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과연 누구의 역사인가? 우리가 배우고 마주치는 '역사'는 언제나 가진자들의 서사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철학 모두가 ‘누가 무엇을 남겼는가’라는 물음에 매몰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남김은 과연 누구에 의해 가능했는가? 그것은 남길 수 있었던 자들의 이야기, 다시 말해 1%도 안 되는 지배층, 엘리뜨들의 족적일 뿐이다.
챗gpt에 따르면, 지금까지 지구 위에 살았던 전체 인류는 약 1100억 명. 현재 살아 있는 인류는 약 80억 명, 즉 인류 전체의 약 7%에 불과하다. 그리고 오늘날 실질적인 권력자라 불릴 수 있는 인구는 1억 명도 채 되지 않는다. 정치 엘리트, 대자본가, 군사·안보 권력자, 글로벌 기업 경영진 등 이들이 모두 합쳐도 현재 인류의 1~2%에 불과하다. 한국 전체 인구 약 5,000만 명 중 실질 권력과 영향력을 갖춘 엘리트 계층은 50만~150만 명 내외 즉, 전체 인구의 약 1~3%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선택'과 '결정'을 인류 전체의 역사로 배워왔다. 삼국 시대의 고구려와 백제는 왕가의 혈통이 같았고, 신라는 초기 여섯 성씨가 권력 연맹을 이루며 등장했다. 고려 왕 씨, 조선 이 씨 왕조, 모두가 특정 가문과 혈통에 기반한 권력의 재편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구조는 단절되지 않았다. 오히려 현대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더 은밀하게, 더 정교하게 재생산되고 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국민이 주권을 가진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 ‘국민’이 추상적이고 유령과 같은
정작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은 여전히 선택된 소수의 엘리트들이다.
정치권력은 정당과 로비, 언론, 자본, 그리고 유산 계급에 의해 통제되며, 문화와 예술은 자금과 네트워크를 소유한 계층에 의해 생산된다. 이른바 ‘공동의 문화유산’은 사실상 권력과 자본의 산물이며, 그것을 모두의 것으로 간주해야 할 당위성조차 비판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문화생산력이 없는 계층’은 문화를 남기지 못했다기보다 남길 수 없도록 설계된 구조 속에 있었다. 이들은 기록되지 않았고, 서사로 구성되지 않았으며, 상징으로만 소비되었다. 그게 나에겐 진실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지만, 여전히 1%의 시간을 99%가 살아내는 구조 속에 있다. 대중은 특정한 역사적 감동에 의도적으로 노출되며, 하나의 사건에 감정적으로 연루되기를 강요받는다. 가령, 어느 시대든 저항의 영웅, 독재자의 몰락, 민주화의 감격은 반복적으로 호출된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 당시에 선조의 아들, 임해군의 아들딸이 일본에 끌려간 이야기는 누구의 서사인가? 정작 이들을 감시하고 기록하고, 배우고, 평가하는 것은 대중의 몫이 아니다. 학자와 지배계급만의 가족사이자, 정치적 정당성의 재료일 뿐이다. 대중은 늘 ‘참여하라’는 명분 아래 어느 편에 서야 한다는 감동과 환호에 동원된다. 그러나 우리가 동원되는 것은 감정이지 권리가 아니며, 정치적 명분은 보상의 환상 속에서 자율성을 소거시킨다.
‘민주주의는 진화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근본적으로 ‘엘리트 중심 질서는 해체되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동일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이 질문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선거는 지역, 계층 투표가 되었고, 정책은 로비의 결과이며, 정치담론은 언론 소유자의 서사다. 우리는 정치적 주체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연출된 환상 속 참여자에 가깝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모두가 정치적 독자적 개별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의 구조는 ‘누가 무엇을 판단할 수 있는지’를 이미 교육, 언어, 정보 접근성, 네트워크를 통해 차등화하고 있다. 모두에게 열린 듯 보이지만, 사실은 오직 준비된 자만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질서, 그것이 오늘날의 민주주의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단 말이냐(王侯將相 寧有種乎)?"는 진나라 진시황시대의 진승과 오광이 했던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 질문이 이미 권력자들의 게임 규칙 안에서만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씨는 있다. 그것은 더 이상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자산, 교육, 언어, 상징 자본, 문화 자본으로 대체된 씨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세습되고 있다. 우리는 아주 조금 진화한 왕조 속에서 살고 있다. 더 정교하고, 더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더 배타적인 질서 안에 있다.
역사는 혈통과 엘리트 중심의 질서로부터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다시 쓰여야 한다. 더 이상 누구의 업적과 희생을 통해 감동하라는 메시지에 길들여지기보다, 누구의 이야기가 빠졌는지를 묻고, 그 자리를 의도적으로 비워둔 서사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1%의 시간을 배워왔고, 1%의 시선으로 감동받았다. 이제는 말하지 못한 자들의 시간, 남기지 못한 자들의 문화, 그리고 참여하지 않은 자들의 거리감 속에서, 비로소 새로운 역사적 사유가 출발할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첫걸음이다. 하지만 그것은 요원할 뿐이다. 정치적 허무주의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정치적 거리 두기를 통해서 역사의 실체를 알아야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 (프랑스 인권 선언 제1조 )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也)-동학, 천하의 백성이 곧 주인이다 등등이 이 시대에 얼마나 허무하고 추상적인 슬로건인지 알아간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세계 각국의 자수성가 비율 카스트제도로 인해 자수성가 비율이 33% 프랑스 63 % 중국97% 일본 73% 필리핀 53 타이완 53 태국 40 호주 70 영국 80 한국은 23%이다.https://youtube.com/shorts/aKkxLa0PknE?si=JAmhvFKKD78rRUw1
인구 100만 명당 자수성가 억만장자 수를 기준으로 한 국가별 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챗gpt)
국가 인구 100만 명당 자수성가 억만장자 수
홍콩2.831
이스라엘1.788
미국1.338
스위스1.229
싱가포르1.053
노르웨이1.039
아일랜드0.902
대만0.817
캐나다0.684
호주0.639
대한민국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