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스위스 알프스 산을 찾았다.
유럽의 생태환경다큐멘타리 촬영차 떠난 여정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몇 달 뒤, 스위스로부터 커다란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두껍고 단단한 앨범이었다.
그 안에는 소중하게 말린 에델바이스 몇 송이가 끼워져 있었고,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들도 담겨 있었다.
그 앨범은 알프스에서 만난 어느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내주신 선물이었고,
예상치 못한 그 마음 앞에 나는, 스위스와 한국 사이의 먼 거리만큼이나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에델바이스를 정성껏 말려 앨범에 넣고,
우리가 함께 웃던 순간을 손수 한 장 한 장 엮어 보내주었던 것이다.
알프스산 트레킹 중에 우연히 만나,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전부였건만,
그 짧은 인연이 이렇게 따뜻한 선물로 이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에도, 그 선물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바쁜 일상과 수많은 다른 인연 속에서,
그 소중한 기억은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그러다 어느 날, 2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그 추억이 어떤 특별한 계기없이 불현듯 살아났다.
아쉽게도, 그 귀한 앨범은 집이 불타면서 사라졌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당시의 사진들도, 함께 사라졌다.
혹시나 같이 갔던 교수나 연구원들에게 연락해볼까 싶지만,
너무 오래전 인연이라 닿을 길이 없다.
게다가, 기억을 더듬어도 확실치 않다.
동행했던 이들은 아마 그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트레킹이 스위스의 어느 지역으로 가서, 어느 쪽 으로 올랐는지도 추적할 수 없다.
그저 흐릿한 기억 속에 남은 것은 알프스 산 어딘가에 찾아온 사람들이 하나씩 올려 만든 돌탑,
무엇보다 선연한 건 알프스 산의 잔설과 그림자, 햇빛이 만든 예수의 얼굴 그리고 그 놀라운 자연의 그림을 보고 환호하던 사람들.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선명한 예수의 그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굽이진 산길을 질주하던 바이커들의 모습이다.
그곳이 어느 알프스 산촌마을일까?
그 기억을 따라 다시 그 알프스 마을을 찾아가고 싶다.
한산한 산간 마을을 내려와, 작은 시가지 골목에서 중국음식집을 찾았다.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 중국인 주방장은 골목까지 나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가 골목에 몸의 반을 숨기고 흔들던 손과 얼굴을 보고 나는 덩달아 아쉬움과 인간적인 정을 느꼈었다.
낯선 땅에서 만난 동양인에 대한 반가움이 그토록 간절했을까? 동행자들도 당시에 의아해했다.
우리는 살면서, 혹은 여행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언제 이런 저런 감정을 나누고 추억을 만들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언젠가 그들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싶지만 영원히 그런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바쁘게 살다 보니, 뒤돌아볼 틈도 없이 그때 숨겨 놓았던 추억 하나가 아직도 내 안에서 선명히 빛난다.
거의 3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견디고 불쑥 꺼내어지는 추억이라니. 돈으로도, 인공지능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임에 감사함과 감동을 스스로 느낀다.
그날 만난 할아버지는 왜 우리에게 그런 귀한 선물을 남겼을까? 여전히 궁금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느껴지는 게 있다.
유럽을 다녀온 뒤에 나는 경기도 양평의 산촌 마을로 들어갔다. 용문산 첫 동네 연수리에서 나의 시골생활이 시작되었다. 만나고 보는 것이 나의 미래가 되는 경험은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에서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