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와 알렉산더
알렉산더의 생애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뜬금없지만 사도세자가 떠오른다. 둘은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 살았지만, 그들의 20대는 비슷한 결핍을 품고 있었다. 바로, 압도적인 아버지의 존재와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그 공백을 주술과 상상으로 메우려 했던 젊은 자아의 혼란이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아들이었다. 조선의 가장 냉혹한 정치 기술자 중 한 명이자, 이상과 통치의 균형을 필사적으로 유지했던 왕. 그 왕의 아들로 태어난 사도는 일찍이 부친의 기대와 두려움 속에서 분열되었다. 그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신경질과 광기 혹은 주술로 스스로를 버텨간다. 강한 부친을 넘어서려는 의지도, 그 앞에서 무너지는 자의 공포도, 모두 그에게는 '주술'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알렉산더도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도 단지 왕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자신과 아들이 제우스의 후손이라 믿도록 만들었다. 불안한 혈통의식, 마케도니아 왕족들 사이에서의 위태로운 정체성은, 신화적 계보를 통해서만 위로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암살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렉산더 대왕’이 되었다. 운좋게 타이밍이 절묘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정당성을 매번 확인하기 시작했다. 전쟁 전날 트로이로 가서 아킬레우스동상을 만났고, 무모하게도 이집트의 사막을 건넜다. 다 진짜 자신이 제우스의 아들인지 확인받고 싶은 심리 같았다.
페르시아와의 마지막 전쟁 전날, 하늘엔 월식이 일었다. 사람들은 떨었고, 그는 조용히 준비했다. 가우가멜라 전투 이후, 그는 페르시아의 왕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달리 다리우스왕처럼 아버지가 딸과 가족을 데리고 전쟁터에 다니는 페르시아의 문화가 놀랍고 이상하고 한편으론 부러웠을 것이다.
아마 햄릿적인 성격이 있었기에 그리스문화 우월주의에 빠지지 않고 이집트의 문화에 동화되고 페르시아 언어를 포로 된 페르시아 여왕에게 배웠을 것이다. 그 인정욕구는 그리스를 벗어나 이곳저곳에서 인정받으려면 그 땅의 문화를 배워야 했을 것이다. 아마 물론 역지사지적 호기심은 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인문학적 교육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는 끝내 멈추지 못했고, 12년 원정 끝에 바빌론에서 열병에 시달리다 12일 만에 죽었다. 32세, 역사에 새로운 세계시민주의라는 업적을 이루었지만 어차피 요절인 것이다.
젊은 통치자에게 ‘주술’은 환상이 아니었다. 과도한 아버지를 대신해 자기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였다. 알렉산더에게는 제우스, 사도세자에게는 귀신과 광기,
사도는 뒤주에서 죽고, 알렉산더는 열병에 시달리며 객사했다. (불로초의 집착한 주술적 왕의 하나였던 진시황도 지방 순행 중 죽음을 맞았다.)
수년간의 원정에 지친 병사들이 " 당신에게는 (정복과 전쟁이) 어울리지만 우리는 지치고 기력이 쇠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얻었지만 우리는 가진 게 없다"라고 했다.
주술은 권력과 가까이 있었고 힘없는 병사들은 주술의 희생자였다. 주술은 권력의 공백을 채우는 언어였다. 알렉산더는 전쟁과 정복의 대의명분을 '신의 자식'이라는 서사로 덧칠했고, 사도세자는 귀신의 소리와 광기의 발작으로 아버지에게서 도피와 위안을 얻으려 했다. 그러나 주술은 위로부터의 정복과 전쟁의 에너지였고 동력이었지만 , 아래에겐 고통이었다. 그때 죽어간 이들에게는 죽음과 지옥의 이데올로기였다. 힘없는 이들이야 주술을 발휘할 여지가 크게 없지만 개인의 주술적 의존성은 곳곳에서 누군가의 에너지와 액운을 막고 있다고 믿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사도세자와 알렉산더의 후예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강력한 질서, 또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기준 앞에서, 나라는 존재의 정당성을 증명하고 싶은 막연한 열망을 품고 산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은밀한 주술에 의존하고 꺼낸다. 미신이나 별자리 운세, 손에 익은 루틴, 누군가가 준 부적 한 장, 혹은 힘겨울 때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마음속 기도 같은 것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습관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강력함에게 건네는 조용한 투쟁이기도 하다.
주술은 영웅과 강자의 도구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약자의 에너지이기도 하다. 몇명 안되는 가족들 굶기지 않기만을 일생의 소원으로 삼았던 죽어 가죽도 남기지 못하는 사람들과 달리 권력자들은 죽어서 권력과 이름을 남기려 기도했다 .우리 삶이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을 때, 그것은 오히려 더 강력해진다. 위대한 왕의 전쟁과 평범한 이의 일상 사이에서, 주술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고백이고 불가피한 동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억압적이고 강력함과의 관계에서 사도세자의 운명이 될지 알렉산더의 운명이 될지는 어떤 주술도 알지 못할 것이다.
강릉 록유사 성인스님과 8개국 영화감독과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