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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변방의 역사를 만들다.

by 신지승


진시황은 개별의 땅을 권력의 상상력으로 꿰어 하나의 신화로 봉합했고,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치적 상상을 처음으로 만들어 한국의 정치권력자들에게는 상대적 변방의식을 가지게 한 결코 우리에게 반길 수 만은 없는 존재다.

어쩌면 그는, 실권 없는 13살의 소년 왕으로서 황금 수레 안에서 꿈꾸던 유년의 환상을 잊지 못해, 20살 나이에 대륙 전체를 거대한 모래놀이터처럼 밀어붙이며 자신의 상처를 감춘 하나의 제국을 쌓아 올린 것은 아니었을까.

진시황, 그는 단지 중국 최초의 통일 황제로 미화해 가르쳐서는 안 되는 , 신선을 찾아 헤매는 집요하고 외로운 방랑자였다. 중국이라는 틀을 세운 강력한 통치자였지만, 그의 삶을 이끈 동력은 정치적 명예나 실용적 목표뿐 아니라 ‘개인의 죽음을 피하려는’ 집착, 곧 불멸에 대한 강박까지 이어진다.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을 청동마차에 싣고 다섯 차례나 광활한 대륙을 매회 1년간 순행하며, 끝없이 ‘신선이 사는 불멸의 삶’을 꿈꾸며 헤맸다. 우리가 기억하는 병마용과 거대한 무덤, 수은으로 만든 지하 강과 바다, 불 꺼지지 않는 인어기름의 미니어처같은 220년전의 진시황릉의 병마용갱은 단지 황제의 권력 과시와 더불어, 죽음이라는 불가피한 끝을 어떻게든 피하고자 했던 어린 시절 트라우마의 결정체같다. 진시황은 일찍이 어머니의 부정(不貞)과 신분적 콤플렉스를 경험하며 세상은 오염되어 있다는 의식을 내면화했고, 이는 곧 자신의 몸과 제국을 ‘정결한 영역’으로 고립시키고자 하는 강박으로 이어졌다. 불사의 약을 찾아려는 그의 행보는 단순한 정복이 아니라 구원의 여정까지를 포함한 투쟁이였다. 그는 신선을 찾기 위해 죄인과 어린아이, 노비들을 배에 실어 떠나보냈고, 베트남을 넘나드는 정벌을 통해 신비한 약초와 초월의 비밀을 구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5차 순행의 청동마차 안에서 겨우 49살로 객사했다. 죽음을 두려워 했지만 결국 죽음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겨우 20살 나이에서 시작한 그가 남긴 중국은 강력했지만 지속되지 못했고, 불멸을 갈망했던 존재는 몇십 년을 넘기지 못한 채 흙으로 사라졌다. 진시황의 여행은 지배의 여정뿐 아니라, 존재의 허약함을 감추려는 방황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의 철제 병기의 우위나 강력한 제도 개혁이 아니라, 그가 지배의 화려한 외피 아래서 감추고자 했던 인간적인 공포와 허무이기도 하다. 불멸의 신선을 찾아 중국을 대장정처럼 여행한 그로 인해 옆 집 살던 우리는 그 땅의 크기만큼 위축되었다. 아니다. 어쩌면 사대 권력자와 당대 지식인들이 만든 의식이기도 했다. 진시황의 대륙을 꿰맨 권력의 바늘은, 스스로를 변방이라 불러야 하는 우리 역사의 시작을 알렸고 , 이후 주눅 든 운명을 달고 살아야 했다.그러니 진시황과 만리장성을 이야기할 때 스펙터클의 장엄함에 도취되기보다는, 그 벽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억압과 침묵의 시간을 읽도록 해야 하며, 제국의 위광 뒤편에서 작아진 이들의 목소리를 끝내 놓치지 말도록 해야 한다. 강한 자의 힘이 약한 자의 운명을 만든다. 그렇기에 약한 자는 강한 자가 만든 질서의 틈을 깨닫고, 새로운 감정, 시선 ,해석 , 예술, 공동체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의 총체적이고 사실적인 해독(解讀)이다 .

만리장성과 청동 수레 위의 진시황 배경 – 만리장성 황혼이 깔린 하늘 아래, 끝없이 이어지는 만리장성이 구불구불한 용처럼 능선을 따라 뻗어 있다. 안개가 성벽 위로 부드럽게 흐르고, 곳곳에 횃불이 타오른다. 천둥 같은 북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수천 병사들이 조용히 대기 중이다. 전경 – 청동 수레 중앙에는 거대한 청동으로 만든 전차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전차는 동물 문양과 전설 속 신수(神獸)가 (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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