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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카이거의 사회주의예술과 마을영화

by 신지승

첸 카이거의 영화 『황토지』 속 흐릿한 지평선과 황토의 아지랑이는 단지 자연을 묘사한 배경이 아니라, 당대 중국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의 방향성을 은유하는 장치였다. 광활한 대륙 위에 선명한 선은 없다. 그 선들은 권력, 계급, 민족, 그리고 예술의 경계를 아지랑이처럼 흩트리며, 결국 모든 것을 하나의 '인상'으로 통합한다. 그러나 그 인상은 어디까지나 국가가 설정한 시선이며, 첸 카이거가 이후에 주도한 소수민족 ‘인상 프로젝트’에서 그것은 분명해진다. 웃음과 눈빛, 사람의 결들이 사라지고, 대륙의 형상이 '동원'되고 '연출'만 남는다. 첸카이거는 결국 소수민족들의 전통 자산을 바탕으로 사회주의 예술의 방점을 찍어냈다.하지만 그 개개인의 얼굴 ,웃음과 눈빛을 거세시키고 대륙의 동원예술로 시작해서 국가권력과 자본이 일체화된 국가로컬예술로 만들어 냈다.이는 곧 사회주의 동원문화를 완성시켰지만, 토종로컬영화와 달리 삶이 아니라 기획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이 시대, 우리가 마주한 '로컬'이라는 구호는 과연 누구의 시선으로 작성되어야 하는 것인가?

오늘날 한국의 토종로컬영화 또한 그런 질문 앞에 서 있다. 원래 로컬은 중앙의 대안어로서 존재했어야 했다. 중앙의 문화 카르텔과 자본의 일방적 흐름을 끊어내는 또 다른 공간이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로컬'이라는 단어는 얄팍한 공공예산과 청년 유입 사업, 관광 슬로건의 무기로 다시 중앙에 포섭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로컬'은 오히려 인류학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거나, 착취 가능한 저비용 콘텐츠의 생산지로 전락한다.


필리핀계, 조선족,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아이들이 동네 골목골목에 살아가고 있음에도, 로컬을 기획하는 자들은 여전히 심청이, 효녀, 감성, 자연, 협동 같은 1930년대 농촌 계몽주의 키워드에 사로잡혀 있다.

첸 카이거의 인상 프로젝트가 결국 중앙 권력의 대리인이 되어 소수민족의 예술을 유산처럼 연출한 것처럼, 한국의 로컬 프로젝트 또한 점점 ‘연출된 로컬’의 수순을 따르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토종은 ‘기획된 전통’이고, 이들이 말하는 주민은 ‘지원사업’의 대상으로 대체되고 있다. 심지어 토종로컬영화마저도, 때로는 진짜 주민들의 숨결이 아닌, 토속성이라는 낡은 프레임 안에 가둬진 '지역 브랜드 콘텐츠'로 소비되려 한다. 그러나 진짜 토종로컬영화는 그렇게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그것은 하방처럼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과정'에서 우러난다. 심청이가 인당수를 향해 던져진 것이 아니라, 심청이 스스로 물을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심연은 의미를 갖는다.

오늘의 토종로컬영화는 이제 사업이 아니라 삶의 무늬가 되어야 하며, 프로젝트가 아니라 관계의 연결이 되어야 한다. 글로벌 자본이 ‘로컬’을 상품화하는 지금, 진짜 토종로컬은 상품이 아니라 이야기이며, 지원사업보고서가 아니라 기억의 파편을 연결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예술가들이 다시 ‘플라뇌르’로 돌아가야 한다. 동네 골목을 걷고, 주민과 눈을 맞추고, 그 땀 냄새를 자신의 감각에 담아내는 창작이어야 한다. 첸 카이거가 황토지에서 보였던 아지랑이는, 어쩌면 단지 국가적 구상으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경계 없는 감각’을 암시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한국의 토종로컬영화는 이제 그 ‘흐릿한 선’을 지키는 쪽이어야 한다.

그 흐릿한 선이야말로, 우리가 아직 기획되지 않은 삶을, 기획되지 않은 예술로 지켜낼 수 있는 최후의 지평선이다.

