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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만난 광해군과 나폴레옹

역사와 문학의 이야기

by 신지승


역사와 문학 철학은 일종의 셀프주술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수많은 삶의 양태를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역사도 문학도 철학도 그 안에서 반복을 거듭할 뿐이라는 사실을. 인간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데이터와 상상의 축적 속에서 그저 즐기고 있을 뿐이다. 문명과 합리는 진보하지 못한 채, 우리는 여전히 이야기 안에서 맴돌고 있다.


‘섬’이라는 공간에 이른 두 인물을 바라본다. 한 사람은 조선의 광해군, 또 한 사람은 유럽의 황제 나폴레옹이다. 두 인물은 모두 삶의 정점에서 추락해, 섬이라는 고립의 공간에서 말년을 보내고 사라졌다.

광해군은 중립외교의 줄타기 끝에 숭명배금(崇明排金)을 외치던 집권당의 쿠데타로 강화도, 태안, 그리고 제주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그는 한때 시중을 들던 여종에게 ‘영감’이라 불리는 모욕을 받으며, 안방에서조차 쫓겨나기도 했다. 그 늙은 시종은 자기 능력으로는 꿈꿀 수 없는 광해군의 존재를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는 것에 아마 엄청난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 뒤 광해군과 여시종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공양주가 스님을 내치고 법당을 차지하는 것 같은 하극성이 계속 이어졌을까 ? 그렇게 광해는 제주에서 19년을 버텼다. 매번 들려오는 복위 소식을 기대하며, 혹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뎠을 것이다.


그의 말년의 삶은 비참했다. 강화에서 땅굴을 파고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한 외아들은 죽고, 부인은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결국 광해군은 귀양살이 19년, 제주 땅에 유배된 지 4년 만인 1641년(인조 19) 7월 1일 예순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뜨는데, 그는 “내가 죽으면 어머니(공빈 김씨) 무덤 발치에 묻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공빈 김씨는 선조의 후궁으로 임해군과 광해군을 낳고 광해군이 아직 어렸을 때 25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광해군의 生母다.)광해군은 늦게 얻은 딸 하나를 유배 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결국 그 딸은 아버지 광해군의 마지막 시신을 보았을 것이다 . 그 딸은 (소의 윤씨(昭儀 尹氏, 본명 윤영신) 1619년 음력 6월 23일에 태어났다. 광해군이 당시 44세의 늦은 나이에 얻은 늦둥이 딸이자 고명딸이었기에, 왕실의 큰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제주에서 현재 남양주까지의 광해군의 시신 운송의 상상은 1949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의 소설의 시작을 연상 시킨다. 어머니의 시신을 운송하기위해 64km 정도를 이동하는 여정의 이야기이니 아마 광해군은 제주에서 4-500km되는 3개월의 여정과는 비교가 안된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라는 소설은 꽤 흥미롭게 나에게 죽은 역사를 두고 벌어지는 다양한 태도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역사속의 인물은 이미 쓸모없는 인물이다 .단지 나와 살아있는 이들의 미래를 위해 사용되어져야 한다.


나는 이 제주에서의 광해군을 오랫동안 상상해왔다. 정치적으로는 이미 소멸된 존재였지만, 그는 과연 자신의 신념을 놓았을까? 왜 그는 집필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아마 그 어떤 집필작업을 하도록 용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나만의 상상력으로 그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언제쯤 만들어질 수 있을까? 반복의 시간 속에서, 나 역시 언젠가 그 ‘섬’으로 그냥 밀려날 것인가?


나폴레옹도 결국 섬에서 죽었다. 한때 유럽 대륙을 뒤흔들었던 황제는 엘바섬과 세인트헬레나섬에서, 더 이상 황제가 아닌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모욕 속에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는 그 속에서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자기합리화와 회고를 섞은 기록을 남기며, 우리 누구나처럼 .죽음과 명예 사이에서 자신을 붙들었다.


두 사람은 인생의 가장 뜨거운 마그마 같은 순간을 지나, 그 마그마가 식어 만든 섬, 고립과 침묵의 공간에서 삶을 마무리했다. 그들의 생은, 타오르고 식고 붕괴했다. 이 또한 모든 인간 존재의 구조적 운명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의 삶은 이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불타오르고, 결국은 어느 한 조각 섬에 도달한다.


재미있게도 나폴레옹은 섬 출신이다. 코르시카라는 지중해의 섬에서 태어난 한 아이가 대륙을 정복했다가 다시 섬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광해군은 무엇을 남겼는가. 그는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그의 생은 오직 타자의 시선에 의해, 그것도 공허하게만 전해진다. 나는 그 ‘침묵’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다. 한 인간이 어떤 아침을 맞았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견뎠는지. 문명과 합리, 역사와 제도 밖에서 그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간혹 나는 양로원이나 요양병원의 환자들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구술을 받아 짧은 자서전으로'라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삶의 기록을 남기지 못하는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


광해군은 실패한 왕이면서도, 끝까지 버틴 한 인간이었다. 이 버팀은 어쩌면 비극이 아니라,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얼굴일지 모른다.

섬은 인간이 도달하는 가장 내밀한 지점이다. 가장 고독한, 가장 실존적인 풍경이다.


역사 속에서는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처럼 용서와 관용의 환상이 가끔 등장하지만, 그것은 문학적 치장일 뿐이다. 현실은 훨씬 냉혹하며, 종종 구원 없는 반복이다. 섬으로 종착지를 삼지 않을 운명과 문명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바람도 소리도 없이 피곤하게 번복되는 지친 몸짓으로 되돌아가는 우리들의 삶. 밑도 끝도 없이 끓어오르는 욕망의 메아리. 해질녘에야 우리는 분노한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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