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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 중심의 기록은, 권력·자본의 불균형으로 인해 ‘명예훼손’ 우려를 빌미로 무명의 목소리를 배제하기 쉽다.”
권력·자본의 불균형상황에서 유명인은 언론·법적 대응 여력이 크지만, 무명인 약자들은 반격 수단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자칫 글쓴이가 더 민감해하고 큰 피해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고인의 인격권은 사후에도 보호되므로, 허위·과장된 사실 기술은 피해야 한다.
그런데 무명인의 ‘서사 상실’ 우려가 크다 주목받지 못하는 개인의 목소리 유명인의 비하인드에 가려, 무명인의 진짜 경험이 사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록의 일방성 한쪽(유명인)의 서사만 강조 유지되면, 사건의 전후 맥락·현장의 인간관계가 편향적으로 남는다. 누구에게는 사소한 것이지만 누구에게는 거대 서사이기도 할것이다 .진실 찾기라는 기록의 대의를 놓친다.기록의 민주화가 이루어져 하고 그것이 넓게는 문화민주주의의 의미를 공유하고 확산하는 일이다. 만약 이 글을 추상적인 스타라고 설정한다면. 반쪽 짜리 서사가 된다.최진실이라는 스타는 드라마의 주인공이었지만 우리는 누구나 자기 서사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최진실, 그녀의 생일은 잊힐 수 없다. 잊으래야 잊을 수 없다. 홍천 월운리에서 '금광 속의 송아지'라는 영화를 찍고 있던 마을회관 라디오로 그녀의 죽음을 들었다.
오랫동안 멍해지고 나서야 그녀와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잠시 MBC 미니시리즈 외부 조연출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 많은 연기자들을 만나고 스치고,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살았다.
12월 24일, 100명의 유치원 아이들이 엑스트라로 동원된 최진실 주연의 미니시리즈 촬영장이다.
오후 1시 그런데 나타나야 할 주인공 최진실은 나타나지 않았다. 100명의 어린이 엑스트라가 기다리고 있는데, 나름 그 수에서 보이듯 크리스마스이브 날의 큰 촬영이었다. 그녀의 무소식에 100명의 유치원복을 입은 아이들은 한 컷의 촬영도 없이 사라지게 될 판이었다.
감독은 줄곧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밤 장면이 아니기에 이제 곧 노을이 지면 촬영은 접어야 했다. 당시 최진실 매니저는 유명한 배병수였다. 그에게 수없이 전화를 했지만 자신도 행방을 모르겠다는 소리뿐이었다. 당시에도 카폰 핸드폰이 있었다. 아무튼 그녀는 다짜고짜 촬영 일정을 통보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여하튼 4시간은 족히 지나서야 그녀가 나타났다. 그동안 수백 명이 아무것도 안 하고 나를 탓하며 도로에 서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감독은 그 다급한 순간에도 촬영은 아랑곳없이 진실 찾기 게임을 시작했다. 촬영 스케줄을 알렸는지, 스케줄표를 받았는지 최진실과 나를 세워놓고 다그쳤다. 최진실 옆에는 배병수가 버티고 서 있었다. 감독은 세 사람을 세워놓고 진실을 추궁했다. 책임이 있는 자가 100명의 엑스트라비를 부담하기로 한다는 감독 맘대로의 보협박과 보상안을 내면서.
도로 옆 수많은 엑스트라 어린이들과 스태프들은 감독과 그 앞에 서 있는 나와 대스타, 배병수의 옥신각신을 지켜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고 신기한 장면 중의 하나였다.
그녀와 매니저는 당일의 스케줄표를 받지 않았다고 초지일관 고집했다. 당연히 나도 스케줄표는 연출부 스태프에게 건넸고 연출부 막내가 직접 그녀에게 건네주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고 고집을 부렸다. 두 사람은 연이은 스케줄로 인해 스케줄표는 3일분 3장이어야 하는데 2장만 받았다고 주장했다.
