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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제비, 서사적 편견과 상상의 양극화

귀제비

by 신지승


최근 까마귀가 저공비행하며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서울 서초구에서 일어났다는 뉴스를 들었다.

뜬금없지만 귀제비가 떠올랐다 .공포와 혐오의 새. 그런데 귀제비는 한편으론 우리의 일상에 뿌리 박힌 중국 사대적 문화중의 하나다.

귀제비, 맹맥이라고 불리는 제비다.

귀제비(Delichon urbicum)는 흔히 명매기라고도 불리는 제비의 한 종류로, 반구형의 집을 짓는 습성이 있다. 일반 제비보다 크고, 비행 속도가 더욱 빠르며, 주로 다리 밑이나 절벽 등 다양한 곳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사람과의 친밀감은 다소 떨어진다. 귀제비는 둥지의 모양이 무덤을 닮았고, 제비와는 다른 이질적인 외모, 그리고 제비를 쫓아내고 둥지를 차지하는 습성 때문에 "귀신 붙은 제비"라는 뜻에서 '귀(鬼)제비'라 불리기도 한다.

명 멸망에 대한 사대주의적 문화의 오랜 잔재인지 시골에서는 귀제비를 진짜 귀신 보듯 하고 있다.

사람들이 재수 없다고 둥지를 다 부숴버려서 인가 근처에는 집을 덜 짓게 되었기 때문에 일반 제비 100마리라면 1-20마리 보일 정도다.

명말에 자금성에 대거 집을 지었는데 쫒으면 쫒을수록 더 많은 귀제비가 몰렸고, 결국 그로 인해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건국한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의 주인공 귀제비. 병자호란을 거친 인조 당시에도 여전히 백성,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명에 대한 충성과 청에 대한 적개심이 팽배했고 명은 은혜의 나라, 청은 오랑캐라는 인식이 있었다 .또한 조선 후기 실학자나 유학자들도 "명의 유풍을 따르자"는 사상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명나라의 시선에서는 악귀 같았는지 모르지만 청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행운조였다.

뭐 그렇다고 청에서 대접받은 것도 아닌 드라마틱한 제비다.


맹맥이 콧구멍처럼 생겼다는 속담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맹맥이가 찾아오는 집은 재수가 좋아서 부자가 된다'는 말도 있었다. 청의 입장에서 귀제비를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 같은 느낌이다. 여하튼 동서고금 역사해석의 양극화로 인해서나. 역사와 정치란 건 가장 고약한 이들의 가장 질 낮은 압축된 드라마 데이터이기에 일정거리를 두고 배워야 하는 것이다.


강원도 인제 마을극장 dmz에는 세 개의 귀제비집이 있다. 중국의 자금성같이 붉은 색의 집이라서 유전기억DNA가 발동된 것일까?

마을 사람들은 그 제비집을 재수없다고 없애버리라고 몇 번씩 이야기했지만

유교 숭명문화의 천대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해 온 희귀한 제비집에 나름 호기심도 들었고 귀제비에 대한 이야기를 프린터 해서 방에다 붙여놓았고 큰 발견이라도 한 듯 아이들에게도 억지로 앉혀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귀제비처럼 ‘강자에 의해 가공된 이야기’를 대중들이 소비하게 되고, 그로 인해 편견과 불길 또는 행운의 상징으로 덧칠된 존재들은 우리 일상 문화 속에서 너무 많다. 까마귀 검은 고양이, 뱀 등

개인적인 경험이나 관계를 통해 습득된 이해나 인상이 아니라 정치나 역사, 힘에 의해 스며든 의식에 대한 문제로 다시 이어진다.

한 마리 새가 그저 제 집을 지었을 뿐인데, 조선의 지식인들은 거기에 나라의 흥망과 하늘의 뜻을 덧칠했고, 민초들은 그것을 신념이나 종교처럼 섬기며 수백 년을 이어왔다. 그러나 귀제비는 멍청한 인간의 상징화를 조롱하듯 결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하늘을 맴돌고 있다.

역사, 자본, 권력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우리는 일상의 복잡하고 다양한 삶과 과학에서 더욱 드라마틱한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서사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지금의 이야기꾼들이 글로벌 자본의 감성 코드에 상상의 방향을 맞추는 경향은 마냥 건강하지 않다.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 관계 속에서 상상하는 창작문화는 지금의 콘텐츠 산업의 일방적 경향성, 토착 로컬 문화의 주변화, 플랫폼 권력의 집중화와 더불어 최소한 병렬적으로는 존재해야 한다.


글로벌 감성 서사를 주무기로 하는 국제 미디어 자본이 통제하는 환상의 세계에 ‘틈’을 낼 수 있는 것,
그것은 오직 창작자만이 감행할 수 있는 상상의 민란이다.

나는 귀제비라는, 천대와 행운 사이를 오간 한 마리의 새를 통해 명과 청, 그리고 오늘까지 이어지는 서사의 편견과 상상력의 양극화를 다루는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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