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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지방소멸,양극화에서의 문화민주주의

by 신지승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Culture)는 단순히 예술, 영화,공연, 전시 등의 보고 즐기는 행위만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이 시대와 어떤 지역, 젊은이 늙은이 아이들이 ‘어떤 것을 먹고 즐기고 어떤 이들이 만나 무엇을 이야기하며 또 어떤 것으로 갈등하고 어떤 태도로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는가 ’같은 풍속적이고 감각적·정서적 풍경이기도 할것이다 .

그리고 문화는 경제, 정치, 제도의 아래에서 ‘소비’되는 것과 더불어 , 그 바깥에서 ‘공유’되고 ‘행위’되는 것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이렇듯 문화라는 것은 세상 모두을 담고 있지만 세상,모두를 담고 있지 않을 수도 있는 그야말로 유령같은 개념이다 . 그렇지만 문화는 당파성을 가지기도 할것이고 또는 각기 다른 당파성을 연결할 공통분모를 재창조하는 유일한 언어가 될 수도 있다. 정치집회에서 야광봉을 흔드는 것을 한국의 정치문화라고 할 수도 있고 태극기를 흔드는 정치집회에서의 행위 또한 당대의 문화이기도 하다 . 골프를 치던 게임을 하던 문화는 문화다 .

정치가 분열을 강화한다면, 또 다른 문화는 서로를 다시 연결하는 의지의 문화를 어딘가에서 준비하는 문화의 탄생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 한국의 어떤 문화는 정치의 프로파간다나 정치의 종속물로 더 크게 역활하고 있기도 하다 . 한국의 문화콘텐츠에서도 정치 당파적 영향력이 존재하긴 하지만 대체로 k드라마들은 사회적 양극화와 재벌의 이중적 세대간 갈등 ,불평등한 교육등 탈정치적 소재로 우리 사회를 대변하고 있다

그럼 반문화적 인 것은 존재하는가 ? 문화는 선, 악, 참, 거짓이 아닌 실재 하는가 아닌가에 중점을 두는 개념이기에 가능하지 않는 개념이지만 문화라는 게 그 포용성이 강하기에 존재하는데 굳이 부정 할 수는 없다 .당연히 언어로 존재하려는 것도 모두 문화다 .그 하나가 봉건적이고 수직적인 폭력적 서열 문화라고 생각한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서열이나 위계가 존재하지 않을 수 없지만 폭력이라는게 문제이다 .

지금의 문화중에 폭력인 문화가 어찌 한둘인가 ? 본질적으로 1당 독재의 욕망을 가진 정치집단이야멀로

가장 폭력적이고 자본에 의하여 통치하려는 모든 의지체들이 반 문화적인 것일것이다.

흔히 문화소외 문화향유라는 말을 흔하다

지역 및 경제적 피라미드의 밑변의 사람들을 문화적 감수성과 접근성이 가장 낮은 사람들이라는 편견이 또한 반문화적 편견이다 .
문화정책가들이나 문화기획가들은 문화가 가야 할 진짜 대상이라고 하고 문화복지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교육, 언어, 인터넷, 공공 정보에 대한 접근이 매우 제한된 그들에게 문화소외라는 타이틀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는 또 사회적 고립 언어·문해력 부족, 제도권에서 배제된 경제적 빈층으로, 글로벌 시장, 기술, 교육, 문화 콘텐츠에 접근할 기회가 거의 없는 구조적 취약 계층으로 바라본다 ..과연 그럴까

게임을 하루종일 하는 청소년들이나 넷플릭스 영화를 빠짐없이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문화적인 사람들인가 ?

문화소외 계층 이라고 하지만 경우에 따라 수평적 공동체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수직적 공동체에 살고 있는 이들이 사실 가장 반문화적 폭력사회에 살고 있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드라마들도 많았다.

물론 문화콘텐츠에도 반문화적인 습관이 존재한다 .

돈 많은 사람들은 항상 수직적이고 돈 없는 농촌 사람들은 항상 자연 친화적이고 순수하며 공동체적인라는 양분화도 사실 실재하는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 반문화적인 태도이기는 하다 .


나는 문화소외적인 측면에서 그들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식, 돈 을 떠나 자연적 감성을 가진 이들에게 다가간 것이었다 .어쩌면 가진 게 없어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아는게 없어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지 않았는지 모른다. 대게 인간의 갈등은 가진 게 많다는 착각 ,자신이 정의의 편이라는 환상에서 비롯되고 가진게 없고 피해자라는 의식에서 외로워진다 .상대적으로 가지지 못한 이들은 그 집착이 상대적으로 약한 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이야 말로 예술관람객이 되지도 못한 것이 축복일 수 있었고 바로 주류 문화소비자의 위치를 뛰어 넘어 새로운 문화의 주체이자 창작자의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주류 지배적인 문화에의 접근, 소비력이 있다고 문화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또 문화예술적 접근에서 소외되었다고 문화적 잠재력을 가진 이들도 결코 아니다 .


노인, 청소년, 이주민, 장애인, 농민, 무연고자—그들은 문화의 객체가 아닌 공동창작의 주체로 호명되어야 한다고 주장 했다고 해서 그들이 아무런 과정없이 주체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정치가 논리와 이상을 앞세우는 이상 다른 정치적 조직과의 통합과 연결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문화는 정치를 앞서야 하고, 문화가 정치의 도구로 전락해서는 이익보다 손실이 매우 클 시대가 드디어 왔다 .대중창작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제 예술가 창작자는 엘리뜨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


뛰어난 문화란 ‘나의 이야기’가 가족 ,마을,세계 속에서 존중받고, 표현되고, 나눌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 중요한 건 주류상업 대중문화의 확장이 아니라 지역 내부에서 살아 숨 쉬는 ‘작은 이야기’의 발견과 공유일 것이다 .

문화강국이라는 환상

한류 드라마, K팝의 수출 성과로 문화강국이라 부르지만 이는 ‘미디어 제국의 연결을 통한 생산력이자 소비력’이지 문화의 내적 힘이 결토 아니다.
헐리우드의 미국도 그랬다. 생산력, 소비력은 있었지만 치유, 관계, 자각, 공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문화력이 결국 오늘의 미국의 정치 갈등을 만들어 낸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경계하여야 할 공허한 환각이 될 수 있다

노인·청소년 자살률, 지방소멸, 양극화

이것야말로 반문화적 현성이다.

이 문제들은 경제적 정치적 대응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
그 저변에는 ‘나는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의 부재, ‘존엄하게 살수 싶다'라는 자존감의 위협및 상실,
그런데 한국이 문화강국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가? 깊은 문화적 공백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 실천을 고민하고 있는가 ?

문화란, 각 지역 각 세대들 각 개인들이 존중받으며 살아갈 이유를 사회적으로 끊임 없이 주는 문화예술적 시도들이 이어져야한다 . 그런 공동적 가치를 가진 문화적 프로젝트들은 존재하고 또 있다면 어떤 것인가 ? 그러나 그 많은 결정들은 정치공간과 관료기관에서 비롯된다.

가족, 마을에서 회복하게 만드는 ,지속적인 정서와 감정의 이벤트가 이어져야 한다 .

삶의 밑변에서부터 피어나는 것이다. 자살률 1위라는 통계 뒤에 숨은 외로움과 침묵은 결국 문화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지방소멸도, 청년의 무기력도, 고령자의 상실감도, 정치와 경제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서와 감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감정의 이름이 바로 문화다. 우리가 왜 계속 문화민주주의를 이야기 해야하는지의 이유이기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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