기 전에. 큰소리와 신경질소리 들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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