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난 뒤, 나는 그 드라마가 보여준 로컬리티에 대해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스타 중심의 대중영화 스토리텔링에 경계심이 있다. 내가 선택한 로컬리티에 대한 집착은 그와 같은 방식으론 도달 불가능하다는 것을 오래전에 확인하고 내 나름의 작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더더욱 ‘폭싹 속았수다’는 여러 각도에서 흥미로웠다. 일종의 제주도판 ‘국제시장’ 같기도 했지만, (적절히 거시적 역사의 고리를 이야기의 소전환포인터로 잡아가는 ) 그것이 전하는 감정의 결은 또 달랐다. 무엇보다도 로컬리티란 드라마의 숨결처럼, 화면 너머로 스며드는 무형의 감촉이라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작품은 글로벌 소비를 지향한 로컬적 기획이라는 점에서 새로웠다. 글로벌스타와 로컬리티의 콜라보는 글로벌 OTT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해답일 수 있다. 어차피 그 과정을 통해 로컬리티는 앞으로 더욱 디테일 해질 것이며 풍부해질 일만 남았다. 폭싹은 바로 드라마에서의 제주 로컬리티의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로컬리티란 단지 시청률, 관광 유치나 대중소비를 위한 장식을 넘어선다. 지역민에겐 자신을 대리 표현하는 얼굴이며, 외부인에겐 그 지역을 이해하는 하나의 동아줄이고 미래 공동체를 위한 지역문화적 전제이기 때문이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제주 방언은 웃음을 위한 장치로 ‘적당히’ 쓰였고, 균형은 유지했지만, 그 언어에 담긴 제주인의 생활과 정서가 나름 반영되었는지는 의문이다. 바닷가와 마을의 색채는 현실과는 다른 관광적 시선으로 채색되어 있었고, 마을 공동체보다 특이한 장소와 자연 풍경에 집중된 느낌이 강했다. 그것이 과연 진정한 제주 로컬리티의 형상일까는 차후에 천천히 도드라질 것이다.
내가 꿈꾸는 진정한 로컬리티란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 언어, 몸짓, 생존 방식에서 비롯된다. 이는 연기자가 흉내 내기 어렵고, 기술로 대체 불가능한 고유의 무늬 같은 것이다. 그런 삶의 흔적은 개인서사와 더불어 공동체적 서사를 통해 건져 내는 것이 효율적이다. 공동체 서사란 캐릭터 중심의 대중드라마에선 실현되기 어렵다.
해녀집단은 오랜 공동 노동의 전통 위에 있다. 드라마에서는 그런 해녀공동체의 지속적인 연대를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라 배경으로 깔고 있다
나는 로컬리티가 공동체적 연결의 힘에서 비롯되고 완결된다고 믿는다. 드라마 한 편을 보고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을 통해 주민들이 함께 창작하고 토론하며 연결성을 만들어가며 새로운 미래의 공동체의 토대를 만들어 내는 일이 더욱 이 시점에선 중요하다. 마을 영화는 영화인과 주민이 수평적으로 협력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존재한다. 그것이 지역민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진정한 로컬리티를 복원? 축적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나는 오래전 제주 4.3 최대 피해지였던 북촌리 마을의 바다와 함께 살아온 이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때로는 울며 살아가는 그 풍경은 그 자체로 드라마였다.
상업 영화의 그늘은 바로 직접적으로 그들을 피해자로 만든다.
터키의 한 마을에서는 당시 터키지역의 스타들이 그들의 마을로 와서 찍은 최초의 농촌영화가 탄생한 마을이 있다. 그 뒤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이름이 당시 출연한 스타들의 이름을 따서 지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같으면 아이들의 이름이 신성일, 엄앵란 허장강 같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 마을에서 국제영화제가 열리는데 마을을 테마로 한 국제유일의 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와의 교류를 제안하면서 방문을 초대받았다. )하지만 그 터키의 마을은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대중상업영화의 깊은 그늘이기도 하다. 자신만의 이름을 가지지 못한 또 다른 대중상업영화의 연속극이 이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지역의 이름들, 얼굴들만의 지역의 감성이 살아 숨 쉬는 로컬 콘텐츠가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 글로벌 플랫폼과 AI 시대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로컬리티의 흔적을 붙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과거를 글로벌의 입맛에 맞게 요리해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내용을 담보하는 방식이어야 미래영화의 자격을 얻을 것이다 .
그게 AI시대 예술의 내용이고 형태다. 그런 전환의 실천이자 실험이 '폭싹'은 감당할 수 없다. 스타, 글로벌 자본이 아닌 지역민들의 협력의 힘으로 소비가 아닌 연결의 감각으로 , 그게 바로 우리가 지켜야 할 로컬리티 드라마의 핵심이자 본질이라 생각한다.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지역의 언어,문화 이야기의 고유성을 지키고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로컬리티의 핵심은 그 땅의 사람이다. 그리고 육지의 거시사가 아니라 지역의 미시사와 결합한 로컬드라마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미진한 그 무엇을 느끼고 보태어야 할 게 무엇일까 고민한다면 다양한 로컬리티에 대한 갈망이기도 할 것이다. 스타와 글로벌 자본이 우리 삶의 밑변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구체성을 때로는 왜곡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삶의 고유한 무늬까지는 결국 온전히 지워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