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예정
"동동아 여기 부산이 좋냐? 강원도 인제가 좋냐?"
여기서는 목줄로 묶이지 않지만 1층 2층 오가며 온 사방이 아파트와 건물로 막혀 강원도에서보다 더 답답할 것 같다. 강원도에서야 목줄로 묶여도 지나가는 사람들 보면 짖기라도 마음껏 했을 텐데 여기서는 짖기만 하면 달려와 짖지 말라고 하니 도대체 네가 살아 있다는 흔적은 더 찾기 힘들어.
동동이는 복실의 유일한 아들이다.
복실이와 처음 함께한 건 2009년이었다. 그때부터 그의 마지막까지, 복실이는 한결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한 생명과 살아간다는 기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나를 성숙시켰고, 복실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남겼다. 그와 함께한 시간은 내 인생의 가장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복실이를 위해 나는 매일 시간을 냈다. 눈을 맞추고, 욕구를 읽고, 정해진 루틴을 지켰다. 하루 세 번의 산책, 이웃의 민원. 양평 용문산을 헤매며 올무에 묶인 복실이를 찾아다닌 적도 있었고, 집이 불탔을 때 주차장에서 트럭과 함께 했다. 강릉에서 복실이를 잃어버리고 한 달간 찾아 헤맬 때는 매일 밤이 악몽이었다. 그는 내 삶의 한 부분이었고, 운명이었다.
말 없는 짐승의 침묵은 책 보다, 영화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복실이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외아들 동동이가 내 곁에 남았다. 어느덧 3년 차다. 동동이가 태어나고 1년 뒤에 강원도에서 부산으로 두 아이 학교 때문에 전학을 했기에 그때 동동이와 헤어졌다.
그런데 한 달 전,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살던 동동이는 부산의 오래된 이층 집으로 이주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그는 서서히 적응해 가고, 나 또한 점점 그 반복 속에서 벌써 지쳐간다.
도시의 단독주택에서,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 생명체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어렵다.
그가 문 앞에 웅크려 있을 때, 나는 문을 열지 못한다. 따뜻한 보일러 공기가 그에게 해로울까 걱정된다. 인간 중심으로 설계된 집에서 동물은 늘 가장 구석에 머문다. 동동이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나를 바라본다. 아무 말 없이. 그래도 동동이가 내게 주는 감동은 늘 나를 웃게 만든다.
복실이를 통해 나는 포기하지 않는 사랑, 참을성을 배웠다. 아무리 비가 와도 집 안에서는 절대 실수를 하지 않던 믿기 어려운 도덕성도. 공자의 책에서는 배우지 못한 덕목을, 나는 그에게서 배웠다. 그는 내 삶의 스승이었다. 복실이를 키우며 생긴 관찰력, 순간적인 대응 능력.
그러나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들의 외로움을 내가 완전히 채워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가 놀고 싶어 할 때, 나는 그 옆에 없을 수도 있다. 산책을 원할 때, 나는 너무 바쁠 수도 있다. 하루를 유지하기도 벅찬 와중에, 사랑을 나눌 시간은 더욱 부족하다. 동동이에게도 그런 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동동이는 결국 눈치챌 것이다. 자신이 반가워하는 만큼, 생활과 일에 지친 내가 반가워하지 않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을. 그 실망이 반복되면, 동동이는 본능을 더듬기 시작할 것이다. 기다림, 체념, 혼자만의 하울링. 사람의 언어가 아닌, 짐승의 언어로 점점 돌아가는 동동이를 보면, 애틋하고 미안하다.
사춘기 아이처럼, 동동이는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도시란 공간도 나도 그의 욕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민원, 먼 산책로, 목줄. 자유로운 생명에게 이곳은 불편하기만 할 것이고 나에겐 그 불편함과 비례해 스트레스가 쌓인다.
누군가의 외로움을 끝까지 바라봐준다는 건, 참기 어려운 일이다.
밤중 동동이의 예민한 짖음은 나를 긴장하게 만들고, 그 긴장은 결국 내 불면과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사실 수십 년 동안 나는 어중간한 외출을 하지 않았다. 여행도, 가족 모임도, 친구의 결혼식도 대부분 포기했다. 웬만해선 나가려는 의지도 꺼내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점점 ‘밖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게 직업적인 위축으로도 연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과의 만남은 어떤 방식으로든 아쉬움과 후회 업을 남기기에 아예 사람의 틈에 끼이지 않으면 그런 류의 업에서 시달릴 필요가 없기에 좋다 ) 국제영화제도 아이들 방학에 맞추어 한 달간 할 수 있었던 것도 키우는 개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동동이로 인해 올해는 방방곡곡을 다니기를 포기하고 부산에서만 치르기로 계획을 잡을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 없는 집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은, 그의 외로움과 충돌하기 전에 모든 가능성을 닫아버리게 만든다. 나는 점점 그의 리듬이 아니라 나의 팍팍한 현실에 맞춰 살아가는 ‘훈련된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동동이를 키운다는 일은 집중의 분산과 고통이 먼저 떠오르게 되었다.
지금 내겐 사춘기 아이 둘이 있고, 두 분의 불편한 부모님을 돌봐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강원도에서 데려온 동동이까지 책임진다는 건, 피 할 수도 없지만 어떤 의미에선 ‘나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나는 이 일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데 이게 뭔가.
그러나 이 고통이 얼마나 큰지는 내 주위의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직접 개의 일거수일투족을 같이 해보지 않았기에 그런지, 민감함의 정도가 나에게 미치지 못해 그런지 모르겠다.
말 없는 그가, 팍팍한 문명에 훈련된 존재로 버티며 살아간다.
https://www.youtube.com/watch?v=ie9FOtZQS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