나 또한 상대가 당대의 최진실과 배병수였기에 이걸 쉽게 굴복할 수는 없는 묘한 승부근성이 발동했을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에서의 한 장면을 연출하기라도 하듯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내려는 그 집착은 , 일단 어두워지기 전에 촬영이나 하고 진실을 가리자는 나의 의견을 계속 묵살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 제가 실수했을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까? 당시의 기억이 희미하지만, 스케줄표 석 장을 일일이 확인하여 보조 스태프에게 건넸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중요 스텝들에게만 배부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일이 확인했을 가능성은 있다지만.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 상대적으로 기가 약한 이가 발을 뺄 우려도 있다)
스타가 가지는 힘으로 귀한 청춘의 생일날마저도 밤새워 촬영을 해야 하는 부담을 벗고 싶었을까?
설마 엑스트라 100명의 무게를 스타 최진실이라고 해서 쉽게 벗어 버릴 수는 절대 없었을 것이다.
아마추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밤 촬영도 아닌 낮 촬영을 펑크 낼 하등의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타의 권력만큼 100명의 아이들 엑스트라의 존재는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엄청난 부담으로 되돌아오는 분위기였으니까.
인간은 거대함과 강함과 대결할 때의 그 태도야 말로 기질이다. 어떤 이는 즉시 굴복하고, 어떤 이는 더욱 완강하게 저항하며, 어떤 이는 교묘하게 회피하고, 어떤 이는 아예 도망쳐 버린다. 또 어떤 이는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나서거나, 어떤 이는 상황을 유머로 넘기려 하기도 한다. 나는 그 순간 더 부풀리게 되어 있는 타입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냥 솔직하게 자신을 인정하는 힘 혹은 상상의 가능성을 키웠더라도 큰 문제가 되었을까 싶기도 하다. 일반 엑스트라보다 더 비싼 아이들이었지만 사실 그걸 조연출에게 부담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물론 모든 게 정치적인 것이다. 이걸 인정하는 순간 돈을 떠나 참담해지는 것일까?
결국 내가 항복했다. "감독님 제발 일단 촬영이나 합시다."
일단 솔로몬의 심판처럼 나는 촬영을 지켰다. 나름 하도 억울해서. 다음날 촬영장에 가지 않았다.
조연출 말을 믿지 않는 감독이나 그런 연기자 뒷바라지할 만큼 내 인생이 거지 같아선 안 될 것 같다는 돈키호테식 사고로 무단 사보타주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 실수가능성의 공백이 더 넓은 것은 사실이다.
그 시간이 며칠이나 지나자 결국 감독이 전화가 왔다. 그냥 오라고. 사실 그때의 미니시리즈 한 편은 거의 일주일을 쉬지 않고서야 만들어진다. 그게 몇 편이면 몇 달을 쉬지 못한다. 빡빡한 일정에 조연출을 구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만만치 않은 시절이었다.
"생일이라 하루 쉬려고 그랬을 거야." 감독은 그렇게 나에게 구슬렸다.
그런데 다음 미니시리즈에 또 최진실이 주인공인 작품이 걸렸다.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국 나는 또 감독과 의 불화로 촬영 현장을 떠났다.
그 뒤 나는 시골 마을을 다니면서 스타 최진실만큼 연기를 못할지 모르지만 색다른 자신의 캐릭터를 가진 할머니들이 수없이 많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가기 시작했다.
누구든 잘할 수 있지만 단지 그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라는 걸 깨우쳐 갔다.
그리고 뒤에 매니저 배병수도 최진실도 유명을 달리했다. 아마 내가 스타들과 가까이에서 만나 짧더라도 한 작업 덕분에 평범한 생활인과의 연기에 차별성을 뚜렷이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나에게 '연기'에 대한 사유와 영감을 안겨주고 이야기를 남기게 해준 고마운 이다.
한국의 감독, 연기자와 내가 얽힌 이야기는 단순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아니라 결국 오늘의 나에 대한 역사이기도 하다. 강한 자, 유명한 자의 서사로 기억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서사 찾기 이며 '기록의 민주화' 과정이다.