이런 토종로컬영화의 미래는 단지 영화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로컬의 감각을 되찾고, 타인의 삶과 나의 존재가 얽히는 지점에서 다시 예술과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로컬은 한국의 변방이 아니라 글로벌속의 한국이다 .중국의 하방이란 단어가 단지 과거의 국가계획이 아니라, 예술가 개인에게 내려앉은 세계관의 전환이라면, 지금 우리의 하방은 ‘허무한 자본중심의 영화을 포기하는 용기’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아직 누구도 연출하지 않은, 진짜 가장 낮은 곳에서 해방영화가 시작될 수 있다.

토종로컬영화의 중요성은 현재 OTT, 틱톡, 유튜브 릴스 등의 숏폼 콘텐츠가 지배하는 지금의 환경에서

매우 시급한 의미를 가진다. 토종로컬영화’는 , 단순한 지역 배경이나 주민 참여를 넘어선 극영화프로젝트이며 , 공동체의 감각과 관계망 속에서 ‘살아내는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리얼리즘영화의 로컬적이면서 글로벌적인 실천이다


1. 고유한 문화와 서사의 보존


OTT와 숏폼 콘텐츠 플랫폼은 전 세계적인 문화 교류를 촉진하면서도, 자칫하면 전통적이고 지역 고유의 문화를 단순화하거나 희석할 위험이 있다. 토종로컬영화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특정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담아내며, 지역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이 영화들은 짧고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와는 달리, 지역의 문화적 깊이를 탐구하고, 그 이야기를 장시간에 걸쳐 풀어내는 매체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2. 깊이 있는 서사와 감정 전달


숏폼 콘텐츠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빠르게 소비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콘텐츠는 깊이 있는 서사와 감정선을 충분히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토종로컬영화는 지역의 고유한 삶과 문화를 반영한 서사를 통해 깊이 있는 감정을 전달한다. 이는 관객이 특정 지역의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돕는다.


3. 지역 커뮤니티의 강화


숏폼 콘텐츠는 주로 개인적인 표현이나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아, 지역 커뮤니티의 연결보다는 개인화된 경험을 중시한다. 반면, 토종로컬영화는 지역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지역 사회의 유대감을 증진시킨다. 이러한 영화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와 이야기가 가치 있고 중요한 것임을 상기시키며, 지역 사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4. 문화적 다양성의 보존


숏폼 콘텐츠 플랫폼들은 대개 글로벌하게 동일한 포맷을 공유하며, 특정 문화권에서 탄생한 트렌드가 빠르게 전 세계로 확산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칫 소수 문화나 지역적 특성이 묻혀버릴 수 있다. 토종로컬영화는 이러한 글로벌 동질화의 흐름 속에서 각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을 보존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하고, 다채로운 글로벌 문화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5. 글로벌화와 로컬화의 균형


OTT와 숏폼 콘텐츠는 전 세계의 문화를 빠르게 접하고 공유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만, 토종로컬영화는 이와 동시에 로컬화의 가치를 상기시킨다. 토종로컬영화는 지역의 이야기를 글로벌한 맥락 속에서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매체다. 이러한 영화들은 글로벌 관객에게도 호소력을 가지며,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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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개념과 용어 (챗GPT)

첸카이거(陈凯歌, Chen Kaige)의 「인상(印象) 프로젝트」는 중국의 거장 감독들이 참여한 대형 야외 실경 공연 시리즈입니다. 대표적으로 **「인상·유산」(印象·刘三姐)**이 잘 알려져 있으며, 이 프로젝트는 장예모(张艺谋), **왕차오강(王潮歌)**과 함께 공동 연출한 작품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대자연(강, 산, 호수 등)을 무대 삼은 지역의 전통 문화, 민속, 자연 경관을 융합한 장대한 스펙터클로 수백~수천 명 규모의 관광객을 수용하는 관광 + 예술 복합 콘텐츠

“플라뇌르(Flâneur)”는 프랑스어로, 원래는 ‘거니는 사람’, **‘산책자’**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문학과 철학, 특히 19세기 프랑스 문학에서 이 단어는 단순한 산책자 이상의 개념을 지닙니다. 이 단어를 이론화한 인물 중 대표적인 사람이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입니다.

플라뇌르- 도시를 천천히 거닐며 삶의 단면을 관찰하는 산책자다.
군중 속에서 익명성을 유지하며 사회와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도시를 하나의 텍스트처럼 읽으며, 일상 속의 낯섦을 포착한다.
예술가적 감수성을 지닌 관찰자로서, 현실의 풍경을 해석하고 재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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